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4): 결혼할 때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룻기 1장 3-5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실용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비실용적인 선택이지만 믿음으로 성경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까? 

 

지난 번 룻기 1장 15-17절 중심으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을 때”라는 제목 아래 선택에 기로에 서 있었던 세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세 사람 중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던 두 번째 사람은 죽은 엘리멜렉의 두 아들인 먈론과 기룐입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족인 유대 여인과 결혼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모압 지방의 여인과 결혼해야 하는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이들만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그들의 어머니인 나오미도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론과 기룐의 결혼 문제는 아내를 맞아들이는 자기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며느리들을 맞이하는 그들의 어머니인 나오미의 문제이기도 하였습니다. 동족 유대인 며느리들을 맞아 들이느냐 아니면 이방인 모압 여인을 며느리들로 맞아 들으느냐 나오미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과연 나오미와 그녀의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은 무엇을 선택하였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인들인 모압 여인들을 아내로 삼기로 선택하였습니다(4절).  그들은 실용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곧 그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서 같은 동족인 유대 여인들을 아내로 삼았어야 했는데 그들은 모압 땅에 살면서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실용적인 선택의 결과는 자기들의 아버지처럼 말론과 기룐은 자신들의 생명을 잃었습니다(5절).  그들의 어머니인 나오미는 남편인 엘리멜렉의 생명만 잃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두 아들의 생명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만 과부가 된 것이 아니라 자기의 두 며느리인 오르바와 룻도 과부가 되었습니다.  과연 말론과 기룐, 그리고 나오미의 선택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말론과 기룐, 그리고 나오미의 선택을 생각할 때 기업 무를 자 보아스의 선택인 이방 여인 룻과 결혼한 것(4장)이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보아스 또한 말론과 기룐처럼 유대인 동족과 결혼하지 않고 이방인 모압 여인이요 과부인 룻과 결혼하였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왜 말론이 룻과 결혼한 것은 실용적이지만 비성경적인 선택이면서 보아스가 룻과 결혼한 것은 비실용적이지만 성경적인 선택이자 믿음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룻이 말론과 결혼했을 때에는 룻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는 여인이 아니였습니다.  그녀는 모압 신들을 섬기는 여인이었습니다(1:15).  그러나 룻이 보아스하고 결혼했을 때에는 그녀는 시어머니의 말대로 자기 백성과 자기 모압 신들을 선택하지 아니하고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백성과 나오미의 하나님을 이미 선택한 상태였습니다(16절).  곧, 룻은 보아스하고 결혼할 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방 여인인 룻하고 결혼한 말론의 선택은 실용적인 선택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비성경적인 선택이였습니다.  그와 반면에 신앙인인 이방 여인 룻과 결혼한 보아스의 선택은 성경적인 선택이요 믿음의 선택이였습니다.  히나님을 경외하는(잠31장) 현숙한 여인(룻3:11)인 룻과 결혼한 보아스의 선택은 성경적이요 믿음의 선택이였습니다. 

 

저는 여기서 우리 크리스천들의 결혼에 대하여 한 두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 첫째 질문은, 과연 우리 크리스천 싱글들이 동족이 아닌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많은 분들이 같은 한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외국인 사위 또는 며느리를 볼 수 없다하여 자신들의 아들이나 딸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확고하게 반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자신들의 자녀가 한국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자녀가 원하면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도 허락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약 시대 때 유대인들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동족인 유대인들하고만 결혼시켰던 것처럼 지금도 정통파 유대인들 부모들은 자기들의 자녀들을 동족인 유대인들하고만 결혼시키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유대인들은 같은 동족하고만 결혼하게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두 번째 질문과 연관이 있습니다.  그 두 번째 질문은, 우리 크리스천 싱글들이 크리스천이 아닌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괜찮은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유대인들에게 동족 유대인과 결혼케 하신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이방인 배우자에게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로 하여금 동족 결혼을 명하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이방 신들을 섬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므로 동족 결혼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기에 크리스천 싱글들이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불신자들과 결혼하는 것은 실용적인 선택일지는 모르겠지만 비성경적인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 싱글들은 같은 크리스천들과 결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만일 그 크리스천 결혼 대상이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지만 같은 동족이 아닐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이라면 그가 타민족 사람이라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부모님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의 자녀들이 같은 한국인과 결혼하면 좋겠다고 선호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 자녀들이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룻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현숙한 여자인지 아닌지를 우리는 부모님의 입장에서 중요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 싱글 자매라고 해서 그 자매가 현숙한 여자인지 아닌지는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들의 결혼에 대하여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적인 부와 성공을 원하는 자녀를 향한 우리 부모님들의 욕심의 눈으로 며느리나 사위를 바라보아서는 아니됩니다.  마치 나오미처럼 우리 부모님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비크리스천들과 우리 자녀들을 결혼시키는 것은 곧 우리 자녀들의 영혼을 죽이는 행위라 생각합니다.  우리 크리스천 부모님들은 믿음으로 성경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 싱글들은 믿음으로 성경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현숙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현숙한 우리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주신 사랑하는 아내 현영(Jane)이를 생각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