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 11장 19-20절).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문제입니다.  참 심각한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바로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고전3:3).  지금 우리 교회 지도자들의 신앙은 너무 유치하여 불신자의 정도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의 말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의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기보다 시기와 분쟁(3절) 가운데 교회를 분열시키며 또한 분리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하기보다 사람인 우리 자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21절).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데(7절), 우리는 그저 주님께서 부르시사 사용하시는 사역자들일 뿐인데(5절)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갈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시115:1)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지금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주님의 진실하심과 인자하심을 깨닫지 못하므로 교회 성도들에게 입술로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고 말하지만 우리 마음으로는 ‘여러분들이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우리에게 돌리소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사람들에게 영광 받는 것이 몸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지도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 시대 때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은(겔11:1)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의를 품고 예루살렘 성중에서 악한 꾀(wicked advice)를 베풀었습니다(2절).  그들은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그릇되게 지도하였습니다.  그 그릇된 지도는 이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외국에서 집을 건축할 때가 멀었다고 말한 것입니다(3절).  분명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에 잡혀간 유대인들에게 “집을 짓고 거기 거하”라고 말하였는데(렘29:5) 이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반대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말의 뜻은 유다 나라가 아주 패망할 때는 멀었으니 안심하고 예루살렘에 살게 되리라는 의미입니다(박윤선).  이 외에도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북에서부터 바벨론이 전쟁을 일으켜 예루살렘이 가마와 같이 물끓듯이 불안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는데(1:13) 이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 예언의 말씀을 외곡하여 전혀 다른 사상인 ‘예루살렘 성읍은 가마와 같이 보호하는 자요 자기들은 그 가운데 담겨 있는 고기처럼 보호를 받을 것이다’(박윤선)라고 유다 백성들을 지도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의하고 악한 유대 지도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쳐서 예언케 하시사(겔11:4) 그들이 의지하던 가마와 같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유다 백성들을 끌어내어 타국인인 바벨론의 손에 붙여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9절).  그 이유는 유대인 지도자들이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들의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12절).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들어 일으켜 이스라엘을 치시므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 가는 일이 생길진데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이 자기들보다 먼저 사로잡혀 가는 동포들을 향하여 “너희는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라”(예루살렘에서 떠나가라 우리는 여기서 평안히 살겠다는 의미) (박윤선)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불의하고 악한 유대인 지도자들로 인하여 유다 백성들은 한 마음을 품지 못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은 하나님의 율례를 버리고  그들 사면에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였던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되 특히 오늘 본문 에스겔 11장 19-20절에서는 새 신(a new spirit)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부드러운 마음(a heart of flesh)을 주어서 하나님의 율례를 좇으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one heart)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한 우리들에게 새 신이 되시는 성령님을 주셨고 또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되었다(롬5:5)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면서 던지게 된 질문이 바로 “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셨을까요?”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님을 주신 목적은 우리들로 하여금 성령님의 열매인 사랑으로(갈5:22)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눅10:27)임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오늘 본문 에스겔 11장 19-20절과 어떠한 연관이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율례를 행하며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겔11:12).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입니다(요14:21).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먼저 우리 사면에 있는 불신자들의 규례대로 행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계명를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 지도자들과 달리 더 이상 불의를 품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양 떼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지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이웃과 더불어 주님 안에서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시사(겔11:19) 우리 교회로 하여금 주님 안에서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게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교회 지도자들이나 그 지도를 받는 성령 충만한 좇는 자들은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므로(눅10:27)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요14:21) 또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므로(눅10:27) 말미암아 교회의 하나됨(통일성)을 힘써 지켜 나아갑니다(엡4:3).  그러므로 성령충만한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하나님(겔11:20)께만 영광을 돌립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성령충만한 우리 교회 지도자들과 모든 성도님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시 115:1),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