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마태복음 1장 21절)

 

 

2011년 12월 7일 날짜에 발간된 크리스찬 투데이란 신문을 보닌까 신문 제1면에 큰 글짜로 “올해 성탄절은 주일이라 예배없다?”란 제목의 기사가 있서 무슨 말인가 해서 좀 읽어보았습니다.  라이프웨이리서치 라는 기관에서 목회자들 1천명에게 설문을 했는데 그 설문 조사 질문은 “올해는 크리스마스와 정월 초하루가 모두 주일인데 귀교회는 크리스마스 이브/크리스마스/새해 이브/새해에 예배할 계획인가?”였다고 합니다.  이 설문 조자 결과는 목회자들 63%는 이브와 성탄절 당일 모두 예배를 한다고 밝힌 반면에 성탄주일에만 예배를 하고 이브는 하지 않는다는 교회는 28%였다고 합니다.  반대로 이브 날인 24일에만 예배하고 성탄절을 쉬겠다는 목회자들은 6%였다고 합니다.  이 6% 목회자들 중 시카고에 있는 그 유명한 대형교회 목사님은 성탄절의 현대적 내레이션을 담은 DVD를 제작, 배포해 집에서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즐기도록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한편 동일 조사기관의 2011년 12월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74%는 크리스마는 종교적 축하 내지는 기념일이라고 답하면서, 67%는 이 시즌에 즐기는 것 다수는 예수님의 탄생과 무관하다고 시인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것이 우리가 접한 현실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 곧 67%되는 많은 미국인들은 크리스마스를 그저 하나의 공휴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저는 좀 더 피부적으로 느끼는 것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를 때 느낌.  거의 다가 “Happy Holiday”(해피 홀리데이)라고 써 있지 “Merry Christmas”라고 써있는 카드는 해가 갈 수록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 만큼 이젠 크리스마스가 예수님을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기보다 하나의 기쁘고 즐거운 공휴일로 기념하고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젠 크리스마스는 아기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 공휴일이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이렇게 아기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언젠가 한 성도님하고 대화하면서 들은 이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잘 아는 UCLA라는 유명한 대학에서도 “Historical Jesus”(역사적 예수)라는 과목에서 한 유대인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역사적으로 예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음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이젠 대학교에서도 예수님의 존재를 부인하게 만드는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통해서든 대학 교육을 통해서든 예수님을 없애는데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더 이상 새삼스럽게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왠지 이러한 현실보다 더 염려되고 우려하는 현상이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염려되는 현상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비기독교인들처럼 아기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축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은 ‘아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언제 어떻게 아기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며 축하하고 있다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저와 여러분처럼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각자 섬기는 교회에 함께 모여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외면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내면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외면적으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는 하지만 내면적으로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점점 더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예수님의 이름이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지 않나 염려됩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장 21절을 보면 성경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그 이름의 뜻은 바로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예수님께서 그의 백성인 저와 여러분들을 어디서 구원해 주셨습니까?  바로 우리의 죄에서 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롬6:23)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므로 우리를 우리의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의 뜻대로 영원히 죽고 멸망당할 수 밖에 없었던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그리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사 우리를 죄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저와 여러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우리는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왜 그리하셨습니까?  성경 요한복음 3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점점 더 희미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어느 누구나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기 안에 거하고 있는 죄의 법(롬7:25)과 싸우고 있을 것임.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때에 우리는 이 영적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패하여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죄할 때가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했을 때 우리는 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또 똑같은 죄를 습관적으로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진정으로 회개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하고 안타까운 현실은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미 우리의 죄에서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지금 우리가 습관적으로 범하고 있는 죄에서 건져주실 것이라는 구원의 확신이 우리 안에서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습관적인 많은 죄 중에 하나는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드리면서도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이웃을 사랑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이웃이 나에게 범한 죄를 용서하지 못하면서 과연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과연 우리의 용서하지 않는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 어두운 세상에 밝게 비취는 것입니까?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면서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목적을 우리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목적은 그의 이름의 뜻대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들의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은 무엇입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이 되야 합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롬1:16)을 전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입을 열어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왠지 이 삶의 목적이 우리 가운데 점점 희미해 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탄생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 이름’이 우리 가운데서 희미해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라기는 2011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가 “예수”라는 그 이름을 또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한 가운데 혹여나 지금 우리 안에 예수님의 이름이 점점 더 희미해지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님의 복음의 빛을 환하게 밝히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를 우리의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며 우리의 죄를 자백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그 이름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면 죄에서 건져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불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십시다.  그리고 만일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탄생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을 발하며 살아가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십시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진정으로 회개하므로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시고 우리를 그 모든 죄에거 건져주시므로 말미암아 죄 사함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삶에 목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우리의 입술과 삶으로 전하는데 다시 한번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억하며 기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