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제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에스라 9장 10절).

 

 

            가끔 하나님께 기도 드리려고 할 때 무엇을 어떻게 기도드려야 할지 할말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제 자신을 바라볼 때 너무나 한심하고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하고 답답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제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또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속히 망각하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지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무겁고 수치스럽고 죄책감 속에서 허덕이면서 습관적으로 제 자신의 죄를 자백해 보려고도 해보지만 이러한 제 모습 또한 스스로 한심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바라보시면서 얼마나 기가 막혀 하실까 생각해 봅니다.

 

            바로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면서 기가 막혀 하였습니다(스9:3, 4).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증한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1절).  그 가증한 일이란 이스라엘 박뱅들과 고관들이(2절)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지 않고[“have not separated themselves from the people of the lands”(NASB)] 오히려 그들을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한 것입니다(2절).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은즉(11절)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라(12절)고 명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증한 죄악된 일을 이스라엘 방백들과 고관들이 더욱 으뜸이 되었기에(2절) 에스라는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찟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았습니다(3절).  그랬더니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이 다 에스라에게로 모였고 에스라는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습니다(4절).  그리고는 에스라는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솟옷과 겉옷을 찢은 채 겸손히 무릎을 끓고(5절)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자복하였습니다(6절ff).  그는 심히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서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6절).  그는 수치심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의 심한 죄악들로 말미암아 그들이 받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기억하였습니다(7절).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과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게 하시사 부끄럽게 하심과 더불어(7절) 그 가운데서도 잠시 동안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a brief moment grace has been shown from the Lord our God)와 그들이 종노릇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신(a little reviving) 것을 기억하였습니다(8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노를 다 쏟으시지 않으시고 잠시 은혜를 베푸사 그들을 다 진멸하지 않으시고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셨습니다(8절).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큰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신 것입니다(13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인 왕들의 손에 사로잡혀 그들의 노예가 되게 하사 종살이 하는 중에서도 버려 두지 아니하셨습니다(9절).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바사 왕들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케 하시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고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에루살렘에서 그들에게 울타리(a wall)를 주셨습니다(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의 게명을 또 저버린 것입니다(10절).  즉, 그들은 다시 주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과 통혼한 것입니다(14절).  그러므로 에스라는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Now, our God, what shall we say after this?)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10절).

 

            우리도 에스라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겸손히 무릅을 끊고 우리의 주님의 계명을 또 다시 거역한 죄악들을 자백하면서 ‘하나님, 이제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라고 말씀 드릴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잠시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와 조금 소생하게 해주신 은총을 속히 망각하고 또 다시 거룩하신 하나님께 큰 죄를 범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악대로 형벌을 주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가볍게 하시사 “이만큼”(13절) 우리를 남겨 주셨는데 어떻게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망각하고 또 다신 세상과 짝지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사시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는데 어떻게 우리는 아직까지도 이 죄악된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자들과 함께 가증한 죄악들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까?(1절)  분명히 주님께서는 주님의 종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더러운 세상이요 세상 사람들을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다(11절)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왜 우리는 그 더러움을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 우리의 마음과 양심와 정신과 감정와 육체를 더럽히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잠시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와 조금 소생하게 해 주신 은총을 누리면서도 또 다시 주님의 계명을 저버리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러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전도서 5장 2절),

 

 

 

하나님의 은혜를 속히 망각하고 또 다시 주님의 계명을 거역하고 거역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