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찌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창세기 31장 5절).

 

 

            어제(2012년 1월9일) 인터넷 조선일보에서 “지휘관 잘못 덮으려는 경찰의 거짓말이었다”라는 제목 아래 기사가 있어 읽어보았습니다.  그 기사의 내용은 작년 2011년 7월 급류속 시민 구하다 순직한 것으로 알려준 한 의무경찰의 죽음이 상관에 의해 조작된 ‘거짓 영웅담’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의무경찰은 현징 자키라는 상관의 명령을 따르다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인터넷).  어떻게 경찰 지휘관들이 자신들의 잘못된 지휘를 은폐하기 위해 한 의무경찰을 시민을 구하다 숨진 것으로 둔갑시켰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짓말로 진실을 외곡하고 덮으버린 이 사건을 기사를 통해서 읽으면서 저는 이러한 일이 심지어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것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거짓말로 진실을 은폐하고 온 교회 성도들을 속이는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분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실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요 성경에 나오는 신앙의 조상들의 모습입니다. 

 

성경 창세기를 읽다보면 우리가 말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거짓말 하였고 그의 아들 이삭도 거짓말 하였으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의 아들인 야곱도 자기 아버지를 속여서 형인 장자 에서의 축복을 자기가 다 가로챕니다.  그리고 에서가 자기를 죽이고자 하닌까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거짓말을 부추긴 어머니?) 받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갑니다.  거기서 20년간 외삼촌 라반의 두 딸들과 양떼를 위하여 외삼촌 라반을 봉상하였지만 라반은 야곱을 속여 그의 품삯을 열번이나 번역하였습니다(창31:7, 41).  속이고 또한 속임을 당하는 야곱, 외삼촌 라반을 위하여 20년이나 봉사하면서 품값을 열번이나 번역당하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함께 계셨고(5절), 라반을 금하사 야곱을 해치 못하게 하셨으며(7절) 또한 라반의 짐승을 빼앗아 야곱에게 주셨습니다(9절).  그러므로 야곱은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아졌습니다(30:43).  그런데 문제는 야곱이 심히 풍부해지닌까 야곱의 사촌들이자 외삼촌 라반의 아들들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았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고 말하기 시직한 것입니다(31:1).  그리고 외삼촌 라반의 안색이 야곱에게 대하여 전과 같이 아니해졌습니다(2, 5절).  그 때에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3절).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야곱에게 라헬과 레아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때 라헬과 레아는 야곱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16절).  그래서 야곱은 일어나 자식들과 아내들과 약대들을 태우고 그 얻은바 모든 짐승과 모든 소유물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 있는 그 아비 이삭에게로 향합니다(17-18절).  삼일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을 라반이 알고(22절) 그 형제들을 거느리고  야곱을 좇아 그에게 미쳤지만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가라사대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으므로(24절) 야곱을 해할만한 능력이 있었지만(29절) 그는 야곱을 해하지 않고 그와 언약을 세운 후(44절) 그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우며 축복한 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55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야곱처럼 속이는 자(“야곱”이란 이름의 뜻이기도 함)와 함께 하셨고 라반으로 하여금 그를 금하사 야곱을 해치 못하도록 보호해 주셨으며 또한 품삯을 열번이나 번역한 라반의 짐승을 야곱에게 풍부하게 주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유를 야곱이 그의 부인들인 라헬과 레아에게 한 말에서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 그러할찌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5절).  다시 말하면, 거짓되고 불성실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보호해 주시며 풍부케 하신 이유는 야곱이 무엇인가를 하나님께 잘해서 그의 공로로 된 것이 절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과 맺은 언약 때문이요 더 나아가서는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맺으신 언약에 충실하시므로 야곱과 함께 하셨고, 그를 보호해 주셨으면 또한 그를 풍성케 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무 자격 없고, 아무 공로 없으며 오히려 아버지를 속이기까지 한 하나님께 죄를 범한 야곱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고 보호해 주시며 풍성케 하신 것은 바로 우리 하나님의 언약의 하나님이시요 그 언약에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진실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신실하시고 진실하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미쁨이 없을지라도 일향 미쁘셔서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딤후2:13).  이 미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맺으신 언약으로 인하여 임마누엘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보호해 주시며 또한 우리에게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풍부하게 주셨습니다(엡1:3).  그리고 우리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정한 약속의 땅인 천국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계십니다.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공급하심과 인도하심 등을 받는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진실하신 것처럼 우리도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신실하신 것처럼 우리는 신실해야 합니다.  참된 진실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날마다 자비를 베푸시며

일용할 모든 것 내려주시니 오 신실 하신 주 나의 구주”

(찬송가 447장 “오 신실하신 주” 1절과 후렴).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