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아들에게 일러준 3가지 교훈

 

 

[잠언 311-9]

 

 

여러분은 여러분의 어머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교훈 중에 마음 판에 새겨진 귀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미국 농구 선수 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선수 중 하나는 바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테판 커리라는 선수입니다. 그 선수가 2018년 5월 휴스턴 로켓츠와의 NBA 결승전 3차전에서 경기 도중 큰 소리로 F로 시작하는 거친 욕설을 했었습니다. 그 모습을 TV를 통해 본 그의 어머니는 나중에 아들을 불러 꾸짖으셨다고 합니다. 꾸짖되 그의 어머니 소니아는 아들에게 그의 실수를 알려주기 위해 2개의 영상을 계속해서 보여주셨다고 합니다. 스테판 커리는 ESPN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가서 비누로 입을 씻으라’며, 내가 어떻게 입술을 깨끗케 할 수 있는지 말씀해주셨다. 어머니는 전에도 내게 이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 어머니가 옳았다.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고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인터넷). 저는 개인적으로 2018년 5월에 소천하신 한국 LG 회사의 고 구본문 회장님에 대한 기사를 읽고 그 분에게 어머님의 영향이 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분에 대한 기사 제목은 “LG의 인상.상록재단 … ‘베풀며 살아라’ 어머니 뜻 평생 지켰다”였습니다. 그 기사 내용 중에는 이러한 글 내용이 있습니다: “고인은 ‘남들에게 베풀고 살라’는 어머니 고(故) 하정임 여사의 뜻을 평생 실천했다. ‘국민이나 사회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다’면서 LG복지재단, LG연암문화재단, LG연암학원 등 복지·문화·교육 분야 공익재단 이사장 및 대표이사로 사회 공헌 활동에 투자와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인터넷).

 

오늘 본문 잠언 31장 1-9절을 보면 어머니가 서원대로 얻은 아들 르무엘 왕에게 일러준 중요한 교훈의 말씀이 나옵니다(1-2절). 그 중요한 교훈의 말씀을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3-9절).

 

첫째로, 어머니는 그녀의 아들에게 너는 정력을 여자들에게 소모하지 말라고 훈계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31장 3절을 보십시오: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 [(현대인의 성경) “너는 네 정력을 여자들에게 소모하지 말아라. 왕들이 그것 때문에 망한다”]. 여러분 혹시 “정력”이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남성이여 기를 펴라(생활 속 정력 강화)”라는 인터넷 글이 있어 읽어보았습니다. 그 글을 쓴 비뇨기과 의사에 의하면 한국 사람처럼 정력에 집착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라고 말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정력에 좋다고 하면 개고기, 녹용, 뱀, 자라에서 부터 사슴 피, 웅담, 해구신까지 가리지 않고 먹어댈 정도로 정력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정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비뇨기과 의사에 의하면 정력이란 한마디로 ‘피’라고 합니다. “남성의 음경에는 스펀지나 수세미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말랑말랑한 해면체가 3개 있다. 성적인 자극을 받아 중추신경이 ‘발기명령’을 내리면 이 해면체가 부풀어 오르면서, 그곳에 평소의 7배나 되는 피가 쏠리게 된다. 이때 음경 정맥은 확장된 해면체에 눌리므로 해면체로 들어온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게 된다. 흔히 정력이라 말하는, 딱딱하게 팽창한 것의 실체가 바로 피인 것이다”(인터넷). 이 “정력”이란 단어가 민수기 11장 6절 개역한글에 나옵니다: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이 말씀의 문맥을 보면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온 가족들이 각기 장막에서 울었습니다(4절). 그 이유는 그들은 자신들과 섞여 사는 무리들의 탐욕을 본받았기 때문입니다(4절).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꾜”(4절)하면서 애굽에 있었을 때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을 생각하며(5절) 그리워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로 자족하지 않고 그것만 먹으므로 자기들의 정력이 쇠약하였다고(6절) 불만과 불평 속에서 울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원망이었습니다. 그들은 탐욕을 품으므로 하나님께 감사 하지 못하고 오히려 애굽의 음식들을 생각하면서 자기들이 고기를 못 먹어서 정력이 쇠약해졌다고 하나님을 탓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18절) 혹은 더 잘 먹고 잘 살았다고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표시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31장 3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인 르무엘 왕에게 이렇게 훈계를 했습니다: “너는 네 정력을 여자들에게 소모하지 말아라. 왕들이 그것 때문에 망한다.” 실제로 개역개정에서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라는 말씀에서 “힘”(strengthen)이란 단어의 히브리어 의미는 바로 성관계에서의 남자의 힘인 “정력”(vigor)입니다(DBL Hebrew).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아들인 르무엘 왕에게 “너는 네 정력을 여자들에게 소모하지 말아라”고 훈계한 이유는 왕들이 그것 때문에 망하기 때문입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 그 좋은 예가 바로 그 유명한 솔로몬 왕입니다. 열왕기상 11장 1-4절을 보면 솔로몬 왕은 애굽 왕 바로의 딸 외에 많은 이방인 여자들을 사랑했습니다(1절). 분명히 전에 하나님께서 이 이방 나라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그들과 결혼하지 말아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너희 마음을 돌려 우상을 섬기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솔로몬 왕은 그녀들을 사랑했습니다(2절, 현대인의 성경). 솔로몬 왕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거느린 결과 그녀들이 그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했습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 솔로몬 왕이 나이가 많을 때에 그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이방 신들을 따르게(섬기게) 했습니다(4절). 결국 솔로몬 왕은 그 이방 여자들로 말미암아 우상을 숭배하므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6절).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에게 두 번씩이나 나타나셔서 그에게 이방신들을 섬기지 말라고 경고하셨지만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성경 신명기 17장 17절에서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고 거주할 때 만일 그들이 자기들 주위에 모든 민족들 같이 자기들도 왕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14절) 반드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왕으로 세워야 하며 이스라엘 사람 중에 한 사람이어야 하며(15절) 그 왕이 될 사람에게는 3가지를 많이 두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3가지란 바로 병마(16절)와 아내와 은금입니다(17절). 그런데 솔로몬 왕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이 3가지가 다 많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아내를 많이 두므로 결국 그 여인들에게 정력을 쓴 결과 우상까지 섬기는 악한 죄를 하나님께 범하게 된 것을 생각할 때 저는 그의 아버지 다윗이 그의 충성된 군인이었던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와 동침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아버지 다윗이 자신의 정력을 여자들에게 소모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잠31:3) 그는 자기 아내들 외에 남은 아내인 밧세바에게 자신이 정력을 소모했습니다. 이 간음의 죄를 범한 후 그 죄를 덮으려고 시도하다가 결국에는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는 더 큰 악을 범했습니다(삼하 11장). 그 결과 중 하나가 다윗의 아들인 암논이 자기의 이복동생인 다말을 강간하고, 다말의 오라버니인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일이 다윗의 집안에 일어났습니다(13장).

