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된 목사와 거짓된 교인

 

 

 

“내가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너희가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너희가 또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였은즉”  (에스겔 13장 22절).

 

 

            거짓된 목사는 거짓된 선지자처럼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out of his own imagination)(겔13:2)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그는 거짓된 선지자처럼 “본 것이 없이 자기 심령을 따라”(following his own spirit and has seen nothing) 설교를 합니다(3절).  “우매한”(3절) 목사입니다(The foolish pastor).  그는 “황무지에 있는 여우 같”습니다(4절).  다시 말하면, 거짓된 목사는 언제나 사람의 영혼을 망하게 합니다(박윤선).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허탄한 것(묵시)과 거짓된 점괘”(falsehood/a false vision and lying divination)를 말합니다(6, 7, 8, 9절).  거짓된 목사는 거짓된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고 말합니다(10, 16절).  한 마디로, 그는 거짓 위로의 말만합니다(박윤선).  결코 거짓된 목사는 참된 선지자처럼 면책을 하지 않습니다.  결코 거짓된 목사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과 면책의 말씀, 죄를 지적하고 들춰내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 선포하되 자기 마음에는 범죄하고 있는 교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죄의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된 위로가 있을 수 있습니까?  지금 죄의 문제로 인하여 평강이 없는데 어떻게 평강이 있다고 설교를 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은 마치 모래를 쌓고 거기에 회칠함과 같습니다(10절).  지금 거짓된 목사는 교인들을 모래 위에 세우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회칠함 같이 교인들을 멀쩡하게 보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금 거짓된 목사는 교인들의 손을 굳게 하여(encouraged) 그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삶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22절).  그는 거짓 위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위로는 그들을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repent and return)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면서 거짓된 목사는 하나님께서 슬프게 하지 아니한 의인의 마음을 거짓말로 근심(disheartened)하게 하고 있습니다(22절).  이러한 거짓된 목사 때문에 거짓된 교인이 무수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거짓된 교인은 거짓된 목사의 “거짓말을 곧이 듣”습니다(19절).  그는 거짓된 목사가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10, 16절)고 주일에 설교하면 “아멘”을 외치면서 “은혜”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뻐하면서 예배당을 떠나 세상에 나아가서 그 받은 싸구려 은혜의 힘으로 또 죄를 범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여길 수도 없는 교인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는 참된 목사가 ‘평강이 없습니다’라고 주일에 설교하면 그 목사 설교에 시험들어 그 목사를 싫어하며 결국에는 교회를 떠납니다. 그 이유는 그는 그 정도로 마음이 강팍해져 있고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도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죄로 인하여 마음에 평강이 없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는 의로운데 그 목사가 ‘평강이 없습니다’라고 설교하닌까 자기 마음에 평강을 잃었다고 하면서 불평, 원망 가운데 교회를 떠납니다.  이렇게 거짓된 교인은 평강이 없는데 평강이 있다는 설교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는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딤후4:3) 있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문제는 거짓된 교인은 자기가 곧이 들은 그 거짓말(겔13:19)이 “굳게 이루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6절).  아니 어떻게 거짓 선지자가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2절) 예언한 “허탄한 것(묵시)와 거짓된 점쾌”(6, 7, 8, 9절)가 이루어지길 바랄 수 있습니까?  “우매한”(3절) 교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The foolish layman).  결국 거짓된 교인은 스스로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거짓된 목사의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는 설교를 듣고 위로를 받아 자기의 손을 굳게 하여(22절) 계속해서 자기의 죄악된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자기가 의의 길을 걷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거짓된 교인은 지금 거룩하신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수한 거짓된 교인 때문에 거짓된 목사가 무수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거짓된 목사가 아닌 참된 목사가 되길 간절히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