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복 받기를 두려워 하십시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신명기 8장 17절).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물질의 복 받기를 너무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복, 복 ,복 하는 것을 보면 왠지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마6:24).  혼합주의입니다.  하나님이면 하나님, 재물이면 재물을 섬겨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재물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물질의 우상화는 결국 우리로 하여금 물질의 노예로 만들어서 모든 것을 물질을 위해서 살아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공부를 해도 물질을 위해서하고, 일을 해도 물질을 위해서 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물질을 위해서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물질을 축복을 구하고, 목사님들에게 축복기도를 받아도 물질의 축복 기도 받는 것을 우리는 매우 좋아합니다.  우리의 입술과 귀 모두 다 물질의 축복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과 발도 물질의 축복을 추구하는데 분주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물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우리의 마음은 세상의 보물에 빼아겼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 세상의 보화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딤전6:10)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물질의 복 받기를 두려워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함부러 물질의 복 받기를 하나님께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8장 17절을 보면 모세에게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할까 함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것임에도 불구하고(18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능력과 힘으로 재물을 얻었다 할까봐 모세는 두려워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만해 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 봐 두려워 했습니다(14절).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해 질 위험이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들의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입니다(13절).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름다운 땅”(7절), 그들에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9절)인 가나안에 들어가 먹어서 베불리고(10, 12절)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면서(12절) 그들의 우양이 번성하며 그들의 은금이 증식(multiply)되어 그들의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해 질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두려워 했습니다.  우리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가 교만해 질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배가 불러 교만해 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릴까봐 우리는 두려워해야 합니다.  특히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이 풍족한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배가 불러 교만해 질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비만(fat of heart)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비만이 생겨 욕심과 탐심의 노예가 될까바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이 교만해질까봐 두려워해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광야에서 낮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풍부한 도시 한 복판에서 살아가면서 물질의 축복을 추구하기 보다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궁핍하고 주리는 가운데서라도 광야의 축복을 더욱더 사모해야 합니다.  그 광야의 축복이란 무엇입니까?  한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광야의 축복은 바로 성품의 축복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광야의 축복은 바로 겸손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광야로 인도해 주시사 우리를 낮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2, 3, 16절; 참고: 호 2:14).  우리는 이 낮아지는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는 것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높은 것보다 훨씬 귀하고 큰 축복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겸손히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제일 높은 자리임을 믿고 겸손히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겸손한 기도자를 하나님께서는 들어 일으켜 사용하시사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나타내십니다.  둘째로, 광야의 축복은 말씀의 축복입니다.  신명기 8장 3절을 보십시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사십 년 동안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목적은 그들을 낮추시고자 하심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우리가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여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6절).  

 

우리는 물질의 복 받기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물질의 복이란 우리로 하여금 교만하게 만들어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이 증가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업이 번창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인 수가 늘어날 때 깨어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배가 부르고 풍부해 질 때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비만이 끼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탐심과 욕심의 노예가 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 버릴까봐 경계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도시 한 복판에서 세상의 풍부함을 누리길 원하기보다 광야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성품과 말씀의 축복을 누리기를 더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는 외로운 광야를 고독한 동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나우웬).  광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 말미암아 낮아지고 또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의 성품은 광야에서 빚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광야에서 우리 마음에 말씀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기뻐해야 합니다(찬송가 500장 1절).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성품의 축복와 말씀의 축복 후에 물질의 축복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성품과 말씀의 축복을 받기를 거부하면서 세상에서 물질의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을 심히 두려워해야 합니다. 

 

 

영적 축복과 인복과 더불어 물질의 축복을 하나님께서 우리 승리장로교회 식구들에게 내려 주시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