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고린도전서 1장 10-17절]

 

 

우리는 교회를 생각할 때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교회 가운데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하나님이 주신 소망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고전1:3-9).  그 이유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음이 풍족하여 그리스도의 증거에 견고히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주님께서 주신 부족함이 없는 모든 은사들을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하고 있었기에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이 감사하였던 또 다른 이유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말씀에 견고히 서서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고린도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바울은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0-17절에 와서는 고린도 교회 안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11절)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권면하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1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 얼마나 안타까운 소식입니까?  사랑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 공동체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는 바울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물론 아직 분열까지는 아니지만 고린도 교회 안에는 다툼이 있었습니다(박윤선).  무엇인 문제입니까?  왜 고린도 교회에는 다툼이 있었습니까?  저는 이 질문을 던지면서 왜 요즘 교회에는 다툼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생각난 말씀은 바로 야고보서 4장 1절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교회 안에 일어나는 분쟁의 원인은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싸우는 정욕”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욕심과 시기와 마음으로 형제를 미워하는 살인하는 죄악된 욕구로 인하여 교회 안에는 분쟁이 끊임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 안에 나타난 분쟁의 현상은 당파를 짖는 것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2절을 보십시오: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아니 어떻게 교회 안에 이렇게 여러 당파가 있을 수 있습니까?  누구는 바울 파라고 하고 누구는 아볼로파, 또 누구는 베드로(게바)파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파라고 하니 …  어떻게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교회의 특징은 하나됨(unity)이라고 우리는 배웠는데 어떻게 고린도 교회는 이렇게 여러파로 나뉘어져 있었습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 당파를 이루었던 교인들은 각자 지도자들인 바울이나 아볼로나 베드로나 그리스도를 과히 따르는 가운데 다른 신자들을 전연 무시하면서 각자 자기들이 속한 당파를 지지하는 어리석은 잘못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12절)이라고 외쳤던 사람들도 우리가 보기엔 그리스도를 좇으므로 옳게 보이지만 이들은 자기들 만의 그리스도 당파를 이루고 자기들만 그리스도에게 속한다고 하면서 다른 신자들을 무시하였기에 결코 옳은 행동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박윤선).  이러한 잘못된 행동은 우리 안에 사람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바울을 자랑하고 싶고, 누구는 베드로를, 누구는 아볼로를 자랑하듯이 교회 안에는 어느 교인은 담임 목사님을, 어느 교인은 부목사님을, 어느 교인은 장로님들을 등등 각자 자기들이 좋아하고 따르므로 자랑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욕구로 인하여 교회 안에 분쟁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3장 21절에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  그러나 이것은 교인들만의 문제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교인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우리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지도자들의 마음에 교인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으면서 높임을 받기를 원하는 욕망이 있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기보다 아무개 목사, 아무개 지도자의 제자를 생산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우리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때 더욱더 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고린도 교회 교인들도 사람을 자랑하고 싶은 교인들의 욕구로 인하여 누구는 바울을 자랑하였고 누구는 아볼로를, 누구는 게바인 베드로를 또는 누구는 그리스도를 자랑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자랑한 교인들도 진정으로 주님을 자랑하였다고 볼수가 없는게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자랑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하나됨(통일성)을 겸손히 지켜 나아가지 않았기에 이들 또한 바울이나 아볼로나 베드로를 자랑하였던 무리들과 별 다를바 없이 자기 안에 있는 사람을 자랑하고 싶은 욕구에 이끌림을 받았다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특히 교회의 분쟁을 가지고 온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나는 아무개 지도자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도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나는 아볼로에게 …’, ‘나는 사도 바울에게 …’ 등등 하면서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지고 그 지도자를 좇는 무리들이 생겨나므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게 된 것입니다.  상상히 좀 되십니까?  예를 들어 교회 안에 어느 교인은 ‘나는 옛날에 한국 어느 큰 교회 어느 유명한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어’라고 자랑하고 또 다른 교인은 ‘나도 오래 전에 어느 유명한 아무개 목사님에게 세례를 받았어’라고 자랑하면서 각자의 자부심 속에서 예수님보다 사람 목사님들을 자랑하면서 교회 안에서 공감하는 무리들끼지 친해져서 그룹을 형성하고 다른 교인들을 무시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3절부터 16절까지 세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요점은 바울은 “그리스보와 가이온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14절).  그의 기억에는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는 세례를 주었지만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었는지 기억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6절).  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자기는 세례를 베푼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15절).  바울은 자기의 전도에 의하여 기독 신앙에 돌아온 그리스보와 가이온(행18:8; 롬16:23)과 스데바나 집 사람 외에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는 그의 목적은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였기 때문입니다(17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11절)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였기에(the cross of Christ be emptied of its power)(17절) 그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오늘 본문 10절에서 이렇게 권면을 하였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여러분, 이 바울의 심정을 좀 이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복음의 빛을 이 어두운 세상에 환하게 비춰야 하는데 교회 안에 분쟁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있는 것이 볼 때에 저와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합니까?  여러분, 교회가 분쟁하는 것은 복음의 빛을 어둡게 하는 것임.  교회의 분쟁은 전도함에 있어서 오히려 걸림돌(방해)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가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교회의 하나됨(통일성)을 잘 지켜 나아갈 때 교회의 하나됨은 복음 전파에 징검다리가 됩니다.  달리 말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성령님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킬 때(엡4:3) 복음의 빛을 이 어두운 세상에 환하게 비췰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하여 세 가지를 오늘 본문 10절에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다 같은 말을 하라(Speak the same thing)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같은 말”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지금 저와 여러분이 입을 열어 하는 말이 다 같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떻게 저와 여러분이 똑같은 말을 하면서 교회 생활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말은 박윤선 박사님에 의하면 “그 발언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편당의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화성있게 말함”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이해가 되십니까?