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통곡, 우리의 통곡

 

 

“이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 나는 슬피 통곡하겠노라 내 딸 백성이 패멸하였음을 인하여 나를 위로하려고 힘쓰지 말지니라” (이사야 22장 4절).

 

 

            이사야 선지자는 슬피 울며 통곡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로 받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유대 민족이 패망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4절).  저도 슬피 울며 통곡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멸망당하는 사랑하는 영혼들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위로 받기를 거부하고 싶습니다.  오히려 제 마음에 죽을 때까지 멸망당하는 영혼들을 향한 예수님의 상처가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22장 4절 말씀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이사야 선지자가 왜 슬피 울며 통곡을 하였는지 한 세 가지로 묵상하면서 동일한 눈물과 통곡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이사야 선지자는 “이상 골짜기”가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로 변질된 것을 보고 슬피 울며 통곡하였습니다.

 

            이사야 22장 1-2절을 보십시오: “이상 골짜기에 관한 경고라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찜인고 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 너의 죽임을 당한 자가 칼에 죽은 것도 아니요 전쟁에 사망한 것도 아니며”.  이사야 선지자가 슬피 울며 통곡하였던 구체적인 이유는 “이상 골짜기”, 즉 이상과 묵시로 많이 가르침이 되던 예루살렘 도시가 하나님을 저버리고 향락주의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훤화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 (박윤선)].  왜 이렇게 예루살렘 도시가 변질 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상과 묵시로 많은 가르침들을 받았지만 그 많은 가르침들을 지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 도시가 변질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이렇게 변질된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고 이사야 선지자는 슬피 울며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변질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이사야 선지자처럼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하지 않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의 이상과 묵시로 많은 가르침들이 있으면 무엇합니까?  우리가 그 하나님의 가르침들을 지켜 행하는 제자의 삶을 살고자 헌신을 하고 있지 않는데 그 많은 가르침들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더 심각한 문제는 교회 안에서 전파되고 있는 가르침들이 하나님의 이상과 묵시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들이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젠 더 이상 예배당 강단과 성경공부 반에서 전파되는 가르침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요 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언 29장 18절 말씀을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are unrestrained, But happy is he who keeps the law).  우리는 더 이상 방자히 행해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므로 참된 복과 기쁨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이사야 선지자는 유대 백성들이 당하는 환난을 보고 슬피 울며 통곡하였습니다.

 

            이사야 22장 5절을 보십시오: “이상의 골짜기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이르는 분요와 밟힘과 혼란의 날이여 성벽의 무너뜨림과 산악에 사무치는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사야 선지자가 슬피 울며 통곡하였던 구체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향락주의로 빠진 유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로 인한 환난 때문이었습니다.  그 “혼란의 날”에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뜨림바 되며 또한 밟힘바 될 것을 생각하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슬피 울며 통곡한 것입니다.  왜 이러한 환난을 예루살렘 도시가 받은 것입니까?  그 이유는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이상과 묵시로 많은 가르침들을 받았지만 그 많은 가르침들을 지켜 행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에 하나님께 매를 받아 징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슬피 울며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사야 선지자처럼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고 있지 않습니다(마28:19-20).  한 마디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생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환난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을 경외함을 배워야 하며 또한 우리는 회개의 눈물을 훌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사 우리를 환난 가운데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존경하지 아니하는 유다 백성들을 보고 슬피 울며 통곡하였습니다.

 

            이사야 22장 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또 옛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자를 존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슬피 울며 통곡하였던 구체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며 범죄하는 유대 백성들을 징계하심에 있어서 앗수르의 산헤립을 징벙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에 환난 중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8절) 또한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면서(9절)  수축하려고 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들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그 대신 이런 저런 수비 행위를 철석 같이 하여 믿었습니다(박윤선).  즉, 유대 백성들은 환난 날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슬피 울며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하지 않습니까?  입술로만 하나님을 존경하면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면서 우리는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변질된 모습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로 인하여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보다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인간적 수단 방법만 전적으로 의지하는(박윤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의뢰하고 우리 명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잠3:5).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분의 말씀을 찬송해야 합니다(시56:10).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의 변질된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가 당하고 있는 환난을 보고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슬피 울며 통곡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이 여겨 주시길 기원합니다.

 

 

 

회개의 눈물, 감사의 눈물, 헌신의 눈물을 흘리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