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생각할 때 감사하는 이유

 

 

[고린도전서 1장 4-9절]

 

 

우리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문안 인사인 고린도전서 1장 1-3절 말씀을 이미 묵상 하였습니다.  1절에는 고린도서라는 편지를 쓴 발신인(Writer)인 바울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2절은 그 편지를 받는 수신자(Receipient)인 고린도 교회와 각처에 퍼져 있는 기독 신자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으며 그리고 3절은 바울의 인사(Greetings)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특히 우리는 2절 말씀 중심으로 과연 교회란 무엇인지 한 3가지로 교훈을 이미 받았습니다: (1) 첫째로, 교회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2) 둘째로, 교회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성도들)입니다, (3) 셋째로,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입니다(예수님을 믿는 자들).  이 교훈을 받은 후 저는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4-9절을 묵상하면서 다시금 바울의 문안 인사인 1장1-3절을 뒤돌아 보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특히 저는 2절 말씀에서 배운 교회란 무엇인가 중심으로 1절과 3절을 연관해서 묵상해 보았을 때 이러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은혜(Grace)와 평강(Peace)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인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을 향하신 뜻은 바로 은혜와 평강이다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교회인 저와 여러분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길 원하시며 또한 그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영혼의 평안을 누리길 원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하나님의 교회는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감사의 예배가 있고 또한 그러한 감사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은 참된 영혼을 평안을 누립니다.  어떻습니까?  과연 이러한 모습을 우리 승리공동체 안에서 보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 고린도전서 1장 4-9절을 보면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과 각처에 있는 기독 신자들을 생각할 때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I always thank God for you because of his grace given you in Christ Jesus).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교회를 생각할 때 감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한 두 가지로 묵상하면서 우리도 우리 승리교회를  생각할 때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감사해야 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은혜(God’s grace)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던 이유는 바로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은 무엇입니까?  한 두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란 복음의 진리를 깨달음이 풍족한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이것이 바로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모든 구변(speaking)과 모든 지식(knowledge)이 풍성함입니다.  여기서 “구변”이란 헬라어 원어로 “로고스”(logos)로서 전파된 진리 (the truth preached) 곧 복음의 진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지식”이란 그 전파된 진리에 대한 깨달음입니다(the truth apprehended) (박윤선).  즉,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항상 감사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의 진리를 깨달음이 풍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깨달음이 풍족한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 대답은 오늘 본문 6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음이 풍족한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그들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증거에 견고히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아 그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 승리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아 그 말씀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뿌리를 박아 견고히 세움을 입어 믿음에 굳게 서 있는 모습을 볼 때 어떻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아 그 말씀에 견고히 서 있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우리 승리교회에 있길 기원합니다.  (2) 둘째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  사도 바울은 고린고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풍성한 은혜가 영혼들을 구원함에 있어서 복음의 진리의 말씀과 그 말씀을 깨달음이 풍족케 하셨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세우는데 필요한 모든 은사들(12-14장)( MacArthur) 주셨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모든 은사”들이란 영적 은사들로서 한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님의 일상적인 (평범한) 은사들(ordinary gifts)과 기이한 은사들(extraordinary gifts)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두 가지 은사들을 다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적 은사들인 회개와 믿음과 지식의 은사만 주신 것이 아니라 외적 은사들인 기적과 치유과 방언과 예언 등 풍성한 영적 은사들을 주셨습니다(Hodge).  하나님께서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깨달음을 풍성하게 하시사 복음 전파함(영혼 구원) (Evangelism)에 힘을 쓰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은사를 부족함이 없이 주신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Edifying His church)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을 알고 있었던 바울은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가 우리 승리교회에 있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복음의 진리 깨달음을 풍족하게 하시고 모든 은사들을 부족함이 없이 내려주시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사역과 또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사역에 힘을 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항상 감사할 수 있는 승리 공동체가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우리가 교회를 생각할 때 감사해야 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주신 소망(God’s given hope)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소망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던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고린도 교회의 재림 신앙 때문이었습니다(박윤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온다는 재림 신앙…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재림의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에 견고히 서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그들은 하나님께 은혜로 받은 풍족한 복음의 진리 깨달음과 모든 은사들을 사용하여 복음 전파 사역과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소망의 연관성을 볼 수가 있음.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음과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것은 연관되 있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믿지 않는다는게 말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기다리지 않는다는게 말이 되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기에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기에 이 말세 때에 더욱더 믿음에 견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대하며 소망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게을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하면 우리의 마음이 저 천국에 있지 못하고 이 땅에 있으므로 위에 것을 생각하며 그곳에 보화를 쌓아 놓기보다 이 세상에 쌓아 놓기에 분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약속의 땅인 저 천국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세상의 것들을 그리워하고 또한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삶은 결코 믿음의 삶이요 소망의 삶이 아닙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한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나은 본향을 향하여 나아가기보다 떠나 온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러한 우리 그리스도의 삶은 주님께 책망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주님께 책망 할 것이 있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결코 그래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이 다 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항상 기도할 때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님 재림하시는 날 주님께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이 될 것을 확신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8절).  이 얼마나 귀한 감사 기도입니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할 때 예수님이 다시 이 세상에 오시는 날 여러분 모두가 주님께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견고히 믿음에 서 있을 것을 확신하여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항상 드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귀한 감사 기도입니까?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은 이러한 감사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날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이 될 줄을 확신했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그 대답을 저는 오늘 본문 9절에서 찾습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실하신(미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임.  만일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바라보았다면 그는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감사 기도를 드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선택하시고 부르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예수님의 재림의 날까지 끝까지 견고케 하실 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빌립보서 1장 6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저와 여러분들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는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시작하신 착한 일을 완성하신다는 확신을 바울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 속에 시작한 구원의 역사는 주님께서 시작하셨고 주님께서 마치실 것이다라는 말씀이 아닙니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비록 우리는 불성실하시만 우리 주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승리장로교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생각할 때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처럼 저 또한 우리 승리교회를 생각할 때 하나님게 감사,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베풀어 주시는 풍성한 은혜로 말미암아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풍족한 복음의 진리의 깨달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 사역에 힘을 쓰는 승리교회, 또한 부족함이 없는 모든 은사들을 사용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주님의 역사에 모두 다 동참하는 모습을 보므로 하나님께 감사 또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영원하고 확실한 소망으로 인해 저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가 신실하신 주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재림의 신앙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들로 다 세움을 받아 하나님의 나팔 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모두 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신실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