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고린도전서 1장 1-3절]

 

 

새해 2011년을 맞이하여 성경 어느 책을 묵상할까 고민하다가 “고린도전서”를 선택하였습니다.  작년 12월 마지막 주일에 로마서 책을 다 묵상한 후 어떠한 책을 묵상할까 생각하다가 고린도전서를 선택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를 통하여 우리 승리장로교회가 배워야 할 교훈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뿐만은 아니라 모든 교회가 고린도전서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고 교회다운 교회가 되야 합니다.  특히 다툼과 분쟁과 죄악된 일이 만연하고 있는 요즘 교회의 모습을 볼 때 우리는 고린도전서 말씀을 통하여 책망을 받고 회개하며 변화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많이 느낌니다.  그래서 저는 새해를 맞이하여 고린도전서를 선택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묵상해 나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주시는 교훈을 겸손히 받고자 합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고린도전서를 묵상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고린도 도시에 관한 한 3가지 중요한 점들이 있습니다(박윤선): (1) 첫째로, “고린도”라는 도시에는 항구가 있는데 그 항구들을 통하여 무역이 성행하고 있는 만큼 여러 다른 민족들이 썩여 살고 있었음.  따라서 유대인들도 거기에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2) 둘째로, 고린도 도시에는 애굽 우상을 위한 신당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 애굽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무역차로 이 항구에 오는 배들이 많이 있어서 우상을 수입시킨데 있습니다. (3) 셋째로, 고린도 도시에는 무역이 성행되고 있었던 만큼, 부유층의 주민들이 많이 있는 동시에 많은 노예들과 가난한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는 극히 악하여 부패하고 있는 만큼, 음행하는 자를 가리켜 세칭 “고린도인”이라는 칭호를 줬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도시에 사도 바울은 제 2차 선교 여행 때인 약 주후 51년 말엽에 처음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서 18개월 동안 유하면서 복음을 전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행18:1-11).  그리고 바울은 필경 주후 53년 경에 고린도를 떠나 각처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에베소에 유하면서 주후 57년 봄에 본서를 저술하여 보낸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3절을 보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문안 인사를 봅니다.  이 문안 인사를 보면 우리가 한 3부분으로 윤곽(outline)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1절을 보면 고린도전서란 편지를 쓰고 있는 발신인(Writer)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 전서의 발신인 즉 고린도전서를 쓴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임.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박윤선)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1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소스데네”는 아마 바울의 비서(secretary)로서 전에 고린도인 회당(the Corinthian synagogue)에 지도자로서 이제는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된 사람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MacArthur).  (2) 둘째로, 2절을 보면 고린도서 편지를 받는 수신자(Receipient)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린도서 편지의 수신자는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각처에 퍼져 있는 기독 신자들.  (3) 마지막 셋째로, 3절에서 우리는 바울의 인사(Greetings)를 봅니다.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바울의 인사는 우리가 사도 바울의 다른 편지들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서 “은혜”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God’s saving grace)를 가리키고 “평강”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은 영혼의 평안을 가리킵니다(MacArthur).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이 진정한 영혼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죄인되었던 우리가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저는 오늘 이 사도 바울의 문안 인사 말씀 중심으로 고린도서 편지의 수신자들인 고린도 교회와 각처에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한 3가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과연 교회란 무엇인지 좀 더 분명히 알아 우리 교회가 어떠한 교회이고 또한 어떠한 교회가 되야 하는지 교훈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저와 여러분이 그 교훈대로 살아가므로 말미암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참된 교회가 되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빛을 발하는 승리 공동체가 되길 기원합니다.