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같게 하시옵소서”

  

 

[사사기 5장 1-31절]

 

 

아직도 제 마음에 잊혀지지 않는 그 때 그 모습이 있습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그 날 아침 그 장면이 있습니다.  몇년 전 한국 파주에서 이른 아침에 일어나 논밭이 보이는 곳에 홀로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울었던 그 때 그 모습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때 논밭에서는 딱 한분의 아주머니가 머리세 수건을 두르시고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셨고 저는 그 분과 멀리감치 떨어져 산과 하늘을 바라보면서 떠오로는 태양빛을 맞으면서 그 복음성가를 부르는데 왜 그리 눈물이 하염없이 제 눈가에서 흐르는지 ….  우리 한번 그 찬양을 같이 노래하십시다: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다른 어떤 은혜 구하지 않으리 오직 주님 만이 내 삶에 도움이시니 주의 얼굴 보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해요 온 맘과 정성다해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 되기 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신실한 친구가 되길 간절히 원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여러분들도 온맘과 정성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오직 주님 만이 내 삶에 도움이”십니다 라고 마음으로 인정하며 입술로 고백합니다.

 

지난 주일 예배 중 대표 기도하시면서 담임 목사인 저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다니엘 12장 3절을 붙잡고 기도하셨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지혜 있는 자,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다 라는 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이 어두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환하게 비취므로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목사가 되는 것이 제 소원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빛을 발하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빛을 이 어두운 세상에 환하게 비취고 싶습니다.  주님의 구원의 빛을 이 세상에 비취고 싶습니다.  마치 궁창의 빛과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는 자로 세움을 받아 쓰임 받는 축복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 5장 1-3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발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사사 드보라와 “아비 노암의 아들 바락”(4:6)이란 사람의 노래가 적혀있습니다.  이 노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십년 동안 심히 학대한 가나안 왕 야빈(3절)과 그의 장군 시스라(2절)와 시스라의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들(13절)과 싸워 승리한 후 사사 드보라와 바락이 부른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결론은 바로 31절임: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곧, 오늘 노래의 결론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힘있게 올라오는 태양과 같이 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간구하되 드보라와 바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태양과 같이 되게 해주시사 점차 그 빛을 온 천하에 뻗치게 하시길 하나님께 노래로 간구합니다.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같이 하시옵소서’”라는 제목 아래 한 두 가지를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입니다.  한 3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한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 5장 2절과 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 여호와를 찬송하라”.  가나안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후 사사 드보라는 바락은 노래하면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두번이나 반복하여서 재촉하고 있습니다(2, 9절).  왜 드보라와 바락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권면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솔하는 지도자들이나 그들을 좇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시스라 장군과 그의 군대와 전쟁함에 있어서 즐거이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전쟁에 즐거이 헌신하여 싸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모든 백성들로 인하여 드보라와 바락은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두 번이나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전쟁에 그 지도자들과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즐거이 헌신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하면 그들이 가나안 사람들과 전쟁하는데 즐거이 헌신하는 것이 인간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거였기 때문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가나안 야빈 왕의 장군인 시스라와 그의 군대에는 철 병거가 구백승(900 iron chariots)이나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4:3, 13).  그런데 그들과 대조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4만명이 기손강 전쟁을 위하여 동원되었지만 그들에게 가나안 군대를 대항할 만한 무기인 창과 방패가 보이지 않았다(5:8)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니 숫자도 비교가 안되는데 무기마저 없으면서 어떻게 전쟁할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4만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거이 헌신했다고 성경은 두 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사사기 4장 6절과 14절을 보면 가나안 군대와 싸우고자 바락이 거느리고 나아간 이스라엘 군사들이 1만명이었는데 오늘 본문 5장 8절을 보면 성경은 4만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숫자가 안맞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에 의하면 이른 바 “사만 명”이란 수는 정규 군인을 통계적으로 말한 것이 아니고, 이 때에 기손강 전쟁을 위하여 동원되었던 이스라엘 대중을 가리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만일 이 주장이 맞다면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기도 없을 뿐만 아니라 훈련받은 군인이 아닌 삼만 명은 민간인들이라 생각됩니다.  상식적으로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가나안 군대와 싸워 이길 수가 있겠습니까?  상식적으로 말도 안되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즐거이 헌신하여 전쟁에 나아가 싸웠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즐거이 헌신케 하신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느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솔하는 지도자들이나 그들을 좇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에 싸우도록 즐거이 헌신케 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사사기 5장 18절을 보면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할 정도로 헌신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생명을 아끼지 아니할 정도로 주님께 헌신하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의 일에 즐거이 헌신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생명을 걸고 주님께 받은 사명(소명)을 완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참 아름답습니다.  복음성가 “사명”이란 곡 가사 1절 생각납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 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을 아까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우리에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사 저와 여러분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주님께 즐거이 생명을 받쳐 헌신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해가 힘입게 돋음같은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렇게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한 자들입니다.

