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에스겔 18장 25절).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불공평하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보다 행위의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하므로 공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가 율법의 관점에서 부족하다든지 잘 못하고 있는 형제를 정죄하며 용서 및 용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요 또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공로의식이 아니라 은혜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형제를 그 모습 그대로 용납하며, 우리에게 죄 지은 자도 용서하며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18장 25절에 나오는 율법을 지키므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대인들은 “주의 길이 공평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는 주님의 길이 공평치 않은 것입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주님의 길이 공평치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행위 구원의 관점으로 볼 때에 악인일찌라도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주님의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주님께서는 그가 살고 죽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겔18:21-22).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의 행위 구원의 관점에서 볼 때에 악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님께서 그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더 나아가서 그의 모든 죄를 기억지 아니하여 주시는 주님의 길은 참 불공평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 율법을 지켜 행하므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기 전에 옆에 메달렸던 한 강도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든 죄 사함받고 그 죄가 기억된바 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눅23:43)을 생각할 때 주님의 길이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주님의 길이 공평지 않을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행위 구원의 관점으로 볼 때에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의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주님께서는 그 행한 의로운 일을 하나도 기억지 아니하시고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인하여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겔18:25).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의 행위 구원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의인이 율법을 지켜 행하다가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할 때에 주님께서는 그를 구원해 주지 않으시고 죽게 하신다는 것이 너무나 불공평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평생 율법을 지켜 행하므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사울이 그리스도의 도를 좇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어떻게 범죄가 되겠습니까?  결고 그들의 관점에서 사울은 “그 의에서 떠나서 범죄”한 것이 아니였습니다(24절).  오히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사울은 의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사울의 그 모든 의를 기억지 아니하신다고 하니 이 얼마나 주님의 길이 불공평합니까?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믿었던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는 것이 죄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롬14:23)인 줄 몰랐습니다.  행위 구원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하는 예수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수가 있습니까?(빌2:6-8)  행위 구원을 강조하는 그들의 관점에서는 예수의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예수님의 행위는 마땅히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라고 소리질렀던 것입니다(요19:6).  이렇게 주님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겔18:25)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의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불공평한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행위가 율법의 관점에서 부족하다든지 잘 못하고 있는 형제를 정죄하며 용서 및 용납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럼에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불평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란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 악인이 돌이켜 그 죄악된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23절).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돌이켜 회개하고(30절)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것(31절)을 무척이나 기뻐하시는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공로의식을 버리고 은혜의식 가운데 형제들을 은혜로 대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나는 자들을(30절)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며 그 모든 죄를 기억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길 원하고 계십니다(눅11:4).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같은 악인을 돌이켜 회개케 하시사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주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기억지 아니하시는 이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가 공평한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공평한 길을 걷는 사람이 되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