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노래 (1): 승리의 노래

 

 

 

[출애굽기 15장 1-18절]

 

 

여러분, 혹시 여러분이 요즘 즐겨 부르시는 찬송가나 복음성가가 있으십니까?  있으시면 여러분이 요즘 즐겨 부르시는 찬양은 무엇입니까?  왜 여러분은 그 찬양을 즐겨 부르고 계십니까?  저는 몇 노래를 중에 요즘 종종 부르는 찬양 하나는 바로 찬송가 541장 “저 요단강 건너편에”입니다.  장차 오실 재림주 예수님의 얼굴을 뵐 수 있으리라는 간절한 소망 가운데 그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다 보면 제 마음에 천국화 되어가는 경험을 종종 하고 합니다.  특히 3절을 찬양할 때 더욱더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할 천국의 삶이 그리워집니다: (3절) “성도들이 함께 모여 할렐루야 부를 때 나도 기쁜 마음으로 화답하여 부르리”.  먼저 잠이드신 신앙의 조상들, 다시 만나고 싶은 그리운 그분들을 생각하며 이 찬양을 하나님께 부를 때 더욱더 예수님이 그립고 영원한 천국이 그리워 집니다.  이 영원한 소망을 주신 주님, 주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신 큰 구원의 은총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찬양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찬송가 403장).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은 목적은 하나님을 경배(worship)하기 위해서입니다.  출애굽기 3장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  하나님께서 모세를 들어 일으켜 이스라엘 백성들 애굽에서 건져내신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예배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애굽 왕 바로에게 보내시면서 “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출8:1, 20; 9:1, 13; 10:3, 7, 8, 26).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려 바로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내시사 하나님을 예배케 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6절을 보십시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사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고 우리를 예정하시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신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신바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 자들로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5장 1-18절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에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고(14:27)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신(30절)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 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부른 노래입니다(15:1).  다시 말하면, 이 노래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출애굽을 마무리 짓고 휘날레를 장식하는 노래로서 애굽의 군대가 홍해 바다에 빠져 죽음을 당하고 있는 장면을 눈으로 목격하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른 노래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바로의 대결에서 압승으로 끝난 하나님의 승리와 바다에서의 구원을 노래한 것임.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모세의 노래를 “승리의 노래”라 말할 수 있을 것임.  오늘 이 모세의 “승리의 노래”를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아 우리들도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승리의 노래로 하나님께 부르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승리의 노래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5장 1절하반절에서2절상반절을 보십시오: “…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렀던 승리의 노래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은 인정하며 고백하는 노래였음.  그들은 하나님은 “높고 영화로우”시며 하나님은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구원이”심을 찬양하였습니다.  이러한 찬양, 즉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며 고백하는 찬양은 믿음이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는 고백적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임을 우리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행하신 10가지 재앙들이니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등 하나님의 기적들을 보고서도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신 중에 하나님을 원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용사”(a warrior)이신 하나님께서(3절) 홍해바다에서 애굽 사람들이나 그들이 타고 있었던 병거들과 기병들을 물로 덮으시사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시고 다 전멸하신 것을 보고서야(14:28)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과 그의 종 모세를 믿었다고 성경 출애굽기 14장 31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찬양하되 그들은 ‘하나님은 높고 영화로우시며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다’라고 찬송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비슷한 내용의 찬송은 우리가 시편 118편 14절에서도 찾아 볼 수가 있음: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이 시편 기자의 찬송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에스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렀던 찬양 내용입니다(Wiersbe).  그 때에 이스라엘 장막에는 “기쁜 소리”와 “구원의 소리”(또는 “승리의 소리”)가 있었다(15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이던 바벨론이던 이방 나라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주시므로 말미암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목격하게 하셨고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는 구원의 노래, 즉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므로 말미암아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칭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구원의 은총을 받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의무는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의 찬양을 감사하는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새해 2012년을 맞이하여 우리 온 승리교회 식구들이 예수 십자가를 더욱더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총에 감사, 감격하여 우리 구원의 하나님, 우리 승리의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찬양하는 소리가 우리 가운데서 울려 퍼지길 기원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힘이 되신 하나님,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건져주신 구원의 하나님, 우리 모두가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영화로우심을 찬양하되 우리 가운데서 승리(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더욱더 크게 울려 퍼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둘째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승리의 노래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을 읽다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이방신들과의 결투를 볼 때가 있음.  그 한 예가 바로 갈멜산에서의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대결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신인지 아니면 바알 선지자들이 섬기는 바알이 참 신인지 대결하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엘리야의 하나님, 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신임을 대결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약 5세기 전에 애굽(이집트)에서는 노예였던 히브리 백성들의 하나님과 세계를 호령했던 대제국 애굽인들이 섬기는 다신들과의 결투가 있었는데 그 결투는 바로 오늘 본문에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에 이르기 전의 이야기인 모세가 이집트의 바로왕 앞에서 행한 열 가지 재앙입니다.  