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제지)해야 합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 하였음이니라” (사무엘상 3장 13절).

 

 

            지금 미국 풀로리다 주의 샌퍼드라는 한 도시에서는 흑인 고등학생 한 명이 미국계 히스패닉 자율방범대원에게 살해된 사건이 인종갈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이후 미국에서는 풀로리다는 물론, 애틀랜타와 뉴욕, 시카고, 워싱턴 등지에서 흑인들이 연일 수천 명씩 모여 집단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주로 미디아에서는 총맞아 죽은 청소년이 아무 무기도 소지하지 않고 있었는데 총을 맞아 죽은 것으로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총을 쏜 사람은 자기방어로 총을 쏘았다고 하지만 데모하는 그 많은 사람들은 총 쏜 사람을 경찰이 잡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 저기 인터넷 뉴스 기사를 읽다가 어제 인터넷 CNN 뉴스 기사를 읽는 중 그 기사에 단 댓글들도 읽게 되었습니다.  그 댓글들 중 여러 글들은 총을 맞아 죽은 청소년이 학교에서 도덕질도 하다가 걸려서 정학인지 퇴학인지 당했다는 말도 있고 또한 총 맞아 죽기 전에 들고 있는 봉지에는 마약 양성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있었다고 하는 글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한 댓글들 중에 한 댓글은 그 청소년의 어머니가 싱글 엄마로서 아들을 잘 양육하지 못한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아들의 죽음에 대해서 억울한 심정으로 이렇게 문제를 크게 만들고 있다는 식으로 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글을 읽은 후 그 날 저녁에 오늘 새벽기도회 때 읽을 사무엘상 3장에서 6장까지 읽기 시작하다가 오늘 본문 사무엘상 3장 13절에 제 시선이 멈췄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중심으로 엘리 제사장과 그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에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아버지 엘리 제사장은 자기의 두 아들을 잘 양육하고 있었는지, 왜 그는 자기 아들들을 제대로 양육을 못하였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등등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아버지 엘리 제사장은 자기의 두 아들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13절).  그러나 그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자기의 두 아들이 범하고 있었던 죄가 하나님 보시기엔 심히 큰 죄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7절을 보십시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엘리의 두 아들들은 불량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였습니다(12절).  그들은 제사장들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을 시켜서 그 고기를 자기 것으로 취하는 것이였습니다(13-14절).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로 받치는 고기들을 억지로라도 빼앗아 갈취하였습니다(16절).  이들의 죄가 하나님 앞에 심히 크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7절). 그 이유는 그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7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아버지인 엘리 제사장은 두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 심히 큰 죄를 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심히 크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홉니와 비느하스의 죄를 심히 크게 여기고 계셨는데 육신의 아버지 엘리 제사장은 자기 두 아들들의 죄를 심히 크게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엘레 제사장이 자기의 두 불량자 아들들에게 어떻게 했겠습니까?

 

            둘째로, 아버지 엘레 제사장은 자기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심히 큰 죄를 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자청하는 그 두 아들들을 금하지 아니하였습니다(3:13).  다시 말하면,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께 심히 큰 죄를 범하고 있었던 자기의 두 아들들을 면책하고 범하고 있는 심히 큰 죄를 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매우 늙었서야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22-25절).  아니 어떻게 매우 늙어서야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큰 죄를 범하고 있는 자기의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29절).  엘리 제사장은 하나님보다 자기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처소에서 명한 하나님의 제물과 예물을 자기 아들들이 밟는 것을 금(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불량한 두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는 것올 보고도 금(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보다 자기 두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엘리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30절). 

 

            출애굽기 21장  29절과 36절을 보면 소의 임자가 자기의 소가 본래 받는 버릇이 있는 것을 알고도 그 소를 단속하지 아니하므로 남녀간에 받아 죽이면 그 소를 돌로 쳐 죽일 것이여 임자도 죽일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 부모들이 우리 자식들의 죄악된 버릇을 보고도 단속하며 금(제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엘리 제사장은 자기의 두 아들들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심히 큰 죄를 범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보다 자기 아들들을 더 중히 여기므로 금(제지)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엘리 제사장의 두 불량한 아들들은 하나님의 예언대로(2:33) 불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죽임을 당합니다(4:11).  과연 지금 저와 여러분은 우리 자녀들을 잘 양육하고 있는 것입니까?  과연 지금 우리들은 우리 교회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면책할 것은 면책하고 금할 것은 금하면서 제대로 양육하고 있는 것입니까?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잠언 27장 5절),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