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누가복음 23장 40-42절).
어제 오후 저녁 식사 전에 저희 집 막둥이인 예은이가 저에게 오더니 방과후 학교에서 자신의 중간보고(progress report)를 제 앞에서 읽었습니다. 그 아이가 읽더니 갑자기 저에게 하는 말이 자기가 잘해서 좋은 평가(성적)를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는 평범한데(normal) 다른 아이들이 잘 못해서 자기가 좋은 평가(성적)를 받았다고 말하더군요. 좀 웃겼습니다. 그 8살난 아이가 아빠 앞에서 자기가 방과후 학교에서 잘한 것을 자랑할 수도 있었을텐데 오히려 자기 자신은 평범하다고 말하니 웃기기도 하고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하고 예은이에 대해서 대화를 잠깐 나눈 후 다시 한번 예은이가 저에게 말한 말을 생각해 볼 때 한 세 가지로 제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습니다: (1) 내 자신을 알자, (2)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자, 그리고 (3) 겸손하자.
오늘 새벽기도회 때 누가복음 23장 40-42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는 또 다시 어제 예은이를 통하여 생각해 본 세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옆에 함께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가 또 다른 한 행악자가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하였을 때(39절) 그 행악자 중 하나는 그 다른 행악자를 꾸짖었습니다(40절). 그의 꾸짖음을 생각할 때 한 세 자기로 저는 제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그 행악자가 자기 자신을 알았던 것처럼 저도 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 사형 선고를 받를(32절) 두 행악자들 중 한 행악자는 자기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기나 또 다른 행악자나 십자가에 달려 죽게 된 것이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으로 마땅하게 여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였기에(40절) 정죄를 받고서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 자기 행악죄의 결과인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진정으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진정한 회개하는 마음이 있었기에(박윤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할 상당한 보응인 사형을 겸허이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행악자는 자기 죄악의 결과로 십자가에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과 또 다른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를 구원하라고 예수님께 말하였습니다(39절). 즉, 그는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40절). 이 두 행악자들을 생각해 볼 때 저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영원히 멸망 당하는 것이 당연한(마땅한) 죄인이었음을 알고 또한 의식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그 의식을 망각하고 하나님께 교만한 마음과 자세로 나아가 구원해 주시길 기도하곤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어서 영원히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이었는데 그러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죄인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더 공로의식을 갖게 되는 제 자신을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이리 은혜 의식을 속히 잃어버리는지 참 제 자신 스스로도 놀라곤 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말씀(롬5:20)을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의 주제를 더욱더 알아가되 얼마나 큰 죄인이요 죄인중에 괴수인지를 알아가므로 그러한 저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를 알아 은혜 의식을 가지고 은혜의 힘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둘째로, 그 행악자가 바로 판단하였던 것처럼 저도 바른 판단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여 자기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던 그 행악자는 자기나 또 다른 행악자나 자기들의 행한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린 것이 마땅한 줄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만한 잘못이 없다는 것을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this man has done nothing wrong”)(41절). 이 행악자 외에 빌라도도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하고(2절) 소동케 하였다(5절) 하여 힘써 고소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10절 그리고 무리에게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4절),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15절),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22절)고 세 번씩이나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는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는 그 무리들로 인하여(21, 23절)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아주고 예수님을 그들에게 넘겨주어 그들 뜻대로 하게 하였습니다(25절). 그 무리들의 소리가 빌라도의 소리를 이긴 것입니다(23절). 좀 웃기지 않습니까? 빌라도는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음을 바로 판단했으면서도 예수님을 풀어주기보다 죄 있는 바라바(19절)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 판단력에 근거하여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그 무리들의 간청의 소리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도록 내버려 둔 것입니다. 이 빌라도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만큰 잘못한 것이 없으심을 알고 있었던 그 행악자나 생각해 볼 때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모든 주위 사람들이 잘못 판단을 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분별하여 옳고 바르게 행동을 취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셋째로, 그 행악자가 겸손히 예수님께 구한 것처럼 저도 주님께 겸손히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2절을 보십시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자기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인 사형을 겸손히 받아 들이고 있었던 그 행악자는 자기처럼 당당한 보응을 받을 만한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에게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Jesus, remember me when You come in Your kingdom!)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즉, 그는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자기를 기억해 주시길 간구한 것입니다. 이 간구는 그 행악자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자기의 구원을 겸손히 부탁한 것입니다(박윤선). 이것은 그 행악자가 하나님을 두려워 했을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구원자이심을 믿었기에 가능한 부탁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이 사형을 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여겼던 그 행악자,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신데 자기처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그는 믿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예수님께 부탁한 것입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셨는데(눅23:46) 그 전에 그 행악자는 자기의 영혼을 예수님께 부탁하는 모습이 흥미롭지 않습니까? 저는 이 행악자가 예수님께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겸손히 부탁드린 것을 생각하면서 어제 새벽기도회 때 주님께 ‘예수님, 저를 생각해 주세요,’ ‘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저 같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던 큰 죄인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을 선물로 받아 십자가에 저의 모든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저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케 하시사 저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주님을 생각하면서 ‘예수님, 저를 생각해 주세요’, ‘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기도드렸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을 알아가면서 옳바른 영적 판단력을 가지고 겸손히 주님께 기도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주님께 기억된 바 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