그 열 가지 재앙의 배경에는 바로와 애굽인들이 섬기는 신들을 무력화시키는 동시에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신이심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출7-12장).  예를 들어 첫 번째 재앙인 애굽인들의 생명의 젖줄인 나일강을 피로 물들인 피재앙을 보면 이것은 애굽인들이 섬기는 크눔(Khnum)이라는 나일강의 수호신을 무력화시킨 것임.  두 번째 재앙은 애굽인들의 온 집안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개구리 재앙인데, 이것은 개구리 머리를 가진 신 헤크트(Heqt)를 친 것이며, 세 번째는 땅의 티끌을 쳐서 만들었던 이재앙으로 땅의 신 셉(Sep)을 친 것임.  네번째부터 열번째 재앙까지,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애굽 왕 바로와 애굽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므로 그들이 섬기고 있었던 신들인 “곤충의 신 하트콕(Hatkok)(네번째 재앙), 다산의 상징인 황소의 신 아피스(Apis)(다섯번째 재앙), 의술의 신인 임호텝 (Imhotep)(여섯번째 재앙), 하늘의 신 누트(Nut)(일곱번째 재앙), 곡물의 수호신인 셋(Seth)(여덜번째 재앙), 태양신 레(Re)(아홉번째 재앙), 그리고 열번째는 바로왕을 비롯한 이집트의 모든 사람들의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었던 장자의 죽음 재앙으로서 이것은 초태생의 죽음은 생명을 부여한다는 오리시스(Orisis)를 무력화시킨 재앙이였습니다(인터넷).  결국,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애굽의 신들을 무력화 시킴으로써 당시 세계 최강 애굽(이집트)인들에게 하나님만이 살아계시는 참 신이심을 증명해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 모세의 노래도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이심을 고백하는 찬양입니다.  그리고 그 유일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 중 4-12절을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찬양하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데 그 찬양의 내용을 보면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진노하시사(7절) 그의 권능의 오른손으로 이스라엘의 원수(6절)를 물리치신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을 말하자면,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애굽의 바로 왕과 그의 병거와 군대를 모두 다 바다에 던지시고(4절)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사(10절) 큰 물로 하여금 그들을 덮게 하신 것(5, 10절)을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이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에서 행하신 이 놀라운 일을 찬양하면서 특히 오늘 본문 11절에서 이렇게 찬양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에 영광스러우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 누구니이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신들 중에 주 하나님과 같은 자 없다고 고백하면서 주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시며 찬송할만한 위엄이 있으시며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자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적 찬양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신이요 애굽이 신들은 다 거짓이다 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서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심 (신6:4)을 알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랍고 기이한 일들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 놀랍고 기이한 하나님의 일들중 우리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므로 저와 여러분에게 베풀어 주신 그 큰 구원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 십자가에 행하신 주님의 일은 주님께서 사단과 대결하여 승리하신 놀랍고 기이한 일로서 우리는 그 유일하신 하나님께 승리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이러한 승리의 노래가 우리 교회에서 울려 퍼지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할 승리의 노래는 하나님께서 장차 행하실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홍해 바다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목격한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찬양하면서 오늘 본문 출애굽기 15장 13-18절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장차) 그들을 위하여 행하실 일을 찬양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행하실 그 일이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그들로 하여금 승리케 하신 후 주님께서는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님의 힘으로 그들을 주님의 성결한 처소인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신 그 놀라운 구원의 사건을 열방들로 하여금 듣게 하시사 그 모든 방백들로 하여금 “두려움에 잡히”게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방백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거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였사오되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의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님의 기업의 산인 가나안 땅 예루살렘에 심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곳을 주님의 처소로 삼으시사 주님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에서(17절) 그들과 함께하시사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8절).  이 약속의 말씀은 결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시사 그곳에 거하게 하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이 하나님의 약속은 신약에 와서 진정한 모세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교회인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사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드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마지막 성취는 아닙니다.  그 마지막 성취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시사 참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를 하나님의 처소인 진정한 새 예루살렘,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하시사 그곳에 주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이 장차 행하실 주님의 일을 우리가 생각할 때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장차 주님께서 행하실 놀라운 일을 믿음으로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면서 하나님꼐 구원(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우리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찬송가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즐겨 부릅니다.  1절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  이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저는 특히  4절을 찬양할 때 마음이 뭉클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내 주 예수 세상에 다시 올 때 저 천국으로 날 인도하리 나 겸손히 엎드려 경배하며 영원히 주를 찬양하리라”.  장차 오실 예수님을 생각(소망)하며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할 때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사 우리를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시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서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고 뜨거운 눈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를 구속해 주신 하나님, 이 구원의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다 함께 일어나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십시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