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교회란 무엇입니까?  한 3가지로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란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  요즘 이런 저런 대형 교회들의 안좋은 소식을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듣다보면 왠지 교회가 한 개인 담임 목사의 교회같이 보이던지 아니면 장로님들의 교회같이 보이던지 심지어 육신의 가족 식구들의 교회같이 보입니다.  그 한 예로 지난 주 한 크리스천 웹싸이트를 보닌까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형 교회가 파산하기 1년 전부터인가 원로 목사님이 가족들과 측근들 23명에 180만불이 넘는 임금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합니다(인터넷).  또 다른 예는 얼마전 (1월8일) 일어났던 애리조나 총격 사건으로 인하여 죽은 6명의 사람들 중 제일 나이가 어린 9살난 크리스티나 그린 아이의 장례식(13일) 때 시위를 벌이겠다고 캔사스주의 웨스트보로란 침례교회도 알고 보았더니 청설자 프래드 펠프스 목사와 그의 자녀, 후손들이 주축이 된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전에 이라크 전물장병의 장례식에서 병사의 죽음을 환영한 시위를 벌였었는데 그 때 그들은 “죽은 병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하나님은 동성애자를 증오한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했고 2004년 미국 대선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존 에드워드 전 상원의원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에드워드 씨의 장례식에서도 “하나님, 유방암을 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인터넷).  이렇게 남의 장례식에서 “잘 죽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진정한 기독교인들입니까?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하는 공동체가 진정한 교회입니까?  오래 전 저희 교회 오셔서 부흥집회를 인도해 주신 인도아 선교사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국에서 4대의 결처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시다가 작년 1월 11일 조지아주 애틀란타에서 교통사고로 숨지신 고 인도아 목사님이 살아 생전에 저희 교회 오셔서 설교하시면서 ‘한국 교회 안에는 인본주의가 너무나 많이 들어와 있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예수님의 향기보다 우리 사람들의 죄악된 썩은 냄새가 더 강하게 진동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죽 했으면 “교회가기 싫은 77가지 이유”(저자: 이만재)라는 책까지 나와겠습니까?  그 77가지 이유 중 몇가지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인터넷): (1) 교회 경험이 없는 젊은이들의 경우: “조용한 교회가 없다,” “예수 믿으면 부자된다는 거짓말이 싫다,” “가정 파괴 광신도를 봤다,” “양보 모르는 압력집단이다.”  (2) 교회 경험이 있는 젊은이들의 경우: “기업화된 교회의 위화감이 싫다,” “교회에서 진짜 신앙인을 보지 못했다,” “이중 인격자가 많아 싫다,”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와 각처에 있는 기독교인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교회란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교회란 사람에게 속한 교회도 아니요 사람들로 말미암아서 성립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교회(The church belongs to God)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성립되는 교회란 뜻입니다(박윤선).  그러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성립되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입니까?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하시고 그 십자가의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게하시므로(faith) 죄악된 세상에서 부르심을 입어(called) 하나님의 자녀들(the people of God)이 돤 저와 여러분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교회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the church of God which He purchased with His own blood)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피로 사신바 된, 즉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가 된 백성들입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교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됨(unity)입니다.  즉, 하나님의 교회란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된 것 같이 교회도 하나입니다(요17:22).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한 몸’(고전 12:12, 27)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한 몸안에 다양한 지체들이 있지만 그 다양한 지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12절).  그러나 사람들의 교회의 특징은 바로 “분쟁”(quarrels)(1:10, 11)과 나뉨(division)입니다(12:25).

