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누구의 충고를 듣고 있습니까?

 

 

 

“왕이 노인의 교도하는 것을 버리고 그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열왕기상 12장 8절).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이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은 또 저렇게 말하고 있는데 도무지 누구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 해야 할 때 여러분은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 열왕기상 12장 8절의 문맥을 보면 솔로몬 왕이 죽고 나서(11:43)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세겜에 이르렀을 때 온 이스라엘이 저로 왕을 삼고자 합니다(12:1).  그 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갔다가 그 소문을 듣고 애굽에서 다시 돌아와 세겜으로 와서(2절) 이스라엘 회중과 함께 르호보암에게 나아가 이렇게 고합니다: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부친이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4절).  그 때 르호보암은 그들에게 “삼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고 대답합니다(5절).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합니다: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6절).  그 때 그 노인들의 충고는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였습니다(7절)[“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대하10:7)].  그러나 르호보암은 그 노인들의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자문을 듣습니다: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10-11절).  그리고 르호보암은 삼일 만에 다시 자기에게로 나온 여로보암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악한 말로”(13절) [노인들은 “좋은 말로 대답하”길 충고했는데(7절)] 그 모든 백성들에게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14절)고 말합니다.  결국 르호보암 왕은 그 노인들의 충고를 버리고(8, 13절)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듣고 따릅니다(8-9, 14절).  그는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15절).  그리고 성경은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5절).  그 결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15절)인 이스라엘 나라를 솔로몬의 아들의 손에서 빼았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주고”(11:31, 35)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거기에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읍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이 항상 내 앞에 등불을 가지고 있게 하리라”(36절)는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12:16-17).

 

            왜 르호보암은 자기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의 충고를 버리고 함께 자라난 어린 소년들의 충고를 들었을까요?  먼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르호보암의 선택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함께 자라난 젊은 친구들의 말을 듣지 자기 아버지 시대 사람인 노인들의 충고를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또한 심리적으로 생각해 보면 어느 젊은 대통령이 시민들의 종이 되어 그들을 섬기라고 말하면 그렇게 하려고 하겠습니까?  ‘아니 내가 그래도 한 나라의 대통령인데 그들이 나를 섬겨야지 왜 내가 그들을 섬겨야 해?’라고 그 젊은 대통령이 말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적으로 생각할 때 저는 그 노인들의 충고는 옳바른 충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 노인들의 충고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에 우리들을 섬기려 오셨지 섬김을 받으려 오시지 않았습니다(마20:28; 막10:45).  즉,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섬기는 종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하물며 르호보암 왕이 그 노인들의 말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 마땅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르호보암은 여로보암과 그 모든 백성들을 섬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어쩌면 르호보암은 교만해서 그럴 수도 있고(대하12:1) 어쩌면 그는 자기 아버지 솔로몬이 죽이려 했던 여로보암이였기에(11:40) 자기 아버지 솔로몬처럼 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멍에를 무겁게 하되(12:4) 더욱더 무겁게 하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르호보암은 선택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노인들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가 그 노인들의 충고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겼으면 여로보암과 그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자기의 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좋은 충고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나쁜 충고인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충고를 듣고 실행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나라가 두 개로 갈라지는 비극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누구의 충고를 듣고 있습니까?  우리 목사님의 충고를 듣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분의 충고를 버리고 우리와 함께 자라난 친구들의 충고를 듣고 있습니까?  혹시 지금 우리는 가까운 우리 식구들의 말이 더 잘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누구”(Who)라기보다 “무엇”(What)입니다.  즉, 중요한 것은 누가 우리에게 충고하느냐가 아니라 그 충고한 내용이 무엇이냐 입니다(물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해주는 형제의 충고가 참 중요하지만).  매우 중요한 것은 그 충고 내용이 과연 성경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우리가 쉽게 귀를 기울이고 말을 잘 듣는 가까운 식구들이나 친구들의 충고가 꼭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충고는 매우 주관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깝지 않은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가까운 가족 식구들이나 친구들보다 더 객관적인 충고를 해 줄 수 있을지로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저는 목사님들이라고 해서 모두 다 성경적으로 성도님들에게 충고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기보다 성경을 자기 마음(주관)대로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너무 많기에].  우리는 누구이든지 간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지혜로우며 또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 주는 형제/자매의 성경적인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비록 그 형제/자매의 성경적인 충고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그 상황을 겪고 있는 우리 자신의 힘듬을 더욱더 쉽고 편안하게 해주지 않아 보이는 충고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녀의 충고가 성경적이다는 것을 양심으로 알고 있다면 그 충고가 하나님의 뜻인줄 알고(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르호보암 왕이 자기 아버지 솔로몬을 모셨던 노인들의 충고를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자문을 들었던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다(12:15)라는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아, 내가 성경적인 충고를 듣지 않고 가까운 식구, 친구들의 말을 듣는 것도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닌까 그리 해도 괜찮아’라고 속으로 생각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의 결과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선택의 결과는 우리 책임이지 결코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으로 하여금 그 노인들의 충고를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의 충고를 듣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르호보암이 원했던 선택이지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선택은 결코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의 잘못된 선택까지도 사용하셔서 범죄하고 회개하지 않은 그의 부친 솔로몬 왕에게 약속하신 징벌을 내리신 것 뿐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셔서 범죄하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회개한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을 기억하시고 그를 위하여 한 지파를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에게 주신 것입니다.  결국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자기 세대에 두 개로 나뉘어졌지만 그의 할아버지 다윗으로 인하여 한 지파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 나라가 두 개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된 것은 솔로몬의 회개치 않은 범죄의 결과요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그 부친 솔로몬을 모셨던 노인들의 충고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누구의 충고를 들어야 합니까?  아니 지금 우리는 누구의 충고를 듣고 있습니까? 

 

 

성경적인 충고를 들을 수 있는 지혜로운 귀를 사모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