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민수기 14장 11절).

 

 

  1. 불신은 하나님의 고요한 음성보다 사람들의 큰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가나안 땅에 탐지하러 올라간 12명의 정탐꾼들 중 갈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보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  그러나 갈렙과 함께 그 땅에 올라갔던 10명의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라고 보고하였습니다(31절).  이 10명의 정탐꾼들은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였습니다(32절):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32-3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렙의 말 듣기를 거부하고 10명의 정탐꾼들의 악평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음에 의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의 믿음의 말을 듣기보다 10명의 불신의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의 불신은 하나님의 고요한 음성 듣기를 거절하고 의심 많은 도마와 같은 주위 그리스도인들의 비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1. 불신은 무익한 눈물을 흘리게 만듭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의 악평의 소리를 들었던 이스라엘 회중은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곡하였습니다(14:1).  민수기 11장 4절에서도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들이 탐욕을 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하였는데 이렇게 민수기 14장에 와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울었습니다.  그것도 밤새도록 소리를 높여서 말입니다.  왜 그들이 울었을까 생각해 볼 때 혹시 가나안 땅에 못들어가고 광야에서 죽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통곡하며 밤새도록 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무슨 이유를 울었던지 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10명의 정탐꾼들의 악평의 소리를 듣고 운 것은 참으로 무익한 눈물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흘리는 기도의 눈물와 헌신의 눈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흘리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 등 이렇게 귀하고 유익한 눈물이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신으로 말미암아 흘리는 눈물을 아무리 밤새도록 많이 흘렸다 할지라도 무익한 눈물이라 생각됩니다.

 

마음에 의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걱정과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무익한 눈물을 흘립니다.

 

  1. 불신은 원망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불신이란 우리 마음에 불만족과 불평, 원망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11절).  그리고 그들은 불신 가운데서 10명의 정탐꾼의 악평을 듣고 밤새도록 소리 높여 통곡하면서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습니다(2절).  자기들을 애굽에서부터 리이드(lead)하고 있었던 지도자들인데 어떻게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인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27절).  왜 이렇게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을 원망하였습니까?  그 원인은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들을 원망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요(27절)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의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들을 원망하는 죄를 범합니다.

 

  1. 불신은 삐뚤어진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불신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의 악평을 듣고 밤새도록 통곡하면서 하나님의 종들인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는데 그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신다 고 생각했습니다(3절).  이것이 말이 되는 생각입니까?  진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는 목적이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의 거민들로 하여금 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죽여 망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까?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생각 속에서 말도 안되는 말로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을 하였을까요?  그 원인은 바로 불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8절)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시는 줄을 믿지 않았습니다(9절).  그러므로 그들은 승리의 확신이 없었습니다(13:31).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말도 안되는 삐뚤어진 생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들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할지라도(14:8) 우리는 그 땅을 죽음과 포로의 땅으로 삐뚤어지게 생각하게 됩니다(3절). 

 

마음에 의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삐딱하게 생각합니다.   

 

  1. 불신은 다시금 죄의 노예 생활로 전락하게 만듭니다.

 

불신 속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삐뜰어진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삐뚤어진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그 삐뚤어진 행동은 바로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였습니다(4절).  그들은 애굽에 있을 때를 그리워한 것입니다.  민수기 11장에서도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면서 애굽에 있었을 때에 “값 없이 생선과 외외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하였습니다(4-5절).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고 계셨던 만나로 만족하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6절).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시로 하나님을 불신하므로 불만족 속에서 불평, 원망하면서 자꾸만 애굽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그러던 자들이 오늘 본문 민수기 14장에 와서는 실제로 모세 아닌 다른 한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이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자유의 몸이 된자들이 뭐하러 다시 노예 생활을 하던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예 생활로 다시 돌아가도 살아있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요?  혹시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과거의 예수님 믿기 전에 죄의 종으로서의 삶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마음에 의심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의 죄의 종의 생활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본적으로 예수님 믿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곤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약속의 나라를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길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