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부모
[에베소서 6장 4절]
어느 조사에 따르면 부모를 미워하는 청년들이 많이 생겨났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유형은 한 네가지로 나뉩니다(인터넷): (1) 첫째, 이렇게 나를 미워하고 때렸으니 두고보자 형 - 이는 아동기때 언어적으로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2) 둘째, 해준 게 뭐가 있냐는 형 - 이는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거나 부모님들의 속물 근성이 지나쳐 아이들에게 영향력을 끼친 경우입니다. (3) 셋째, 왜 나를 이렇게 나았느냐는 형 - 이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열등감이 지나친 아이들에 해당됩니다. (4) 넷째, 나를 잘못 키웠다 형 - 부모님들에게 심한 구속을 받은 과잉보호 자녀들이나 애정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대체로 내성적이고 외톨이로서 밖에서는 얌전하지만 가정에서는 반항적이고 기물 파괴, 폭행, 증오심, 폭발, 폭군등의 행동으로 변하게 됩니다. 외톨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문제를 부모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러한 세대 현상은 부모의 과보호와 너무 사랑한 결과로 생기게 된 것이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이 만든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문제 학생 뒤에는 언제나 문제가정, 문제부모가 있습니다. 왜 우리 자녀들이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순기능가정의 모습은 사랑, 가정의 평화, 부부간의 화목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기능가정의 모습은 가정의 평와나 부부간의 화목이 있기보다 갈등과 문제가 많습니다. 이러한 역기능가정을 길가, 돌밭, 가시떨기밭으로 비유할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역기능가정은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기에 어린아이가 바르게 양육될수 없는지 한 다섯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인터넷): (1) 첫째로, 역기능가정은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합니다. 역기능가정에서는 자녀를 양육해야할 성인이 문제를 안고 있어서 오히려 자녀들이 그 성인의 욕구를 채워주어야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순기능 가정은 이와 반대입니다. 순기능가정은 모두가 평화로운 마음, 자녀가 부모에게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서 마음을 쓰는 그런 가정이 됩니다. (2) 둘째로, 역기능 가정은 감정의 표현을 많이 제한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묻어두어야 합니다. 역기능가정은 왜곡된 신앙에 의해서도 나타납니다. 신앙이 그사람을 병들게 하지않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사람이 신앙을 접하면 왜곡되게 받아들입니다. 성인아이가 신앙을 가질 때 자꾸 왜곡된 신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신에게 엄격한 제한을 가하게 됩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셋째로, 역기능가정은 어떠한 분명한 문제에 대해서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을 막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지만, 개선하려고 하지않고, 억압, 무관심, 덮어두려고 합니다. 절대 말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음 개선의 의지도 없습니다. 넷째로, 역기능가정은 가족내의 자녀들에게 생존역할을 강요합니다. 가족개개인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 북돋아 주는 것이 아니라, 생존역할이 강조됩니다. 부모가 콤플렉스가 많아서, 자녀를 대리인으로 자꾸 세우려 합니다. 부모의 욕구불만 에 의해서 억압됩니다. 이러한 가정은 희생양을 강요합니다. 자녀들에게 책임을 떠 맡깁니다. 자녀들에게 부담감을 줍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역기능가정은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적절한 양육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공급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부모가 되야 합니까? 우리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야 합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부모는 누구입니까? 저는 오늘 본문 중심으로 ”지혜로운 부모”는 누구인지 한 두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부모입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6장 4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옆에 하지 말고”. 사도 바울은 우리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 자극하지 말라, 격분시키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부모들이 우리들의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습니까? 여러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1) 윽박지르므로, 화를 내므로, 자극적인 말을 하므로, (2) 잘못된 징계, (3) 부모가 인격적으로 형편없이 살면서 자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 (4) “부모라고 해서 자녀를 마치 자기의 소유물인 것처럼 생각하여 무조건적인 권위를 내세우며 강압적으로 다루거나 자녀를 학대하고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것(피종진). The Bible Exposition Commentary을 보면 아버지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언제 화나게 하며 낙심시키는지 한 여섯 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1) 말을 한 다음에 행동은 달리 하는 것, (2) 항상 자녀들을 원망하면서 절대로 칭찬을 안하는 것, (3) 일관성이 없고 징계에 있어서 불공평 하는 것, (4) 집 안에서 편애를 하는 것, (5) 약속을 한 후 지키지 않는 것, (6) 자녀들에게 있어선 아주 중요한 것을 가볍게 치급하는 것. 제 생각에는 이것들 외에도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바로 부모가 서로 사랑하지 않을 때라 생각합니다. 특히 아버지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을 자녀들이 볼 때에 그들은 노여워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에베소서 5장25-33절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자기 아내 사랑 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는 성령충만한 아버지를 가정의 삶 속에서 보지 못하므로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아버지가 집에 영적 지도자로서 본이 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자녀를 노엽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도 바울은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까? 바울 시대 때에는 아버지가 가정에서 최고 권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아버지 앞으로 그 아기를 데리고 간다고 합니다. 