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를 구하는 심정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열왕기상 19장 4절).

 

 

            여러분, 여러분은 힘들고 지쳐 절망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죽기를 간구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살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강한 본능이건만 어느 정도로 힘들고, 어느 정도로 심신이 지쳐있으면 그러한 깊은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나아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죽기를 간구하겠습니까.

 

            오늘 본문 열왕기상 19장 4절을 보면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 선지자란 인물이 나옵니다.  왜 그는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을까요?  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엘리야는 낙망했습니다.  아니, 그는 절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자기자신이 ‘나는 나의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4절).  왜 그러한 생각이 엘리야를 지배하고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엘리야는 자기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였기 때문입니다(3절).  왜 그는 도망하였습니까?  그 이유는 이세벨 왕후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결심하고 선포한 것을 엘리야는 그녀의 사자를 통하여 들었기 때문입니다(2절).  좀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명령(18:1)에 순종하여 이세벨의 남편인 아합 왕에게 담대히 나아갔던 엘리야의 모습이 어디로 간 것입니까?  아합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17절)라고 말했을 때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18절)고 담대히 말했던 엘리야의 모습이 어디로 간 것입니까?  어떻게 담대하던 엘리야가 이렇게 이세벨 왕후의 위협에 두려워 자기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는지 좀 놀랍지 않습니까?  갈멜산에서의 그 위대한 대결,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홀로 대결할 때에도 엘리야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36-37절)라고 하나님께 담대히 간구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걸고 주님의 말씀대로 담대히 순종하던 엘리야 선지자가 어떻게 이렇게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가는 사람이 된 것입니까?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볼 때에 엘리야는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라고 말하면서 낙망과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것입니다. 

 

저도 엘리야처럼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원수의 핍박과 생명 위협을 받아서라 아니라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속적으로 불순종하여 범죄하는 제 자신 때문이었습니다.  원치않는 죄를 습관적으로 계속 범하는 제 자신을 보고 심히 낙심하고 절망하여 죄책감과 자괴감 속에서 자포자기 하고 싶은 심정으로 하나님께 제 생명을 거두어 가시길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때에 제 주위에 신앙의 선배 목사님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왜 저분(들)처럼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라는 식의 생각이 저를 지배하게 될 때 저는 제 나름대로 깊은 낙심감을 맛볼 때다 참 많았었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주님 안에서 자존감이 거의 없다시피한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었던 주님의 종이었습니다. 

 

둘째로, 옐리야는 심신이 지쳐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던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의 언약을 버리고 주님의 단을 헐며 칼로 주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있었을 때 오직 자기만 홀로 남아있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19:10, 14, 참고: 18:22).  그래서 그는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 오십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인”(18:19)과 갈멜산에서 대결하면서도 그곳에 모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 오십인이로다”(22절)고 말하였습니다.  그리도 원수 대적들은 많은데 엘리야 선지자가 자기만 홀로 그 많은 원수 대적들과 싸워야 하니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그런데다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엘리야를 지지하기보다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는 것을 보았으니(21절) 엘리야가 얼마나 외로웠겠습니까?  그 와중에서도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유별하였습니다(19:10, 14).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유별한 열심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겠다고 하고(19:2) 심지어 다른 주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이스라엘 자손들도 엘리야의 생명을 찾하 취하려고 하였으니(10, 14절) 이 얼마나 선지자 엘리야로 하여금 심신을 지치게 만들었겠습니까?  오죽 했으면 엘리야가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한 로뎀나무 아내 앉아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후(4절) 그 나무 아래 누워 잠들었겠습니까? (5절)  오죽 했으면 잠을 자고 있는 엘리야를 천사가 두 번이나 나타나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하면서 음식을 준비해 줬겠습니까? (5-7절)  선지자 엘리야가 그 음식을 먹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른 것을 보면(8절) 그는 마음 뿐만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엘리야는 이렇게 심신히 지쳐있었기에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야외에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요나 선지자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회개한 니느웨 백성들에게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 않으시닌까(욘3:10) 요나는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4:1) 하나님께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3절)고 기도하였습니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요나는 죽기를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3, 8절).  욥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욥기 6장 8-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  심지어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하였습니다: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질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찐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 하옵소서” (민 11:14-15).  왜들 이렇게 다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을까요?  이들이 믿음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분노 가운데 죽기를 하나님께 구한 것이고 욥은 극심한 고통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죽기를 구한 것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주님의 종들이 혼자서 질 수 없는 막중한 책임으로 인하여 심신히 지쳐서 사역을 중단하던지 포기하고 넘어져 있습니까?  말이 넘어져 있는 것이진 실제로는 죽어있는 사역자라 말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그 심정은 오직 하나님과 당사자만 알것입니다.  큰 절망과 심신이 너무나 지친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께 죽기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엘리야를 어루만지졌던 것처럼 우리를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신을 일으켜 주시사 힘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힘으로 하나님의 전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엘리야처럼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왕상19:12)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다시금 일어나 하나님의 열심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승리!

 

 

죽기를 구하느 심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세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