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집안, 콩가루 교회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그 어미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일천 일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취하였나이다 어미가 가로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사사기 17장 1-2절, 18장 19절).

 

 

            어떤 물건이 산산조작으로 부서진 상태를 가리켜 “콩가루가 되다”라고 말합니다.  콩가루는 가벼운데다가 점성(서로 달라붙어 끈끈한 성질) 또한 없기 때문에 작은 바람에도 흩어져서 날아갑니다.  이것을 빗대어서 한 가족이 가족 간의 유대감이나 화합이 없고 특히 질서 등이 없고 서로 제각각 제멋대로들 살아가고 복잡한 집안을 가리며 “콩가루 집안”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콩가루 집안에는 분열과 분란이 일어나 가족들 모두 각기 제멋대로 행동하고, 질서나 예의 도덕이 없습니다(인터넷). 

 

            바로 사사 시대 때가 콩가루 시대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사 시대 때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삿17:6, 21:25).  이러한 콩가루 시대에 오늘 본문이 속해 있는 사사기 17장에는 콩가루 집안인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의 집안이 나오고 사사기 18장에는 콩가루 지파인 단 지파가 나옵니다 (19장부터는 콩가루 나라인 이스라엘이 나옴).  저는 이 두 콩가루 집안과 콩가루 지파를 생각할 때 오늘 날 우리 시대의 예수님을 믿는 콩가루 집안과 콩가루 교회가 생각났습니다.  한 몇가지로 유사한 점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과연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가정과 주님 중심된 교회는 어때야 하는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콩가루 집안인 미가의 집안과 오늘 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콩가루 집안의 유사점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한 마디로, 콩가루 집안은 어머니는 어머니의 소견대로 아들이 복받기를 원하고(17:2) 아들은 아들대로 하나님에게 복 받기를 원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13절).  어이가 없는 것은 콩가루 집안의 아들인 미가는 자기 어머니의 은 일천 일백을 도적질했다가 어머니에게 저주를 받을까봐 다시 어머니에게 돌려드렸는데 그 어머니는 도적질한 아들인 미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받기를 원하노라”(2절).  아니, 어떻게 도덕질한 아들을 면책하지 않고 하나님께 복받기를 원한다고 축복을 빌어줍니까.  이해가 안되는 어머니입니다.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은 미가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에게 돌려받은 은 일천 일백을 하나님께 거룩히 드린다고 하면서 아들을 위하여(3절) 은 이백을 은장색에게 주어서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만들게 하여(4절) 아들에게 줍니다(3-4절).  참 어이가 없는 어미의 행동입니다.  아들이 하나님께 복받기를 원한다고 축복해 놓고 아들을 위해 우상을 만들어 주는 이 미가의 어머니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미가의 어머니나 오늘 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어떠한 어머니들이나 별 다를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녀들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지만 행동으로는 자녀들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우상입니까?  입술로 사랑하는 하나님 말고 마음으로 사랑하로 행동으로 좇는 돈(물질)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믿는 집안의 자녀들은 혼동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히 자기들의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으시고 매 주일 교회를 열심히 나아가셔서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봉사도하셔서 직분자이시기도 하신데 주중의 집안에서의 삶을 보면 하나님보다 세상의 성공을 자기들에게 원하시고 요구하시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교를 가서 좋은 직장을 잡고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여자/남자를 만나서 안정적인 삶을 살라’고 하시는 부모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녀들은 분명히 우리 부모님은 교회 직분자이신데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여 희생하라고 가르치시기보다 세상의 물질의 복과 성공을 계속 집에서 강조하시니 자녀들은 혼동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는 자녀들은 어떻겠습니까?  미가와 같은 자녀가 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미가는 어머니로 부터 받은 그 신상을 자기의 집에 두었습니다(4절).  놀라운 것은 어머니로 부터 “내 아들아 여호와꼐 복받기를 원하노라”는 축복을 받은 미가에게는 신당(a shrine or house of gods)까지 있었습니다(5절).  그리고 그는 대제사장이 입는 에봇을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드라빔이라는 우상도 만들어 가지고 있었습니다(5절).  심지어 그는 자기 아들 중 한 아들을 세워 제사장으로 삼기까지 했습니다(5절).  다 자기 멋대로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레위 소년(7절)이 거할 곳을 찾고자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에 왔을 때(8절) 미가는 그에게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겠다고 약속하여 그 레위 소년을 자기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으로 삼습니다(10절).  그리고 나서 미가는 이제 레위인이 자기의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고 말합니다(13절).  자기 멋대로 다 해 놓고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할 뿐만 아나리 복 주실 줄 믿는다고 하는 이 미가를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가는 그 어머니와 별 다를 바가 없는 것을 봅니다.  마치 그 어미가 자기 아들이 하나님께 복 받기를 원하면서 우상을 선물해 준 것처럼 미가 또한 드라빔이란 우상 외에 신당까지 만들어 놓고 제사장도 이 사람 저 사람 함부러 세운후 하나님께 복받기를 원하고 있으니 이것이 콩가루 집안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 놀랍지만은 않은 것은 오늘 날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자라나는 우리 자녀들도 미가와 별 다를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믿는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자라난 우리 자녀들이 보고 배운게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는 것이였기에 우리 자녀들도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는데(마6:24) 그 말씀을 어기면서 두 주인을 섬기고 있는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자라났기에 우리 자녀들도 우리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복달라고 말하면서 신앙을 빙자하여 돈을 벌고자 눈이 먼 부모님을 바라 보면서 지금 자라나고 있는 우리 자녀들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부모님들이 기도하는 요셉과 모세와 사무엘과 다윗과 같은 자녀들이 될 것을 바라고 기대하십니까?  미가와 같은 자녀가 되지 않겠습니까?  콩가루 집안입니다. 

