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줄 모르는 하나님의 자녀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말라기 3장 7절).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회개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아니, 지금 우리는 회개의 필요성조차도 절실히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는 죄를 죄로 여기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범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도 양심에 찔림이 없습니다.  그정도로 우리의 양심은 마비되있고 강퍅해져 있습니다.  왜 우리의 양심이 이 지경까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죄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를 짖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기에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돌아가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말라기 3장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열조의 날로부터 하나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이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 돌아가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가고 싶으셔서 그들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라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에서 떠나 회개하여 돌이켜 하나님 아버지께 돌아갈 줄 모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지경까지 왔습니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멀러 떠나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익숙하였기 때문이라 저는 생각합니다.  범죄하는 것이 익숙하되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었으면서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들은 죄를 죄로 여길 수 없을 정도로 죄를 짖는 것이 익숙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라고 반응하였습니다(1:6).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며 존경하는 것이 마땅하건만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다.  그러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라고 말한 것을 보면 하나님의 종들인 이스라엘 제사장들조차도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할정도로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범죄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렸다(7절)리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7절)라고 반응하였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자기들의 총독에게도 드리지 않을 “눈 먼 희생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또한 병든 것으로도 하나님 드리는 악행을 범하고 있었으면서도(8절)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7절)로 반응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이 이렇게 자기들의 범죄에 대해어 무감각했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죽했겠습니까?  말라기 2장 1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말로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고도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괴로우시게 하였나”라고 반응하였습니다(2:17).  분명히 그들은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17절)라고 말하므로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였건만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였습니다(17절).  또한 말라기 3장 8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와 헌물을 도덕질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8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범하는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양심은 마비되어 있었고 강퍅해져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3:14)라고 생각하며 또한 말하고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교만한 자가 복되다”,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15절)라고 생각하며 또한 말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지경까지 오게 된 것입니까?  그 핵심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볼 때 저는 그 대답을 말라기 1장 2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곧,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양심은 마비되었고 또한 강퍅해져서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에 마비되고 강퍅해진 양심으로 하나님께 범죄하면서도 죄를 죄로 여기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있지 않습니다(1:6).  지금 우리 목사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있습니다(6절).  지금 우리들은 “더러운 떡을 나(하나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7절).  지금 우리는 “주의 상을 경멸히 여”기고 있습니다(7절).  지금 우리는 대통령에게 드려고 기뻐하지 않을 “눈 먼 희생”과 “저는 것, 병든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고 있으면서도 우리의 악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8절).  지금 우리는 “내(하나님의)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고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10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목사들이 이정도이니 성도님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지금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고 있습니다(2:17).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행악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관점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면서 ‘지금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선히 보이며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17절).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하나님게 더 선히 보이며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답시고 심지어 하나님의 것인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고 있습니다(3:8).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8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완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습니다(12절).  그러면서도 지금 우리는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13절)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1:2)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변역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unchanging God)을 바라보아야 합니다(3:6).  비록 우리는 수시로 변질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어기고 범죄할지라도 우리는 우리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맺으신 언약에 충실하고 계시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sovereign love of God)과 나 같은 죄인을 선택하여 주신 사랑(chosen love of God)으로 인하여(1:2) 우리 마미되고 강팍하게된 양심이 녹아져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3:7).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변치않으시는 사랑과 풍성한 은혜의 힘으로 하나님께 회개하며 죄에서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킬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자녀들로(4:2)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키게 하실 것입니다(4: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의 말을 분명히 들으시고(3:16) 우리를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사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녀들을 아낌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끼실 것입니다(17절).  이 귀한 축복이 우리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불순종한 요나, 탕자, 음탕한 고멜과 같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