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의 노래(4): 우리가 바라보는 한 별을 노래하십시다!

 

 

 

[민수기 24장10-19절]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과연 여러분은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저는 지난 주일 부활주일 후 한주간을 지내면서 고린도전서 15장 19절 말씀이 마음에 좀 다가왔습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라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들이다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다가)오는 세상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 다가오는 세상의 삶이 없고 이 세상의 삶이 전부 다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슬픔과 눈물 속에서도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마지막 나팔이 울려퍼지는 순간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이 다시 오실 때 우리 모두가 홀연히 변화되어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오는 세상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이다 라는 이 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의 장례 예배 때에도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부활의 소망과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이다 라는 소망을 더욱더 사모하게 되는 지난 한 주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저는 오늘 본문 민수기 24장 10-19절에 나오는 발람의 네 번째 노래를 묵상하면서 특히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한 별”(a star)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오늘 하나님께서 발람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한 별”는 무엇 또는 누구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저는 성경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그의 별”이 생각났음.  “그의 별”이란 약 2,000년 전에 유대 땅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동방 박사들이 동방에서부터 보고 베들레헴까지 오게된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그의 별을 보고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님에게 경배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1-2절).  그 때 그 말을 들은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은 “소동”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3절).  마치 오늘 본문 민수기 24장 17절에서 발람이 노래한 한 별이 쳐서 다 멸할 “소동하는 자식들”인 모압처럼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은 소동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24장 17절을 힌반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발람의 노래(4): 우리가 바라보는 한 별을 노래하십시다!”라는 제목 아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0-11절을 보십시오: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  모압 왕 발락은 분노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발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원수인(24:10) 모압 평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케 하여 그들을 쳐서 이기어 그 땅에서 몰아내려고 했는데(23:6) 발람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번이나 축복했기 때문입니다(24:10).  그러므로 모압 왕 발락은 발람에게 자기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점은 발락 왕은 자기가 발람을 높여 심히 존귀케 하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발람을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이 발락의 말을 생각할 때 한 가지 귀한 교훈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귀한 교훈이란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원수인 세상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심히 존귀케함을 받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존귀케 하심을 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존귀케 하심을 받기를 사모해야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우리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는 것을 사모해서는 아니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이 발락의 말을 들은 발람은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자들에게 내가 고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가령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찌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 임의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12-13절).  무슨 말입니까?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그가 사자들을 자기에게 보냈을 때 아무리 자기에게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줄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말하리라고 한 말을 다시금 발락 왕에게 반복해서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발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 자기 마음대로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모압 왕 발락에게 상기키켜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발람은 발락에게 오늘 본문 14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 것을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하고”.  무슨 말입니까?  발람은 모압 왕 발락에게 자기 백성으로 돌아가기에 앞어 모압 평지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락 왕의 백성들인 모압 사람들에게 앞으로(장차)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서 발람은 오늘 본문 14절부터 19절까지 네 번째 노래를 지어 불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16절을 보십시오: “노래를 지어 가로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이 말씀은 이미 우리가 발람의 세 번째 노래인 민수기 24장 4절에서 보았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백성을 파멸시키는 자”란 이름의 뜻을 가진 발람은 자기의 소욕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지 싶었지만 성령님께서는 발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소욕대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사로잡아 말하게 하셨다는 말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거짓 선지자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요청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 하고 싶었지만 성령 하나님께서 그의 입술도 주장하시사 자기 마음대로 못하게 하시 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축복을 세번이나 말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10,13절).  