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나라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사사기 20장 12-13절).

 

 

            콩가루 집안인 에브라임 신자에 사는 미가의 집(삿 17장)과 콩가루 지파인 단 지파(삿18장)에 대해서 묵상을 했습니다.  이 두 콩가루 집안과 지파의 공통점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혼합주의와 또 다른 하나는 영적 지도자의 타락입니다.  이 두 가지 영적 문제가 결국에는 한 집안 뿐만 아니라 한 지파를 콩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19장부터 마지막 장인 21장까지를 보면 한 콩가루 집안과 한 콩가루 지파의 영적 문제가 결국에는 한 나라인 이스라엘을 콩가루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열한지파가 베냐민 한 지파와 전쟁을 하여 결국에는 베냐민 지파의 이즈러트리고(missing) (21:3) 끊쳐지게 하였습니다(cut off) (6절).  이게 콩가루 나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오늘 본문 사사기 20장 12-13절 말씀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왜 콩가루 나라가 되었는지 그 표면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그 원인 배경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묵상하면서 지금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중동의 나라들에게만 적용해 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미국이나 한국에 적용해 보고자 합니다.

 

            콩가루 나라인 이스라엘에 내전이 일어나게 된 표면적인 원인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때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의 첩(19:1)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14절)에서 그 성읍의 비류들(certain worthless fellows)(22절)에게 검탈을 당하고(25절) 결국에는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28절).  그래서 그 레위 사람은 죽은 첩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자기 집에 이르러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열 두덩이로 찍어 나누어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냈습니다(28-29절).  그 결과 미스바에 이스라엘의 열한지파의 어른들과 칼을 빼는 보병 사십만명이 모였습니다(20:1-2).  그리고 그들은 그 레위 사람으로 하여금 “이 악한 일의 정형”을 고하게 하였습니다(3절).  다 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합심하여 기브아 성읍을 치려고 하였습니다(11절).  그러나 치려고 하기 이전에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What about this awful crime that was committed among you?)라고 말했습니다(12절).  그리고 그들은 베냐민 자손에게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자기들에게 달라고 하였습니다(13절).  그렇게 한 이유는 이스라엘 열한지파 사람들이 그 비류를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려고 했기 때문입니다(13절).  그러나 이스라엘이 콩가루 나라가 된 이 표면적인 원인 뒤에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콩가루 집안과 콩가루 지파처럼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혼합주의와 영적 지도자의 타락이었습니다.  결국 육체적인 범죄인 검탈과 살인 뒤에는 영적인 범죄인 우상 숭배와 영적 지도자의 타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열한지파가 다 함께 합심하여 모여 자기들 가운데 악을 제하여 버리고자 한 것을 잘한 일이지만 그들이 잘못한 것은 베냐민 자손 가운데 그 비류들을 죽여 없애버리기 이 전에 콩가루 가정인 미가의 집과 더 나아가서 콩가루 지파인 단 지파의 우상숭배의 죄를 척결했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썩은 나무의 쓴 뿌리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썩은 나무 가지만 쳐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한지파의 사람들, 특히 어른들은(20:2)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그 레위 사람의 죄를 면책했어야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종인 그 레위 사람의 범죄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 첩을 데리고 살고 있습니까?(19:1)   그것도 행음하는 첩을요?(2절)  자기 가정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질서있게 하지 못하면서(not able set his own house in order)(참고: 사38:1) 어떻게 하나님의 가정을 제대로 질서있게 다스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 레위 사람은 행음한 첩이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에 있는 친정으로 가서 넉 달동안 있을 때에(삿19:2) 가서 다정한 말로(3절) 자기 첩을 집으로 데리고 오려고 했을 때 그의 장인이 여러번 간청하여 함께 거하며 먹고 마셨을 뿐만 아니라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하라”(6, 9절)고 하는 장인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해야 할 하나님의 종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때 어떻게 이러한 영적 지도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지도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기브아에 있는 한 노인의 집에 들어갔을 때(21절) 그 비류들이 와서 남색을 요구했을 때 거절한 것은 잘했지만 어떻게 그 레위 사람은 자기 첩을 그들에게 내어주어 욕보이게 하고 심지어 죽게 만들 수 있습니까?  아니 아무리 음행한 첩이라 할지라도 그 비류들에게 그렇게 함부러 내어 줍니까, 욕 보일 것을 뻔히 알면서요?  그러나 제일 이해가 안되는 점은 이 레위 사람이 죽은 첩의 시체를 토막을 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종이란 사람이 자신의 첩의 시신을 토막을 낼 수 있습니까?  저는 이스라엘이 왜 콩가루 나라가 되었는지 그 표면적인 원인과 내면적인 원인을 묵상하면서 이스라엘의 쓴 뿌리는 영적인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쓴 뿌리인 우상숭배와 영적 지도자의 타락의 이 근본적인 문제가 먼저 해결되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콩가루 나라 이스라엘에 대해서 오늘 본문 말씀 중심으로 묵상하면서 지금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중동 나라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중동 나라들을 보면서 이슬람교 안에서 시아파 수니파 하면서 한 나라 안에서 파들끼리 싸우고 전쟁하는 모습을 볼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눅11:17).  집 안에서 스스로 분쟁하면 그 콩가루 집안은 무너질 것이며, 교회 안에서 스스로 분쟁하면 그 콩가루 교회는 무너질 것이며 또한 나라 안에서 민족들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콩가루 나라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 가운데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제가 살고 있는 이 미국 뿐만 아니라 제가 태어난 한국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저는 미국이나 한국도 콩가루 나라가 아닌가 생각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나라 다 우상 숭배와 영적 지도자의 타락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나라 다 맘몬주의의 쓴 뿌리와 더불어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이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디모데후서 3장 2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말세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한다는 말씀이 ….  나라가 잘먹고 잘살게 되어 배가 부르고 살이 찌게 되면 더욱더 욕심을 내는 이기적이게 되고 더욱더 물질만능주의 사고 방식을 가지게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선진국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내면적으로 너무나 가난해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한국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50개 중 20여개 넘게 있다고 말하고 국민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할지라도 그 기독교인들의 집들이 미가의 집안처럼 혼합주의 신앙생활을 하고 그 수 많은 교회들도 단 지파처럼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고 있다면 그러한 콩가루 그리스도인 집안들과 그러한 콩가루 그리스도의 교회들이라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콩가루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을 우리의 삶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의 주님으로 모셔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우리 각자 소견대로 일삼는 언행을 삼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계명을 순종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 집안과 교회 안에서 스스로 분쟁하는 죄를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기고 있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엘리야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과 바알 중 선택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아니됩니다.  우리를 마음으로 작정하고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하고 모든 우상들을 십자가 앞에 버려야 합니다.  특히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목사님들과 장로님들 심지어 안수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이성관계가 물란하고 쾌락을 즐기며 가정과 교회 안에서 인간관계를 토막내듯이 분쟁을 일으키는 죄를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가정에서 본이 되야 합니다.  주님 중심된 가정을 세우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한 가정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세워져 갈 때 한 교회가 주님 안에서 바로 세워져 가고 한 교회가 주님 안에서 바로 세워져 갈 때에 한 나라가 바로 주님 안에서 세워져 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나라 한국과 미국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사랑하는 고국과 청교도의 신앙의 뿌리를 회복하는 미국이 되길 기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