            

둘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 5장 4-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여기서 사사 드보라와 바락은 가나안 야빈 왕의 장군인 시스라와 그의 군대와의 전쟁에 즐거이 헌신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그들을 좇은 백성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며 또한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한 후 오늘 본문 4-5절에 와서는 과거 모세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사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노래하고 있습니다(4절)(박윤선).  특히 드보라와 바락은 5절에 와서 산들이 하나님 앞에 “진동”한다고 3번이나 반복해서 말하면서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나타내신 그 구원의 능력을 노래하였습니다(5절).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도 드보라와 바락처럼 현재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였을 때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셨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치 사사 드보라가 현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로 하여금 즐거이 헌신케 하시사 가나안 야빈 왕의 장군 시스라와 그 모든 군대와의 전쟁에서 승리케 하시사 구원해 주신 은혜를 경험하면서 과거 모세의 출애굽 당시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찬양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현재의 구원의 은총을 경험하면서 과거의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 또한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어제나 오늘이냐 영원토록 동일하신 변치 않으신 우리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요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과거에도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또한 앞으로도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늘 본문 사사시 5장 4-5절에서 드보라와 바락은 먼저 과거 모세 시대 때의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노래한 후 오늘 본문 6절에서 8절에 와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 족속이 가나안 야빈 왕의 침략을 받아 그에게 압제를 당하였었는지를 회상하는 노래를 하나님께 부르고 있습니다(6-8절).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하고 있었던 우상 숭배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보십시오: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 신들을 택하였”다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번째 사사인 에훗이 죽은 후에 또 다시 하나님의 목전에 악을 행하되(4:1) 그들의 조상 때에도 모르던 이방 신들을 택하여 섬겼던 우상 숭배의 죄를 가리킵니다(5:8).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시므로(4:2) 야빈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20년 동안 심히 학대한 것입니다(3절).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3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사사 드보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로 하여금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1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고 명하였습니다(6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드보라를 통하여 바락에게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무리들을 기손강 에서 바락의 손에 붙이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7절).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장군 시스라를 바락의 손에 붙이신 그 날(14절)에 하나님께서는 바락의 앞서 행하시사(14절)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셨습니다(15절).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습니까?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수 많은 강한 나라 가나안 장군 시스라와 그의 군대를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하늘에 있는 것들도 시스라를 패배시키도록 싸워주셨다는 뜻입니다.  곧, 하늘에 기후 변동이 생기면서 구름이 덮여 별들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 마치 그 별들이 전장에 출동하여서 없는 듯 하고, 폭풍우가 일어서 기손강에 홍수가 넘침으로 시스라의 군대는 표류하여 망하였다는 것입니다(박윤선).  결국 자연을 움직이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의 헌신된 지도자들과 백성들로 하여금 그 수 많은 가나안 장군 시스라와 그의 군대를 물리치게 하실 때에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군대가 있는 기손강에 물이 넘치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그 물로 하여금 그 가나안 병거들과 군인들을 멸하셨던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당시 가나인 사람들은 비가 오는 계절에는 절대로 자기들의 병거들을 가지고 늪 같은 땅으로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Walvoord).  그 말은 가나안 장군 시스라가 그의 군대와 그의 철 병거 900대와 기손강으로 갔다는 것은 비가오는 계절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므로 마른 땅에서 그 많은 병거를 이끌로 이스라엘과 전쟁하고자 같는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개입으로 하늘에서 비가 내려 기손강이 넘쳐 흘러 그 넘치는 물로 인하여 그 병거들과 군대가 휩쓸림이 되어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헌신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사 그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시므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의 원수들을 멸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한 두 가지라 생각합니다: (1) 첫째로, 우리는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비록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장군 시스라는 이스라엘과 전쟁할 준비를 철저이 다 갖추었고 강한 군대와 무기가 많았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고 대신 싸우시므로 그들은 전쟁에서 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치 출애굽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시므로 애굽 왕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병거가 홍해 바다에 잠기게 하시사 진멸하신 것처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나안 장군 시스라의 모든 군대와 병거들은 기손강의 물을 넘치게 하시사 그들을 쓸어버리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진멸당하고 만 것입니다.  (2)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과거에도 우리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서 현재에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신실한 언약의 하나님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믿음으로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노래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동일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현재 왜 우리에게 이러한 고난과 핍박이 있는지 그 원인이 우리의 범죄임을 깨달아 알아 우리의 고통과 고난의 상황을 회개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위기로부터 건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죄로부터도 건짐을 받야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참된 죄와 고통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그 위대하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결심하고 실행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사사기 5장 15-16절을 보십시오: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사사 드보라와 바락은 가나안 왕 장군 시스라와 그의 군대를 다 멸하고 가나안 왕 야빈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 것을 경험한 후(4:23) 오늘 본문의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오늘 본문 5장 14절부터18절까지 기손강 전쟁에 가담한 이스라엘 지파들을 칭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자들을 규탄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박윤선).  