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은혜를 얻는 교회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예레미야 31장 2절).

 

 

            여러분은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 살아가시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리고 계십니까? 

 

            우리가 “광야”하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을 얻고자(히4:8)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40년간 걸었던 광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점에서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는 곳(민21:5)으로서 불신앙과 불만족 속에서 하나님께 불평하며 원망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그 동일한 광야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반석을 쪼개사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물을 흡족히 마시우게 하시며(시78:15) 하늘 문을 여시사 하늘의 양식인 만나를 그들에게 풍족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내시는 장소였습니다.  그 광야는 원망하며 욕심을 크게 발하며 하나님을 시험한(tempted)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시106:14)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진노하시다가도(민32:10) 그들을 긍휼이 여기사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곳이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광야 하면 찬송가 474장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가 생각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저는 광야란 근심된과 곤고한 일, 죄악된 일이 쌓인 세상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은 죽을 일도 쌓인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슬픔과 눈물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러한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은혜는 바로 “안식”(rest)입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31장 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의 칼에서 벗어난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와 같은 바벨론에서 은혜를 얻었는데 그 은혜는 바로 안식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안식을 주셨습니까?  바로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의 말씀을 믿는 자들만이 슬픔과 근심이 많은(13절) 광야와 같은 바벨론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한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자함으로 인도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되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시기에 그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을 옛적에도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사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동일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 바벨론의 칼에 살아 남아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인자함으로 인도하여 내시겠다고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에서 인도하여 땅 끝에서 모으시사 그들로 하여금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8절).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입고 간구하되(9절)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7절)라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서 구속(속량) 하시사(11절)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바른 길로 행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9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니아다”(18절)라고 간구할 때 그 기도 소리를 들으시사 그들을 인자하심으로 이끌어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해주시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절).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목자되신 주님은 그의 교회인 우리를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 같이 지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78:52).  그 주님은 우리는 애굽과 같과 바벨론과 같은 사단의 왕국에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이끌어 내시사 지금도 우리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23:2).  바로 이 주님이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시48:14).  그러므로 우리는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그의 인자하심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우리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훼파한 예루살렘 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한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벽과 성전을 다시 세우도록 하나님의 선한 손길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러나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세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예루살렘 성만을 가리켰을까요?  결코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녀입니까?  그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우상을 섬긴 영적 간음자들이였습니다(18:13, 15).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음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켜 “처녀 이스라엘”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시므로 말미암아(34절) 옛날에 순전한 “처녀”(2:2, 3)였던 그대로 보아 주셨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순전한 처녀로 다시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할 때 그들은 다시 세움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폐역하여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새창조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약속입니다(22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시사 (23절) 그들을 세우며 심으시겠다(28절)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성지”로 삼으시사 “영영히 다시는 뽑히거나 전복되지 아니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40절). 

 

            교회의 머리가 되시며 모퉁이 돌이 되시는 주님은 그의 교회를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마16:18) 그 약속을 신실하게 성취해 나아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취해 나아가시되 주님께서는 교회를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고 계십니다(엡5:27).  주님께서는 우리를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사 신랑되신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신부된 영광스러운 교회를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청하시려고 하고 계십니다(계19:9).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인 우리를 영원한 천국에 심으시고자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시온에 올라가 하나님께 나아가 찬송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레미야 31장 6절과 1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에브라임산 위에서 파숫군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사(11절) 그들로 하여금 시온에 올라가서(6절) 하나님께 나아가 기뻐 노래하며 찬양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 다(7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시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하시므로(13절)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 찬송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14, 25절) 슬픔 심령을 상쾌케 하므로 (25절)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을 찬송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원 받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시온의 높은 곳에 와서 찬송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심령을 물댄 동산 같게 하시고 다시는 근심이 없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12절).   

 

            교회의 신랑이 되시는 주님께서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슬픔을 돌이켜 기쁨이 되게 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물댄 동산 같게 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케 하고 계십니다.  바로 그 주님께서 교회의 ”최후의 소망”(17절)이 되시사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히4:1, 9).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광야 교회(행7:38)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부분적으로 누리고 있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