 

            이러한 콩가루 집안들이 모인 곳이 바로 오늘 날 교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교회도 콩가루 교회입니다.  입술로는 우리가 “주여 주여”하면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주님으로 모시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말하고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어떻게 성령 안에서 하나됨을 지켜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다툼과 싸움과 시기와 질투, 분쟁과 분열이 있는 교회, 그리고 미가처럼 교회의 헌금을 도덕질하는 목사나 장로나 안수집사 등등 도덕과 윤리가 없고 질서와 평화가 없는 교회, 콩가루 교회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왜 하나님의 교회가 이지경까지 된 것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제일 큰 문제는 바로 삯군 목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 떼들을 사랑하기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우리 목사들 때문에 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이끌림을 받아야 할 우리 목사들이 사례비를 더 많이 주는 더 큰 교회로 가는 것을 마음에 기뻐하기에 오늘 날 교회가 콩가루 교회가 된 것입니다.  미가가 세운 레위 소년 제사장을 보십시오.  그는 미가가 고용한 사람이였습니다(18:4 “고빙”).  미가가 그를 자기의 제사장을 삼고자 “해 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식물을 주”겠다고 하닌까(17:10) 그 레위인은 미가와 함께 거하기를 “만족히” 여겼습니다(11절).  그러다가 단 지파가 라이스란 땅(18:7)을 기업으로 삼고자 자기 온 가족 중 용맹있는 다섯 사람들을 보내어 그 땅을 살펴보고 돌아와 단 자손 육백 명을 데리고 다시 미가의 집에 이르러(13, 15절) 들어가(17절) 미가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한 후(17절) 레위 소년에게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19절)고 말했을 때 그 레위 제사장은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단지파) 중으로 들어”갔습니다(20절).  삯군 제사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가에게 고용되었다가 단 지파에 고용된 이 레위 제사장을 생각할 때 오늘 날 우리 목사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셨을 때 그 은혜와 사랑게 감사와 감격의 눈물이 어디로 간 것입니까?  하나님의 첫 사랑을 체험했을 때 흘렸던 그 뜨거운 헌신의 눈물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불타오르는 그 심장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목사로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단지파가 기업으로 삼고자 한 라이스란 땅처럼 “한가하고 평안”하고(7절)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는(10절) 매우 좋아보이는(9절) 목회지 찾기게 눈을 부릅뜨고 지금 기도하고 있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서 왜 자꾸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도님들에게 함부러 말하는 것입니까?  솔직하게 욕심이 나서 큰 교회에 가서 큰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하시지….  ‘내가 그렇게 큰 교회 목회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닌까 큰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는 것이다’라고 솔직하게 자신의 교만함도 들어내시지 왜 이런 저런 핑계아닌 핑계로 더 크고 더 사례를 많이 주는데로 사역지를 옮긴다고 우리는 고백하고 있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이끌림을 받지 않는 우리 삯군 목사들 때문에 교회는 콩가루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러한 목회자에게 무슨 진리의 말씀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진실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주일 강단에서 선포되는 설교가 성도님들에게 어떻게 은혜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단 지파의 다섯 정탐군들이 미가의 집에 이르러 미가의 제사장 레위 소년에게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하라”(5절)고 말했을 때 그 레위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Go in peace; your way in which you are going has the LORD'S approval)(6절).  어떻게 삯군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기대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참 두렵고 무서운 것은 미가의 제사장 레위인이 단 지파 그 다섯 정탐군에게 한 말(6절)되로 주님께서 우상을 섬기는 단 지파를 인정(approval)하신 것처럼 단 지파는 라이스란 땅을 차지하여 자기들의 기업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27-29절).  참으로 놀랍고 두려운 것은 주일 강단에서 삯군 목사가 축복의 메시지를 전할 때 성도님들이 은혜(?)를 받고 그 축복이 자신들의 삶 속에 이뤄지는 것을 보고 “할렐루야!” 외치면서 감사 찬양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절대 축복이 아딘데 말입니다.  더 두렵고 떨리는 것은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던 것(31절)처럼 지금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는 하나님과 우상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예(숭)배하며 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게 콩가루 교회가 아니고 뭐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 예수님을 믿는 가정과 주님의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가정의 부모님이 회개해야 하며 우리 자녀들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온 가족 식구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수 십자가의 공로와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여 회개하여 우리 죄악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가정의 주인이되시는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영적인 축복들을 기억하여 만족과 감사의 삶을 살아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 중심된 가정을 세우는 주님의 사역에 겸손히 그리고 신실하게 동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양 떼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희생하신 목자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먼저 우리 목회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삯군 기질을 철저하게 깨부시고 변화를 받아 목자되신 예수님의 심장으로 목회를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과 사명에 다시금 불타오르지 않으면 교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이 신실하시니 우리가 불성실할지라도 주님께서 값주고 피로 사신 영혼들을 제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킬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긍휼이 여겨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삯군 목사가 되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보다 돈이라 다른 것들 더 사랑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욕심과 야망과 교만함 등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실 때 우리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메시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의 하난미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더 이상 콩가루 가정과 콩가루 교회가 아니라 주님 중심된 가정과 교회가 되어 이 어두운 세상의 주님의 빛이 될 것입니다.  승리!

 

 

콩가루가 아닌 복음의 메시지가 전파되는 주님 중심된 가정과 주님 중심된 승리장로교회로 더욱더 바르게 세움 받기를 기도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