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에서 교만으로 변질되는 원인들

 

 

 

“사무엘이 가로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찌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무엘상 15장 17, 30절).

 

 

            겸손과 교만은 종이 한장 차이인 것 같습니다.  겸손해 보였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교만해져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될 때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해 보면서 고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저는 고민할 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을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본문 사무엘상 15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처음에 사울 왕은 스스로 작게 여겼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범죄한 후에도 사무엘에게 자기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자기를 높여 달라고 부탁한 사람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사무엘상 13장과 15장 중심으로 겸손했던 사울 왕이 어떻게 교만해졌는지 그 변질된 원인들을 몇 가지 본문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그 원인들을 우리 자신에게 비춰보면서 혹여나 우리 안에 이러한 변질된 원인들은 없는지, 그리고 있으면 그 원인들을 어떻게 경계하며 또한 극복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적용해 보길 원합니다.

 

            첫째로, 겸손에서 교만으로 변질되는 원인은  믿음으로 행하지 않고 보는 것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많은 때에 믿음으로 행하기 보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행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가 위급한 상황에 쳐해있을 때 우리는 그 상황에 위급함 속에 휘말려 믿음으로 행하기보다 상황에 이끌림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사무엘상 13장 6절부터 보면 해변의 모래 같이 많은 불레셋 사람들이 믹마스에 진 쳤을 때(5절)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saw that their situation was critical) 모두 다 두려워 떨면서(7절) 사울에게서 흩어져(8절) 여기 저기 숨었습니다(6절).  자기 앞에서 그리 흩어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또한 믹마스에 모인 수 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보고(11절)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바를 지키지 아니하였습니다(13, 14절).  그는 사무엘의 오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친히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9-10, 12절).  제사장만이 드릴 제사를 사울 왕은 자기가 친히 하나님께 드리므로 범죄한 것입니다.  그것은 신성한 제사법을 무시한 사울 왕의 불신앙이며 또 교만이었습니다(박윤선).  사울 왕은 어리석게 행한 것입니다. 

 

            우리도 사울과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사울처럼 우리도 위급한 상황을 접하게 되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그 위급한 상황을 바라보고 두려움 속에서 마음이 흩어져 그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또한 그 절박한 상황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 않나 생각합니다(참고: 15:24).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게 만들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하나님께 범죄하게 만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만일 지금 우리가 위급한 상황에 쳐해 있고 그 상황으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면 우리는 그 두려움을 경계하고 극복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먼저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로 나아가되 우리는 우리 안에 그 위급한 상황에 이끌리고 있는 우리의 두려운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로 다스림을 받고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 중 이사야 41장 10절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가운데 그 말씀에 이끌림을 받아야 합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우리 자신의 영혼에게 그 말씀을 반복적으로 외치면서 기도로 나아갈 때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두려운 마음을 변하여 평안한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의 눈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의 영의 눈을 열어 주시사 그 위급한 상황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구원자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케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로 하여금 상황에 이끌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림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보는 눈으로 행하지 않게 하시고 믿음으로 행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We must walk by faith and not by sight(고후 5:7). 

 

 

            둘째로, 겸손에서 교만으로 변질되는 원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보다  자기 자신의 영광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 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가 영광 받을 만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오히려 우리 자신에게 영광을 돌릴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보다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삼상 15:12).  아니 어떻게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념비를 세웁니까?  오히려 사울 왕은 그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았어야 하지 않았습니까? (참고 14:35)  왜 그는 이렇게 어리석게 행하였습니까?  그 원인은 이미 사울 왕의 마음에 교만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전쟁에 승리케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그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에게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15:3)고 명하셨는데 사울은 그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였습니다(9절).  그러면서도 사울은 사무엘을 만났을 때 그에게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다(13절)고 말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는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사무엘이 사울에게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14절)라고 말했을 때 사울 왕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15절).  사울은 교만함 가운데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 놓고도 하나님의 종인 사무엘에게 거짓말을 하고 또한 자기의 불순종의 죄를 변명하며 합리화시켰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 급하여 하나님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한 것입니다(19절).  그러면서도 그는 또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말하면서(20절)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거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원망하며 또한 자기의 행한 것을 변명하며 합리화 시켰습니다(21절).  순종이 제사보다 나은데(22절) 사울 왕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만해서 자기의 뜻대로 행한 것에 대하여 변명하며 합리화시켰습니다.  비록 보기에 그는 죄를 자백하는 것 같지만(24절) 그 자백조차도 변명처럼 들리는 이유는 그는 계속해서 자기 자신이 높아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부탁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30절).  사울 왕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이 높여주길 원했습니다.  어떻게 범죄하였다고 자복하는 사람이 그 와중에서도 사람들 앞에서 높아지길 원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사울 왕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자신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울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울처럼 우리도 승리(성공)한 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우리 자신에게 돌릴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우리의 승리(성공)가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 등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사람들 앞에서 우리 자신이 높여지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워하기까지 합니다.  분명히 초심에 우리는 ‘우리의 승리(성공)는 하나님께 행하신 것입니다’라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는데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에게 인정과 칭찬을 받다보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 앞에서 우리 자신이 높여지는 것을 좋아하며 즐거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입술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은근히 우리 마음으로는 사람들이 만든 우리 자신의 영광에 도취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이미 교만해진 우리 마음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그 승리(성공)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이 보이지 않고 우리 자신이 한 일만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이 한 일만 보이기 시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게(않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상태까지 왔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입술로는 사람들 앞에서 자복할지 모르겠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지 않게(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사울처럼 우리가 범한 죄를 변명하며 합리화시키는 때 분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시편 기자차럼 하나님께 나아가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시115:1)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고전10:31).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은 죄 뿐일진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사울처럼 불순종하는)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승리(성공)케 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진정으로 자복하고 회개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그 크신 은혜와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를 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 예배 가운데 우리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려야 하리라”(요3:30)고 고백하면서 우리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우리 자신의 영광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울 왕처럼 겸손했다가 교만한 자로 변질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교만했던 사울이 겸손한 바울로 변화된 것처럼 우리 또한 변화되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위급한 상활을 바라보지 말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므로(히12:2) 그 변질의 위기을 극복하고 오히려 그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 변질의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삼으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변질을 경계하며 변화를 추구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