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가일의 지혜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   (사무엘상 25장 33절)

 

 

            ‘미련하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남편 나발, 그는 불량한 자였고(삼상25:17, 25) 완고하고 행사가 악하여(3절) 악으로 선을 갚는 자였지만(21절)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여인이였습니다.  다윗이 그녀의 지혜를 칭찬하면서 축복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그녀의 지혜를 한 네 가지로 묵상하면서 그녀의 지혜를 본받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아비가일의 지혜는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엘상 25장19절과 36절을 보면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 나발에게 침묵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녀는 남편에게 침묵했습니까?  첫 번째 침묵이 나오는 19절 말씀은 그녀가 음식물을 가지고 광야에 있는 다윗에게 가면서 자기 남편 나발에게 고하지 않고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녀가 자기 남편에게 고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였겠습니까?  그 이유는 이미 다윗의 열 소년들이 와서 나발하고 대화했을 때 나발은 다윗의 소년들에게 선을 베풀기보다 그들을 수욕한 것을 안 아비가일은 자기 남편에게 고했보았자 오히려 그녀의 행동을 저지했을 것이기에 그녀는 나발에게 고하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일 아비가일이 나발에게 고하였더라면 결국 그녀는 다윗에게 가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되었더라면 나발과 그 가정의 남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두 번째 침묵이 나오는 36절 말씀은 나발이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자기 집에서 배설하여 대취하여 마음에 기뻐하고 있었기에 아비가일은 그에게 침묵하고 있는 장면을 우리는 봅니다.  술취한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녀는 그 다음 날 아침 술에서 깬 자기 남편에게 “이 일을 고하”였던 것입니다(37절).  여기서 “이 일”이란 아마도 아비가일이 다윗과의 만남 속에서 다윗이 그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두지 아니하였으리라”(34절)는 말이 아니였겠는가 생각됩니다.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그녀의 미련한 남편에게 침묵한 이유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나발이 미련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미련한 자에게 아무리 말을 해도 들리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잠언 12장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  미련한 자 나발은 자기 행위가 바른 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지혜로운 아비가일이 할 수 있는게 무었이였겠습니까?  침묵입니다.  그녀는 잠잠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잠언 11장12절 하반절 말씀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명철한 자는 잠잠하느니라”. 

 

            우리는 침묵할 때 침묵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침묵할 때 말하고 말할 때 침묵하는 어리석음을 들어낼 때가 없지 않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자는 명령을 받”는다는 잠언 10장8절 말씀을 적용하여 우리는 지혜로운 자에게는 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말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책망할 일이 있을 때 지혜로운 자는 책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나발같은 자에게는 책망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미련한 자는 책망하는 우리를 미워할 것이기에 우리는 잠잠히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잠언 9장8절).

 

둘째로, 아비가일의 지혜는 신속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소년 중 하나”에게서 나발이 다윗의 열 소년들에게 어떻게 행하였는지 말을 들은 후(14-17절) “급히”(18절) “예물”(27절)을 가지고 광야에 있는 다윗에게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이렇게 신속히 행하지 않았더라면 나발의 집에 속한 모든 남자는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말을 들어 보시길 바랍니다: “… 네(아비가일)가 급히 와서 나(다윗)를 영접지 아니하였더면 밝는 아침에는 과연 나발에게 한 남자도 남겨두지 아니하였으리라” (34절).  그녀의 신속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나발 외에는 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좀 스피드(speed) 조절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속히 행동해야 할 때는 신속히 행동하고 좀 스피드를 늦춰야 할 때는 천천히 행동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스피드 조절을 하지 못하여 신속히 행해야 할 때 느릿느릿 행동하던지 천천히 행동해야 할 때 너무나 빨리 행동하던지 하면 아니될 것입니다.  나발이 접한 상황에서 아비가일이 신속히 행하지 않고 여유를 부렸다면 어떻게 될뻔했겠습니까?  “밝는 아침”(34, 37절)에는 나발과 그의 가정 남자들은 다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야고보의 말씀을 적용해 볼 수가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약1:19).  속히 할 것은 속히하고 더뎌야 할 것은 더뎌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아비가일의 지혜는 겸손함이였습니다.

 

그녀가 다윗을 보았을 때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고(23절)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길 간청하였던 것입니다(24절).  28절에 가서는 아비가일은 다윗에게 “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도 우리는 보는 것입니다.  겸손히 다윗 앞에 엎드려 남편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고 인정하며 용서해 달라고 간청하는 아비가일의 모습 속에서 ‘지혜로운 자는 겸손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나발이 죽고나서 다윗이 아비가일을 아내로 삼고자 사환들을 보냈을 때 그녀는일어나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다윗의 사환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주의 여종은 내 주의 사환들의 발 씻길 종이니이다” (41절).  자기를 아내로 삼고자 보낸 사환들에게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대고 다윗의 종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발을 씻길 종입니다’라고 말하는 아비가일을 볼 때에 과연 그녀의 겸손함 속에서 그녀의 지혜를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결코 지혜로운 자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잠16:18).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약4:6).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아비가일의 지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녀의 신속한 행동과 겸손한 언행으로 말미암아 결국 그녀는 다윗으로 하여금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39절).  악한 일이란 곧 다윗이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나발에게 보수하는 것을 가리킵니다(33절).  그러므로 다윗은 아비가일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 (32-33절).  결국 나발이 죽었다 함을 들은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발에게 당한 나의 욕을 신설하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 머리에 돌리셨도다 …” (39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아비가일을 사용하시사 그의 마음에 합한 종 다윗으로 하여금 악한 일을 행하지 못하게 막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피차 권면하여 우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히3:13).  책임을 다 한 후에 결과는 하나님께 맞겨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의 유혹에 빠진 자를 사랑으로 책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마음을 강퍅하게 한다면 그 책임은 더 이상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로운 아비가일처럼 상대방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막아야 할 것입니다.

 

 

 

아비가일의 지혜를 본 받기를 원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