만일 아버지가 그 아기를 집어 올리면 그것은 그 아기를 자기 집에 받아 들인다는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만일 아버지가 그 아기를 집어 올리지 않으면 그것은 아기가 거절을 당한 것이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거절을 당한 아기는 팔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에게 주어질 수도 있고, 햇볕에 드러내 놓고 죽일 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부모들에게 “당신의 권위를 자녀들을 학대하는대 남용하지 말고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고 세우는데 사용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을 보십시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그러므로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에 반대 말은 자녀를 격려(위로)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제일 좋은 방법은 자녀들의 아빠, 엄마로서 부모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22-32절에서 아내 (엄마)는 남편(아빠)에게 복종하는 모습, 남편(아빠)은 아내(엄마)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최고의 위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둘째로는, 부모로서 거룩한 삶을 사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 자녀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26-27절을 보면 먼저 남편(아빠)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거룩함을 추구하는 가운데 아내(엄마)를 또한 그렇게 지도하므로 부부(부모)가 거룩한 삶을 살 때에 자녀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결코 말만 거룩한 척하면서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삶을 보여주면 안 될 것입니다. 셋째로, 자녀들에게 북돋아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즉, 자녀의 좋은 점을 칭찬하라는 말입니다. 북돋아주는 메시지는 자녀가 보기에 자녀 자신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자녀가 배우고, 성장하고, 성숙하고, 독립성을 얻을 수 있는 문을 열어줍니다. 제임스 L. 쉘러는 그의 책 “상처난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서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가치감과 자아 존중감”을 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말입니다. 또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동기에 아버지로부터 자기 정의를 지지받지 못한 사람들은 때때로 불안감을 느끼면 쉽게 흔들린다. 격려와 후원을 받은 사람들은 인생의 폭풍이 억세게 몰아쳐도 아주 견고하게 설 수 있다”.
둘째로, 지혜로운 부모는 자녀를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부모입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6장 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사도 바울은 우리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교육하고 강건하게 하며 그들이 성숙할 때까지 양육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양육하라”는 단어는 에베소서 5장29절에 나와있는 남편은 아내를 ‘양육하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즉, 아버지는 가정에 영적 지도자로서 아내를 양육 할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양육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을 “주의 교양”으로(in the training of the Lord) 양육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부모들이 먼저 주님께 징계를 받아 고치심을 받은 후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걷듯이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이렇게 양육해야 합니다. 잠언 22장 6절을 보십시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 지혜로운 길 또는 경건한 삶의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침에 있어서 저는 특히 제 자녀들과 교회 자녀들에게 세 가지를 가르치려고 부족하나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 바른 가치관(Right Value), (2) 뚜렷한 목적관(Clear Purpose) 그리고 (3) 영원한 인생관(Eternal View of Life)입니다. 둘째로, 우리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을 주님의 “훈계”로(in the instruction of the Lord) 양육해야 합니다. 즉, 우리들은 우리 자녀들를 사랑으로 충고하며 경고하며 또한 권고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요즘 우리 부모님들이 너무나 자녀들을 spoil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어떻게 “훈계”해야 합니까? Tedd Tripp은 그의 책 “Shepherding a Child’s Heart”에서 한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Rich, full communication(대화를 충분히 하는 것)과 The rod(회초리). 주님의 “훈계”로 자녀를 양육한다는 말은 회초리보다 대화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대화를 우리가 자녀들하고 할 것입니까? 한 세 가지 원리들이 있습니다: (1)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얘기하지 말고 자녀들과 얘기해야 합니다(Don’t talk to your children; rather, talk with them). (2)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각만을 표현하지 말고(잠18:13) 자녀로 하여금 그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허락해야 합니다(Don’t just express your thoughts only; rather, learn how to draw out their thoughts). (3)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Focus on understanding your children). 자녀들이 격고 있는 고민들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 그들이 그들의 감정들을 터뜨리는지 이해하는데 힘과 노력을 기울여야합니다. 그러면 이 훈계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1장 28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훈계의 목적은 바로 우리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서양 속담에 이러한 말이 있다고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 앞에서 배우지 않는다. 자녀들은 부모의 뒷모습에서 배운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좋은 말 점잖은 교훈 말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 양육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바로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화를 내기 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을 위로하며 격려할 것인지, 그리고 주님의 교양과 훈계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우리 지혜로운 부모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울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우리의 뒷모습을 보고 좇아 오도록 해야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들에게 지혜를 주시사 우리 자녀들을 노옆에 하지 않고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여 우리 자녀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자들로 세워지길 기원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