칭찬 받는 지파들은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므낫세와 스불론, 잇사갈과 납달리 지파들이었는데 이 지파들 중 특히 바락이 속해 있는 납달리 지파 사람들(4:6)과 스불론 지파 사람들 만명은(6절)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않고(5:18) 전쟁에 임하였기에 사사 드보라와 바락은 그들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지파들 중 르우벤과 길르앗(갓 지파의 땅)과 단과 아셀 지파는 가나안과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아 규탄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평안히 나태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특히 그 규탄 받아 마땅한 지파들 중 “르우벤”에 대해서 오늘 본문 15절 하반절과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지금 드보라와 바락은 가축이 많았던 르우벤 지파 사람들은 많은 시내들과 목장에서 평안히 있으면서 양이나 치고 있으면서 전쟁에 참여하려고 결심한 바 있었으나 그대로 실행하지 않은 것을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박윤선).  흥미로운 점은 민수기 32장 1절을 보면 이 르우벤 지파 사람들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곳은 가축에 적당한 곳이라 생각하여(1절)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이스라엘 회중 족장들에게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이 땅을 당신의 종들에게 산업으로 주시고 우리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5절)라고 요청합니다.  그 말을 들은 모세는 그들에게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았고자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6-7절)고 책망하였습니다.  그 모세의 책망을 듣고 르우벤 자손들과 갓 자손들은 모세의 명을 좇아 무장하고 요단강을 건저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자기 앞에서 쫓아내시는 전쟁에 동참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사사기 5장에서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사람들은 가나안 장군 시스라와 그의 군대와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르우벤 지파 사람들은 결심까지 했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왜 그들은 결심하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을 때 그들은 양을 치면서 너무 평안히 안주하고 있어서 그랬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남한을 쳐들어 오려고 하는데도 뭐 또 그려려니 하고 생각하면서 평안히 안주하는 것처럼 가나안 장군 시스라와 그 많은 병거들과 군대가 왔지만 요단강 건너편에 가축을 기르면서 평안히 살고 있었던 르우벤 지파 자손들은 결심만 하고 모세 시대 때 가나안 정복 때처럼 그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드보라와 바락은 노래를 하면서 결심만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르우벤 지파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지파들을 규탄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결심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결심한 것을 분명히 실행으로도 옮김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 1장 12절을 보면 그는 뜻을 정하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리했을 때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시사(9절) 다니엘의 요청대로 10일동안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채식을 주어 먹게하고 물을 마시도록 시험해 보았습니다(12-14절).  그 결과 열흘 후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였습니다(15절).  그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었습니다(16절).  이렇게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함께 하시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도 다니엘 처럼 결심한 후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결심한 후 실행으로 옮깁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께 즐거이 헌신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의지하며 결심하고 실행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해가 힘있게 돋음같이” 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입니다.  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하여금 해가 힘있게 돋음같이 하신다는 말씀은 그들로 하여금 이 어두운 죄악된 세상에서 승리의 빛을  힘있게 발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서 노래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가나안과의 전쟁을 생각할 때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싸우려고 나아갈 때 한 말이 기억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가나안 장군 시스라와 싸우는 드보라와 바락과 이스라엘의 헌신된 자들이나 블레셋 장군 골리앗과 싸우는 다윗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7장 45-47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여러분,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사기 4장 7절에서 이미 사사 드보라를 통하여 바락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들을 “네 손에 붙이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승리하리라고 바락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해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락의 앞에서 가나안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셨습니다(15절).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이 시간 사울 왕의 입을 통해서라도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찌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삼상26:25).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찬양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승리는 내것일세 승리는 내것일세/ 구세주의보혈 로써 승리는 내것일세/ 내것일세 승리만은/ 구세주의 보혈로써 항상 이기네”.  여러분, 영적 전쟁에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나 자신과 죄악과 이 세상과 사단과 싸워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사 죽음을 이기시고 사단을 이기신 것처럼 여러분 또한 죽음과 사단과 싸워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 죄악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든 승리 교회 식구들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하여금 해가 힘있게 돋음같이 하신다는 말씀은 그들로 하여금 이 어두운 세상에서 구원의 빛을 힘있게 발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마태복음 28장 18-20절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의 사명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롬1:1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명, 즉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있어서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행20:24).  우리도 이러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 어두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 구원의 빛을 힘있게 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전(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라는 찬양이 생각납니다.  우리 다 함께 이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십시다: “우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그의 피로 우린 구원받았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 드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님께서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십니다.  주님께 생명을 걸고 즐거이 헌신한 자들을 주님께서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십니다.  주님의 구원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의 용사들을 주님께서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십니다.  주님 앞에서 결심하고 실행하는 뜻을 정한 자들을 주님께서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십니다.  주님께서 주님을 사랑하는 여러분들과 저를 해가 힘 있게 돋음같이 하게 하시사 이 어둡고 죄악된 세상에 승리의 빛, 복음과 사랑의 빛, 구원의 빛을 밝게 비취게 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1.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1.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넓은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1.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과 바다 건너가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1. 동서남북 어디나 땅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찬송가 259장, 빛의 사자들이여)

 

 

 

승리의 빛과 구원의 빛을 이 어두운 세상에 환하게 발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