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골 골짜기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여호수아 7장 26절).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부름받아 나선 이 몸” 가사 2절을 보면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라고 써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가사를 노래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가라고 하시면 아골 골짝 빈들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가겠다는 헌신을 하나님께 하는 마음으로 찬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아골 골짝”의 의미를 어느 정도 알고 하나님께 헌신의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인지요?
오늘 본문 여호수아 7장 26절에 “아골 골짜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 말의 뜻은 ‘괴로움의 골짜기”(The Valley of Trouble)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1절)과 그가 여리고 성에서 탐내어 취한(21절)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24절)와 그의 자녀들과 동물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24절)을 이끌고 아골 골자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렇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25절). 그리고 나서 온 이스라엘이 그들을 돌로 치고 그 모든 소유물을 불살랐던 것입니다(25절). 그 이유는 아간이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명한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었기 때문입니다(11절). 곧, 아간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기 때문입니다(11절). 분명히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6:18)고 말하였는데 아간은 바친 물건을 취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신 것입니다(1절). 그런데 성경은 “아간” 한 사람이 범죄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범죄하였으니 ..”(1절) 또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11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전체가 아이 사람에게 패하는 화를 당하게 됩니다(2-5절). 로마서 5장 12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물론 여기서 “한 사람”이란 창세기에 나오는 첫째 아담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왠지 저는 아간을 생각할 때 그는 첫째 아담처럼 자기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아이 성의 전쟁에서 패하여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되게 만드는(5절) 장본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생각은 아간이 훔친 “바친 물건”(11절)이 무엇이길래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의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자기들도 “바친 것”이 되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12절),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의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13절)고 말씀하셨는데 그 “바친 물건”이란 무엇인가요? 여기서 “바친 것”이란 말은 저주 받음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박윤선).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친 물건을 인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절). 그리고 그 바친 물건을 취한 아간(1절)과 그의 모든 자녀들과 소유물을 다 돌로 치고 불사르고 나서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셨다(26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저주의 대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 바친 것을 생각할 때 여러분은 누가 생각나십니까? 저는 저주의 나무(신21:23)인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서(마27:33) 저주의 나무인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라고 크게 소리지르셨던 독생자 예수님, 그 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향하셨던 하나님의 극렬한 분노가 그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극력한 분노를 독생자 예수님에게 쏟으시사 그로 하여금 저주에 나무에 죽게하시므로 말미암아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셨습니다(호2:1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하여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나라인 천국 문에 들어갈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원하고 분명하고 확실한 소망을 가진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드려야 합니까? 찬송가 “부름받아 나선 이 몸” 가사 2절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골 골짜기와 같은 양로원에서도 침대에 누워서라도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을 즐겨 부르셨던 고 장을수 할머님을 생각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