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아야 하는데 …

 

 

 

“들릴라가 가로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16장 20절).

 

 

            우리가 마음이 둔하여 지면 깨닫지 못합니다(막6:52).  깨닫지 못하되 우리는 걸려 넘어져도 무엇에 걸려 넘어졌는지조다 깨닫지 못합니다(잠4:19).  깨닫지 못하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합니다(요8:43, 단12:8).  우리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우리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지 못합니다(눅6:41).  우리는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전5:1).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유명한 사사인 삼손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가 깨닫지 못했던 것은 첫째로 그는 이방 여인을 가까이 하는 것이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인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사기 14장 1절을 보면 삼손은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딸 중에 한 여자를 보고 그녀를 좋아하여(3절) 아내로 삼습니다(2절).  이스라엘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3절).  그러한 삼손의 행동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였습니다(신7:3).  그는 이방 여인을 가까지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사사기 16장 1절을 보면 삼손은 블레셋 이방 여인과 결혼했다 헤어진 후(14:1-3, 8) 가사에 가서 거기서 기생의 집에 들어가 한 기생을 보고 그녀를 취합니다(16:1).  그리고 16장 3절을 보면 그는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이름 뜻: 약한 자)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였습니다.  그 결과 삼손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들릴라”란 이름의 뜻처럼 연약해졌습니다.  둘째로, 삼손이 깨닫지 못했던 것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곧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인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방 여인들을 가까이 하므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던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망각하고 하나님께 범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포도 열매를 먹지 못하도록 금령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딤나에 있는 블레셋 여자를 좋아하므로 딤나의 포도원으로 내려갔습니다(14:5).  즉, 그는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갔던 것입니다(참고: 13:4).  그리고 그는 포도원에서 사자를 만나 찟어 죽였고, 후에 다시 그곳을 지나다가 사자의 사체 속에서 벌 때와 꿀을 발견하곤 그 꿀을 자기 부모에게 드렸습니다(14:9).  이것은 나실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규례를 어기는 행동이었습니다.  나실인 곧 “성별된 자”는 일정 기간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한 자로서 그 기간 동안 포도주와 독주를 금하며, 삭도를 머리에 대지 말고, 시체 등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아야 했습니다(민6).  그러나 그는 사자의 시체도 만졌습니다.  그러므로 삼손은 믿음에서 떠나 점점 더 죄에 깊이 빠져 들어가되 나중엔 들릴라란 이방 여인의 꾀임에 넘어가(16:5) 자신의 힘의 비결인 머리털을 밀지 않은 데 있다고 자신의 진정을 토하였습니다(17, 18절).  이것은 그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고귀한 사명과 그 실행 능력을 육신의 정욕과 바꾸어 버린 망령된 행동이었습니다(박윤선).  어떻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과는 이미 멀어져 있었고 죄악에 길에 들어선 삼손, 들릴라란 이방 여인이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되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까지 되었었는데(16절) 그가 어찌 그 이방 여인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서 자신의 진정을 토해야 할 그가 이방 여인 들릴라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녀에게 자신의 진정을 토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삼손은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삼손의 머리털은 밀렸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있었던 힘은 없어졌습니다(19절).  셋째로, 삼손이 깨닫지 못했던 것은 죄를 범한 자기를 하나님께서 이미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20절).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들어 있엇던 삼손, 들리라가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20절)고 말하엿을 때 삼손은 잠을 깨며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지만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으므로(20절) 결국에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그의 두 눈이 뽑히고(21절) 놋줄에 매어 맷돌을 돌렸습니다(21절).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은 저희의 승리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다곤 신에게 제사하며 그 신을 찬송하였고(23-24절) 그 때에 삼손은 거기 모인 군중 앞에 불려 나가 제주를 부리도록 강요당하였습니다(25절).  이 얼마나 비참한 하나님의 사사인 나실인 삼손의 결말입니까?  하나님의 율법을 어겨 이방인 여인들을 가까이 하므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또한 하나님께 범죄하면서도 자신의 결말을 깨닫지 못했었던 삼손, 그러나 그가 죽기 전에 적어도 한 가지는 깨닫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삼손의 최후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28-30절을 보십시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성경 시편 49편 20절을 보면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존귀에 처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사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계십니다(사43:4).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이렇게 존귀에 처한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고 불신자 여자들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멀리하고 이 세상을 가까이 할 때 우리는 마음에 둔하여져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므로 비천한 자리까지 내려가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천한 자리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짓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사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소망을 잃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12:10),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