 

오늘 아침에 저희 교회 히스패닉 사역 담당하시는 고메즈 목사님과 함께 교회를 나오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중에 히스패닉 사역에 새로온 한 자매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님이 우리 교회와서 처음으로 세 사역인 한국어 사역과 영어 사역과 히스패닉 사역 식구들이 연합으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과 교회가 화합(harmony)된 모습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을 들었을 때 ‘주님께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을 주님께서 신실하게 이루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승리교회 식구 여러분, 우리 승리장로교회는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께 속한 교회요 주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요 하나님의 교회임을 명심하십시다.

 

            둘째로, 교회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those sanctified in Christ Jesus and called to be holy)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절 상중반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  지금 교회는 더럽혀지고 있습니다. 온갖 죄악된 것들로 지금 교회는 오염되어 있습니다.  탐심과 욕심과 욕망과 교만함과 거짓, 분쟁과 다툼, 성적 타락 등등으로 교회는 지금 교회의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 볼 때 저는 민수기 11장 4절 말씀과 사사기 말씀들이 생각났습니다.  민수기 11장 4절을 보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만나로 인하여 불만족 속에서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하면서 울었던 이유는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4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인 교회가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더렵혀지고 있습니까?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우리 중에 섞여 사는 탐욕에 눈이 먼 사람들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교회가 세상에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죄악된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교회가 더렵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사기서를 보아도 비슷한 말씀이 나옴.  사사기 1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23, 27, 28, 29, 30 31, 32장 33절)는 말씀이 여러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 결과 그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옆구리에 가시”가 됬으며 그 가나안 족속들의 신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올무”가 되었습니다(2:3).  우리가 이 더럽고 추한 죄악된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더럽고 추한 모든 모양의 악을 다 내어 버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추구해야 하는데 지금 교회는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 교회는 세상의 풍조에 밀려 더럽고 추한 죄악에 많이 오염되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을 역활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한 마디로, 교회가 세상과 분리하고(나뉘고)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세상과 분리되 있지만 지금 교회는 세상과 화합(harmony)하고 교회 안에서는 불화(disharmony)가 끊임이 없습니다.  이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사단은 모든 것을 거꾸로 바꿔놓는 것임(exchanged, 롬1:23).  사단은 교회 안에는 나뉘게(분리되게, 불화하게) 만들고 세상과는 화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아끼시는 거룩한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교회가 거룩한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살전 4:3).  다시 말하면,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 거룩하시기에 우리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거룩”이란 무엇입니까?  “거룩”이란 단어의 뜻은 “set apart”, 곧 “떼어 두다, 따로 하다, 구별하다”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 나오는 10번재 재앙에서 하나님께서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사람들과 구별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를 죄와 세상과 따로 떼어 구별해 놓으신 것입니다.  얼마전 새벽기도회 때 출애굽기 33장 14-15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였습니다.  거기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가지 않으실 것이면 자기들을 있는 곳에서 가나안 땅으로 올려 보내지 마시길 간구합니다.  왜 모세는 이렇게 간구한 것입니까?  왜 그는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가시길 원하신 것입니까?  16절을 보면 그 대답을 찾아 볼수가 있습니다: “..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시므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세상에서 교회가 구별되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함께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별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바로 “성도”임.  그러므로 성경은 저와 여러분을 가리켜 “성도”(saint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의 삶은 어때야 합니까?  첫째로,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사랑의 삶).  시편 31편 23절을 보십시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 믿음을 인내로 지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2절을 보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둘째로,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거룩한 삶).  시편 34편 9절을 보십시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는 악을 미워함.  그러므로 그 성도는 에베소서 5장 3절 말씀에 순종합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한 마디로, 성도는 옳게 행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을 보십시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셋째로, 성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예배의 삶).  시편 30편 4절을 보십시오: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우리는 성도들로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적 예배입니다(롬12:1).

 

          마지막 셋째로,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장 2절을 보십시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은 각처에 거하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 곧 각처의 기독 신자들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지금 사도 바울은 고린도서 편지를 쓰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처의 기독 신자들에게도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교회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고린도서 편지를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만 쓴 것이 아니라 각처에 있는 모든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쓴 이유는 예수님 안에서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이나 다른 도시에 있는 성도들이나 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Pfeiffer).  교회는 하나입니다.  비록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여기 저기 지역적으로 많이 있지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교회 안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많이 있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의 한 몸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왜 사도 바울인 고린도서 편지를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만 쓰지 않고 각처의 기독 신자들에게도 쓴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분쟁하고 있었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예를 들어 각처의 모든 교회도 분쟁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교회의 통일성을 지켜 나아가길 권면하고자 한 것입니다.

 

요즘 이민 교회를 보면 개교회주의가 팽창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하면, 각 지교회들이 자기 교회만 생각하는 경향이 더 심해진 것 같습니다.  다른 교회에 대한 배려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다른 교회가 어떻게 되는 우리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마치 대형 마켓이 작은 도시에 들어오므로 주위에 모든 작은 가게들이 손님들을 잃어버려 가게가 어려움을 당하고 심지어 문을 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교회들도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큰 교회는 계속 커가면서 같은 이름으로 지역 교회를 세우고 또 세우는 가운데 주위에 작은 교회들이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작은 교회들은 서로가 있는 교인들을 서로 자기 교회로 데리고 오려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보닌까 교회가 한 영혼, 영혼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면서 잘 양육하여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세우기 보다 예배당 안에 교인 숫자를 채우기 바쁘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배당에 교인 숫자를 채우는게 중요합니까 아니면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여 주님의 일군으로 세워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게 중요합니까?  우리는 개교회주의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다 주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지교회들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다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견제하고 분쟁하며 다투고 싸워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교회의 하나됨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해야 함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모든 교회를 하나되게 하소서’라고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싸움과 다툼과 분쟁하는 교회의 모습을 이 세상에 보여줘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이 이름을 부르는 모든 신자들이 주님 안에서 이미 하나되었음을 믿고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엡4:3).  그러므로 이 어두운 세상에 예수님의 빛을 발하는 교회가 되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지 한 3가지로 배웠습니다: (1)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2)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3)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승리장로교회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각처에 모든 믿는 기독 신자들과 이미 하나되었음을 믿고 성령의 하나됨을 잘 지켜 나아가는 우리 승리장로교회가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있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