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

 

 

[고린도전서 1장 18-24절]

 

 

과연 지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교회가 힘써 전도하며 선교는 하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최고의 소식인 십자가의 도를 전파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 교회가 입술로는 그리 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교회라는 공동체로서는 지금 좋은 소식을 이 세상에 전파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교회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좀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지금 교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습니까?  바로 교회가 분쟁하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의 하나됨(통일성)(Unity)을 힘써 지켜 나아가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통일성(하나됨)(Unity)을 힘써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리는 지난 주일 고린도전서 1장 10-17절 말씀 중심으로 “그리스도께 어찌 나뉘었느뇨”란(13절) 제목아래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의 통일성(하나됨)(Unity)을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 가지 원리들을 실천해야 할 것을 배웠습니다.  그 세 가지 원리들이란 우리 모두 다 같은 말을 해야하며,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하며 그리고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는 이 세상의 복음 전파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17절).  오늘은 고린도전서 1장 18-24절 중심으로 우리가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The Word of the Cross)에 대해서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을 신실하게 지켜 나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담대히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십자가의 도는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23절)에 관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몸을 입고 오시사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선택하신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죽음에서 삼일만에 부활하사 승천하신 이 하나님의 계시(God’s revelation)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십자가의 도입니다.  이 십자가의 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원(save)을 얻습니다(21절).  그러나 십지가의 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명망(perish)을 받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18절).  여러분은 이 십자가의 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세주로 영접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보면 이 십자가의 도에 대한 두 부류의 사람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1) 첫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멸망하는 자들”(those who are perishing)입니다.  누가 멸망하는 자들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지 않은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foolishness)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9-20절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폐하시고 미련하게 하신 이 세상의 지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미련한 것으로 밖에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21절).  어떻게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간을 전혀 구원할 수도 없는 이 세상의 지혜로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최고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멸망하는 자들의 관점에서는 저와 여러분이 전파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미련하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18, 21절).  이렇게 십자가의 도를 미련하게 여긴 멸망하는 자들은 바로 헬라인들이였습니다(22-23절).  왜 헬라인들은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여겼습니까?  그 이유는 헬라인들은 세상적인 지혜인 철학을 추구했기 때문임[(22절하) “…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언어상으로는 ‘지혜의 사랑’(love of wisdom)라는 뜻으로 철학이란 세상적인 지혜를 사랑하는 학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은 ‘과연 이 세상적인 지혜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는가?’ 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폐하신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가 있습니까?  세상 철학을 추구하는 불신자들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 그가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하신 역사적인 사건이 미련하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이성적인 철학적 논리로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탄생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죽음에서 부활하셨다는 복음의 소식이 미련하게 들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골로새서 2장 8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음: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그러면 유대인들은 십자가의 도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가 거리끼는 것이였습니까?  그 이유는 표적(miraculous signs)을 구했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시는 인정했지만 그 계시가 자기들의 욕구대로 나타나기를 구했기 때문입니다(박윤선).  그 말은 유대인들이 기다리고 기대했던 하나님의 계시인 메시야 즉 그리스도는 자기들을 로마로부터 해방(political freedom)하고 사화적 정의(social justice)를 가지고 오며 또한 경제적 풍성(economic prosperity)을 갖다 주는 메시야를 기대했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는 나사렛 예수란 사람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인 표적을 목격하고는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야라는 생각 속에서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6). 생각해 보십시오.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그렇게 많이 표적을 행하신 예수가 자기들이 기대하고 기다리전 메시야로 보이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예수가 나무인 십자가에 죽은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나무에 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 그렇게 처형을 당했는데 자기들이 기대하고 믿었던 메시야 예수가 십자가에 죽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표적을 구하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거리끼는 것”(a stumbling block), 즉 걸쳐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 그러면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나오는 이 십자가의 도에 대한 두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 우리”들(us who are being saved)임.  또는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those whom God has called)(24절)입니다.  과연 우리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the power of God)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 하반절과 24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과연 십자가의 도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는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다시 말하면, 십자가의 도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능력이란 무엇입니까?  로마서 1장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무슨 말씀입니까?  십자가의 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임.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나 헬라인들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표적을 구했던 불신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인 십자가의 도를 듣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므로 구원을 받았을 때 이것은 복음을 통하여 나타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서는 표적을 구하던 불신자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구세주로 영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진정한 표적 중에 표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신자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저주의 나무였던 십자가에 저와 여러분들의 죄 사함과 구속을 위하여 못 박혀 죽으시고 우리들을 의롭다하시고자 부활하신 사건입니다(롬4:25).  그리고 이 표적 중 표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the wisdom of God)을 볼 수가 있습니다(고전1:24).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지혜의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오히려 미련하게 보이는 방법으로 그가 사랑하사 선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여기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바로 십자가의 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해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구속 사업을 하시되 이 세상 사람들이 기대할 것과 아주 딴 방식으로 하신다는 말입니다(박윤선).  표적을 구하고 기대하였던 유대인들의 관점에서는 십자가의 죽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자칭하여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였고 지혜를 구하였던 헬라인들의 관점에서는 십자가의 죽으신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을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말도 안되는 헛튼 소리(non-sense)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해 보이는 전도의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21절).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미련한 보이는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을까요?  이 하나님의 지혜를 저와 여러분들이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가 있을까요?  저는 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묵상할 때 구약성경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장대 위에 매달린 불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이 이야기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여(민21:4)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므로(5절)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그들 중에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게 하신 것임(6절).  그 결과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려 죽었습니다(6절).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뱀들을 자기들에게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함(7절).  그리고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8절).  상상이 되십니까?  지금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원망하는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로 뱀에게 물려 죽고 있는데 사는 방법이 장대 위에 매달린 뱀을 보면 살 수 있다는 말, 여러분에게 어떻게 들리시겠습니까?  아니 어떻게 불뱀에 물려 주위 사람들이 죽고 있는데 장대에 매단 불뱀을 보면 산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러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시려고 한 것입니까?  결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가 없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 민수기 21장 이야기를 생각하고 요한복음 3장 14-15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입니다.  모세과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들리시므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저와 여러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인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의 도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롬1:16, 고전1:24).  여러분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전파하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