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서로에게 말을 할 때 편가르는 인상을 주는 말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함.  특히 우리가 교회 지도자들 중 누구 한 사람을 특히 더 좋아할 때 그 좋아하는 지도자를 다른 교인들 앞에서 자랑하다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상대방에게 ‘나는 그 지도자 편이다’라는 인상을 줄 수가 있습니다.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얘기할 때 그 상대방이 교회 안에 다른 지도자를 더 좋아하고 있다면 우리 말을 듣는 그 상대방의 입장에서 우리의 말이 어떻게 들리겠습니까?  결국은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말로 인하여 우리는 교회 안에서 편 가르기 운동을 펼치는 것 밖에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박윤선 박사님의 해석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John MacArthur 목사님의 해석은 여기서 바울이 “같은 말”을 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교리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이다’(Paul is emphasizing the unity of doctrine)라는 것입니다(MacArthur).  제가 MacArthur 목사님의 해석에 동의하는 이유는 비록 표면적으로 고린도 교회를 볼 때 다 같은 말을 하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편당의 인상을 주지 않도록 조화성있게 말하는 것이겠지만 내면적으로 볼 때 모두 다 같은 말을 하라는 것은 같은 교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you all agree”, 즉 ‘당신들 모두다 동의 하십시오/합의하십시오/의견을 일치하십시오’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볼 때 어떻게 우리가 의견을 일치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기독론 교리)이 다르면 어떯게 동의하고 어떻게 의견을 일치할 수가 있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당파로 나눠진 것은 바른 기독론,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일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일치된 교회론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다 같은 말을 하라’는 권면을 생각할 때 마가복음 3장 11절 말씀이 생각났음: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그 시”에 우리에게 주시는 “그 말”을 우리 모두가 한다면 우리는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 말”이 뭘까 생각해 볼 때 저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라 생각함.  성경의 저자인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그 때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생각나게 하셔서) 그 진리의 말씀대로 진실되게 우리가 서로에게 말할 때 우리 교회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하여 같은 마음을 품으라(Have the same mind)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분쟁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모두가 같은 마음을 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은 무슨 마음입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아무리 같은 말을 하면 뭐합니까?  아무리 같은 교리를 가지고 진리를 말하면 뭐합니까?  고리도전서 13장 말씀처럼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밖에 안되는 것입니다(1절).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말하는 진리는 무능력(powerless)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 것을 생각할 때 그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빌립보서 2장 2절을 보십시오: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같은 사랑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또한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여기서 예수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2장 3절을 보십시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예수님의 마음은 겸손한 마음임.  우리가 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마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우리가 본 받을 때 우리는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바울은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하여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Be united in same judgment/thought)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방법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고전1:1)을 추구하면 가능합니다.  즉,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하면서 우리 각자의 뜻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때 우리는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해 2011년 우리 교회의 표어는 “범사에 감사하라”임.  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살전 5:18).  그러면 우리가 승리공동체의 하나됨을 힘써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는 불평하며 원망하고 싶은 우리의 생각(뜻)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인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승리공동체는 범사에 감사하는 하나된 공동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이 불만과 불평이 가득한 세상에서 복음의 빛을 환하게 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만큰 분쟁이 많았던 교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듬.  두 갈래로 보통 갈라지는게 분쟁 속에 있는 교회인데 고린도 교회는 두 갈래도 아니고 한 네 갈래로 갈라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고전1:12).  이렇게 갈기 갈기 찢어진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사도 바울은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고전1:10).  만일 우리 모두가 다 자기 뜻을 주장하고 자기 뜻대로 교회를 섬기려고 한다면 어떻게 교회가 하나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항상 교회 안에는 "자기의 배만 섬기"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자기 뜻을 관철하려는 사람들, 특히 지도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어지러운 것입니다.  교회가 평화스럽기 위해서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부터해서 당회원들, 그리고 모든 지도부 사람들이 주님의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모르면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주님의 뜻을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도 모르면서 너무나 성급하게 교회 일을 추진하다보면 항상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을 깨달아 그 뜻을 이루어 드리고자 온 교회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같은 말"을 할 때에 교회는 화목하며 주님 안에서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승리장로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주님이 세우시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세우시는 주님의 교회는 하나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 모두 다 같은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말해야 합니다.  같은 바른 교리 가운데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의 하나됨을 지켜 나아가기 위해선 우리는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마음과 겸손한 마음을 다 함께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승리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기 위하여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다 우리 자신의 뜻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승리공동체의 하나됨을 힘써 지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교회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는데 헌신하는,

 

제임스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