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The Carnal Christians)

 

 

[고린도전서 3장 1-4절]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십니까?  과연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는 신약 성경에 세 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행11:26, 26:28; 벧전4:16).  문자적 의미는 “그리스도 당에 속한 자들” 혹은 “그리스도 추종자, 신봉자”란 뜻입니다(인터넷).  우리가 잘 아는 안디옥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안디옥의 비신자들이 모욕하며 비하하는 말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불리워진 이유는 그들의 언행이나 활동 등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다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고 부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실로 거듭난 자들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기보다 그저 종교적이것나 높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 복음 전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차고에 들어가는 것이 자동차로 변해서 나오지 않듯이 교회에 참석한다고 크리스천이 되지 않는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것, 그리고 교회 일에 헌신하는 것 모두 저와 여러분을 크리스천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제 자신과 또한 여러분에게 우리는 과연 참된 그리스도인인지 하나님의 말씀에 비취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비춰보데 과연 저와 여러분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인지 혹은 영의 속한 성숙한 그리스도인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떠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야하는지 오늘 본문 말씀으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절과 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들을 가리켜 “육신에 속한 자”들이라고 두 번이나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란 제목 아래 과연 육신에 속한 자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인지 생각해 보면서 과연 우리가 육신에 속한 자들인지 아니면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인지 우리 각자 자신을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갖길 원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그들에게 말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육신에 속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육신에 속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원래 육신에 속한 자”란 말은 실상 불신자를 의미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너무 신앙이 유치하여 불신자의 정도에 가까운 자를 가리킵니다(박윤선).  그러면 이 불신자의 정도에 가까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아이들”(babes)과 같습니다.

 

여러분, 어린 애들의 특성 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잘 속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 4장 14절에서 영적으로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불신자의 정도에 가까운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린 아이처럼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잘못된 교훈(가르침)에 귀가 솔깃하여 마음의 믿음이 쉽게 흔들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영적으로 어린 아이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믿음은 연약하여 쉽게 유혹 당하고 믿음이 쉽게 흔들리는 것입니다.  결국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잘 속아 넘어가 세상의 간사한 유혹에 빠져 하나님께 범죄합니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죄를 하나님께 범합니까?  세상 불신자들처럼 세상 것들을 자기의 마음을 허망한 것으로 행합니다(엡4:17).  예를 들어 그들은 불신자들처럼 감각 없는 자들이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합니다(19절).

 

둘째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젓”을 먹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3장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여러분, 갓난 아기에게 밥이나 고기를 먹이는 것 보셨습니까?  갓난 아기는 모유나 우유를 먹여야지 밥이나 고기를 먹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갓난 아기는 밥이나 고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단단한 것을 잘 씹을 수 있는 이가 아직 없는데 어떻게 고기를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이와 깉이, 영적으로 갓난 아기인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젓을 먹어야지 밥(단단한 식물)을 먹을 수 없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젓”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기본 교리를 가리킵니다(박윤선).  이것을 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the elementary teachings about Christ)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히6:1).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쉽게 예를 들자면 초등학교 수준의 신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지 2-30년이 되었는데고 아직도 초등학교 수준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초등학교 6년을 마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남아야 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하면, 신앙 생활을 한 2-30년을 했다면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고 믿음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지금 쯤은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참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어른인데 영적으로는 갓난 아기 신앙 밖에 없으니 이 어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의 초보자들로서(히5:12) 기본 교리는 알고 있지만 더 깊은(더 차원 높은) 교리는 듣는 것이 둔하여(11절) 알아 듣지 못합니다.  그 결과 깊은 영적 분별력이 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단과 이 죄악된 세상이 유혹할 때 선과 악을 분명하게 분별하지 못하여 그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범죄하기가 쉽습니다.

 

셋째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시기와 분쟁으로 교회의 연합성(하나됨)을 깨는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3장 3-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나는 바울에게라”, “나는 아볼로에게라”고 자랑하면서 시기와 분쟁 가운데 당파를 지어서 교회의 하나됨(연합성)을 지켜 나아가지 않는 모습을 듣고 이것은 육신에 속한 자들의 행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들이 누구입니까?  불신자라는 뜻이 아니라 부패한 성질의 영향을 받고 있는 자란 뜻입니다(박윤선).  이것은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으로서(3절)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natural man)의 성품을 따라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박윤선).  한 마디로,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기보다 아직도 예수님을 믿기 전에 살던 옛 사람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육체의 일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불신자와 너무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음.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살기보다 옛 죄악된 습관대로 육체의 일을 추구하면서 세상과 짝지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밖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육체의 일을 생각하고 육체의 일을 좇으면서 교회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된 교회가 신령한 공동체가 되기보다 점점 더 세상과 별 다를바 없는 불신자들의 공동체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세상의 욕을 먹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야 합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3장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령한 자들”자들이 되야 합니다.  과연 신령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원래 “신령한 자들”이란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이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전서 2장 6-16절을 보면 한 네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 첫째로,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비밀 가운데 감취었던 하나님의 지혜,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못 박혀 죽으신 것을 알고 믿는 자들입니다(7-8절).  (2) 둘째로,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은혜 로 베풀어 주신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12절).  곧,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신 구원과 더불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들(9절)인 모든 영적 축복들(엡1:4ff.)을 아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3) 셋째로,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분별력이 있음.  그리고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분별력이 있기에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그들에게 가르치시는 신령한 가르침(고전2:13)을 깨달아 알 뿐만 아니라(15절)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습니다(14절).  (4) 마지막 넷째로, 성령을 받아서 거듭난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16절).  그러나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령한 자들”이란 고린도 전서 2장 6-1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신령한 자”들과 다른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신령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한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신령한 자들이란 불신자들이 아니라 영적으로 장성한 자(박윤선), 즉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누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엡4:13) 믿음에 견고히 서 있는자가 아닙니까?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견고히 서 있어 세상의 모든 잘못된 교훈과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반석 위에 견고히 서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로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삶을 살아가므로 세상과 분리된 삶을 삽니다.

 

둘째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밥”(단단한 식물)을 먹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2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여러분, 장성한 어른이 갓난아기처럼 모유나 우유만 먹으면서 사는 사람 보셨습니까?  장성한 어른이라면 밥도 먹고 고기도 먹고 그러지 않습니까?  지금 사도 바울은 신령한 그리스도인들, 즉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밥”을 먹을 수 있는 영적 수준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밥”이란 무엇입니까?  우리 한국 사람들이 이해하기 편하게 “밥”이라 번역을 했지만 그 원래 의미는 “단단한 식물”(solid food)입니다(히5:12, 14).  그러면 단단한 식물을 먹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자들입니까?  첫째로, “의의 말씀을 경험한 자들입니다(히5:13).  다시 말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들로서 마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신 것처럼(8-9절)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므로 순종함을 배워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온전한 자들입니다.  둘째로, 단단한 식물을 먹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지각을 지속적으로 사용하여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입니다(히5:14).  다시 말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선악을 분별하여 선은 택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고 버리는 자들입니다(살전5:21-22).

 

셋째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므로 하나됨을 지켜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고린도전서 1장 10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주님 안에서 같은 말을하고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시기와 분쟁 속에서 다른 말을 하고 다른 마음과 다른 뜻으로 교회의 질서와 평화를 깨는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고자 성령님의 지배를 받고 이끌림을 받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님을 좇아 행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보다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불신자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육체의 일을 추구하면서 시기와 분쟁의 죄악된 열매를 맺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말씀을 초보자인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단한 식물을 먹어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선과 악을 분별하여 선을 택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특히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신령한 그리스도인이 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