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는 기도

 

 

“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이사야 64장 5절).

 

 

            지금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교회는 기쁘게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지 않습니다(5절).  오히려 주님의 교회는 지금 의를 부득이하여 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습니다(6절).  우리는 다 부정한 자들 같습니다(6절).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고있습니다(6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고 우리를 우리의 죄악의 파워에 내어버려 두셨습니다(7절).  그 결과 우리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있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님을 붙잡는 자도 없습니다(7절).  이렇게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님께서 진노하고 계십니다(5절).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인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는 것인 오늘만의 현상이 아니라 이미 오래되었습니다(5절).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교회는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5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이사야 64장 5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 우리가 범죄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기 위해선 우리는 상선악벌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음을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6절 상반절).  또한 우리는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 가므로(6절 하반절)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스스로 분발하여 주님을 붙잡지도 않고 있음을 거룩하신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7절).  그리할 때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요일 1:9).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이사야 64장 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주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되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아(롬8:14) 우리는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어야 합니다(15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라고 간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측은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눅15:20).

 

            셋째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사야 64장 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기 위해선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주님은 토기장이이십니다.   우리는 진흙이요 다 주님의 손으로 지으신 것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요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된 피조물됨을 인정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서 진흙된 우리는 우리 자신을 토기장이 되신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오래 동안 범죄하는 우리를 마치 토기장이가 그릇을 훼파함 같이 우리를 아낌이 없이 파쇄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사30:14).  그러므로 우리는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들로서 결코 우리를 지으신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다투되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그는 손이 없다”해서는 아니됩니다(사45:9).  결코 우리는 지음을 받은 자들로서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고 말해서는 아니됩니다(29:16).  결코 우리는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어찌 우리를 이같이 만드셨습니까?’라고 힐문해서는 아니됩니다(롬8:20).  “항상 진실케”(Change my heart, Oh God)이란 복음성가가 생각납니다: “항상 진실케 내 맘 바꾸사 하나님 닮게 하여 주소서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 날 빚으소서 기도하오니 항상 진실케 내 맘 바꾸사 하나님 닮게 하여 주소서.”  우리가 토기장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 재창조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시103:13).

 

            넷째로,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우리의 죄를 영영히 기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이사야 64장 9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기 위해선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하나님께 ‘하나님 과히 분노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과히 분노하시면 우리는 없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렘10:24).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길 원하시는 하나님께 ‘하나님 우리의 죄를 영영히 기억하지 말아주세요’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영영히 기억하신다면 우리는 멸망다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려야 합니다: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시 27:7).  그리할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멈추시고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며 주님의 인자하심 따라 우리를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황폐되고 황무케 된 우리 교회의 모습을 하나님께 아뢰드려야 합니다.

 

            이사야 64장 10-11절을 보십시오: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우리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의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무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기 위해선 우리의 참상을 하나님께 슬프게 기도로 하소연 해야 합니다.  황폐되고 황무케 된 우리 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직시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애소해야 합니다(박윤선).  혹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실지 누가 알겠습니까?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는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렸을 때 과연 하나님 아버지께서 스스로 억제하시겠습니까? (12절)  과연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히려 잠잠하시고 우리로 심한 괴로움을 계속에서 받게 하시겠습니까? (12절)

 

 

 

하나님의 긍휼을 움직이는 기도를 드리고 싶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