결국 성령 하나님께서는 눈을 감았던 발람으로 하여금(15절) 그의 영의 눈을 뜨게하시사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셨고(16절a),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식을 갖게 하셨으며(16절b)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상(a vision)을 보게하셨던 것입니다(16절c).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발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보게 하시고 그로 하여금 겸손히 엎드리게 하여(16절) 이 네 번째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신 것입니다(Walvoord).   그러면 하나님께서 발람으로 하여금 그의 영의 눈을 뜨게하시사 보게 하신 그 하나님의 진리는 무엇이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하나님께서 발람의 영의 눈을 뜨게하시사 보게 하신 하나님의 진리는 장차 이스라엘에게서 나올 “한 별”(a star) 또는 “한 홀”(a scepter)로서 “그”(He)가 이스라엘의 원수인 모압을 멸하며 또한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별”과 “홀”이란 말은 같은 것을 가리키는 단어들로서 그들이 가리키는 것은 “왕”입니다.  “별”에 대한 성경 구절은 구약에서는 이사야서 14장 12-13절에 나와있습니다.  거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별 이미지를 바벨론 왕의 멸망을 묘사하였습니다.  그리고 “홀”이란 왕의 주권(the symbol of royal power)(시45:6)을 상징하는 것으로서(Matthews) 구약 성경 창세기 49장9-10절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 말씀은 야곱이 자기의 자녀들 가운데 유다를 축복한 말씀으로서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홀”을 또 다른 말로 “치리자의 지팡이”입니다.  이것은 장차 유다 지파로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을 가리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통하여 예언케하신 이스라엘의 “별”과 “홀”은 가깝게는 다윗 왕을 가리킵니다(MacDonald).  그리고 이 이스라엘의 별과 홀인 다윗 왕이 멸할 이스라엘의 원수는 바로 “소동하는 자식들”인 모압입니다(Walvoord).  즉, 하나님께서 발람의 영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신 하나님의 진리는 장차 이스라엘에게서 나오는 한 별 또는 한 홀인 다윗 왕이 이스라엘의 원수인 모압을 멸할 것이다 라는 예언을 발람은 모압 왕 발락 앞에서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모압 왕 발락이 모압 평지에 있는 티클 처럼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번뇌하는 가운데(22:3) 발람을 불러다가 저주케 하여 싸워 이기려고 하였는데 세번이나 이스라엘을 축복한 발람이 마지막으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노래한다는 것이 장차 이스라엘에 왕이 나와서 모압을 멸할 것이다 라고 예언하니 그 노래를 듣는 모압 왕 발락은 어떠했을까 생각할 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발람의 세 번째 노래(민24:1-9)에서 성령님에게 사로잡혀 이스라엘의 아름다운 장막을 노래했던 발람은 이스라엘이 아각 왕보다 더 흥왕할 것을 노래하였습니다(7절하).  즉, 하나님께서 발람의 영의 눈을 열어 보게 하신 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더 강하고 위대하게 높이시고 그들과 함께 하시사 그들의 적국과 싸워 승리케 하시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강국으로 세워주실 것을 노래하였습니다.  그 노래가 오늘 본문 민수기 24장 10-19절에 나오는 발람의 네 번째 노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되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사 그 왕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적국인 모압과 “그 원수 에돔”과 “그 원수 세일”(18절)등을 멸할 것을 발람을 통하여 예언적으로 노래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9절 후로 나오는 발람의 다른 노래들에서 언급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인 “아말렉”이나(20절), “가인 족속”(21절)이나 “앗수르”(22-24절)도 하나님께서 다 멸망시키실 것을 발람을 통하여 노래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질문은 과연 이 발람의 예언적 노래가 다윗 왕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발람이 모압 왕 발락 앞에서 부른 이 네 번째 노래는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영의 눈을 뜨게하사 바라보게 하신 한 별을 노래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한 별”(또는 “한 홀”)은 이스라엘 역사에 가깝게는 유다 지파에서 나온 다윗 왕을 가리키지만 최종적으로 가리키는 분은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2장 16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광명한 새벽별”(the Bright Morning Star)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유다 지파의 다윗 왕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릴 때 모압과 전쟁해서 모압이 패하므로 말미암아 모압은 유다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어 섬김니다(삼하8:2).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발람이 노래한 것은 이 다윗 왕이 모압을 멸하는 것만을 예언적으로 노래한 것만 아니라 다윗의 뿌리요 유다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참 이스라엘인 교회의 원수인 사단과 죽음을 이기실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발람이 바라보고 노래한 한 별은 장차 다시 오실 재림 주이신 광명한 새벽별이 되시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가 다시 오실 때 교회의 원수가 되는 사단과 그의 우상들과 모든 교회의 적들을 심판하시사 우리에게 구원의 완성을 베푸실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이 광명한 새벽별이 되시는 재림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재림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사단과 모든 우상들과 교회의 원수들을 멸하실 것은 믿어야 합니다.  이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용감히 행동하는(민24:18)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주의 진리 위해 십자가 군기”를 찬양한 후,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