 

이렇게 다윗 왕이나 그의 아들 솔로몬 왕처럼 자신들의 정력을 여자들에게 쓰게 되면(잠31:3) 잠언 5장 9절 말씀처럼 그들의 존영이 남에게 잃어버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우리의 길을 음녀의 집 문에 가까이 갈 때 첫 번째 불행한 결말은 우리는 존영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존영”이란 “힘 또는 정력”(strength or vigor)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아니면 명예(honor)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두 해석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녀를 멀리하지 않고 그녀의 집 문에 가까이 하므로 결국 그녀의 유혹에 넘어갈 때 우리는 힘(정력)도 잃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명예와 영광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31장 3절에서는 왕들이 여자들에게 정력을 쓰는 것은 자기 자신을 멸망시키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들에게 미혹되는 자는 실질에 있어서는 자기 정욕에게 미혹되는 자이다. 정욕의 노예가 된 약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랴? 통치자가 정욕의 노예가 된다면 모든 관리들도 그렇게 되고 백성도 그렇게 된다. 그런 경우에 그 나라는 더러운 짐승 같은 자들로 가득 차서 마침내 멸망할 것이다”(박윤선).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생각납니다. 왜 그 도시들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했습니까? 그 이유는 성적 타락입니다. “영어 단어 중 sodomy(소도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수간이나 동성애 등 비정상적인 성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소도미라는 단어가 파생될 정도로 소돔은 성적으로 타락된 곳이었습니다”(인터넷). 이 소돔과 고모라 외에 로마 제국이 생각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란 책을 쓴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의 쇠망 원인 중 하나로 성적 타락으로 인한 가정 파괴를 들고 있습니다(인터넷). “로마는 목욕탕 때문에 망했다고 할 정도로 성적 타락은 목욕탕에서 이루어졌는데 로마에만 9백여 개에 달하는 목욕탕이 있었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건립한 목욕탕은 한꺼번에 3천명이 목욕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인터넷).

 

여러분, 우리는 성적 타락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이 죄악 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일진대(요일 2:16) 우리는 이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롬 13:14).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갈 5:24). 그러므로 우리는 다 지나갈 정욕을 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요일 2:17). 우리는 이제부터 남은 생애를 우리의 정욕(인간적인 욕망)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벧전 4:2).

 

둘째로, 어머니는 그녀의 아들에게 너는 술에 취하지 말라고 훈계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엔 왜 사람들은 술을 취하도록 마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한 인터넷 기사에 이런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잔은- 건강을 위하여 마신다고 하나, 얼큰하면 - 쾌락을 위하여 마시게 되고, 취하게 되면 - 방종한 행동을 하게 되고, 만취가 되면- 광기를 부리게 된다”(인터넷). 술을 마시는 이유 중 하나는 기분이 좋아서 일 것입니다. 왜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알코올을 조금 마시면 처음에는 중추 및 말초신경이 흥분되고 위산 분비가 촉진되며 또한 도파민(dopamine) 이라는 신경 전달물질이 분비되므로 말미암아 기분이 좋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술을 과음하거나 장기간 남용 또는 과용하면 술이 불행하게도 뇌세포 파괴를 촉진시켜 우리 뇌의 기능을 억제시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매일 십만 개씩 뇌세포가 자동 사멸하는데, 알코올을 다량으로 마시면 더 많은 뇌세포가 죽습니다. 학업이나 기억 또는 사고능력 모두 저하되는데, 이들의 저하는 알코올의 농도에 정비례하여 나타난다고 합니다. 알코올을 과음하면 취중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슨 행동을 했는지를 기억할 수 없습니다. 소위 ‘필름이 끊기는 현상’이 나타납니다(인터넷).

 

과연 우리 기독교인들이 술 마시는 것은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마시면 아니 되는 것인지에 관한 문제를 우리가 논할 때 중요한 것은 과연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기를 성경에는 술 취하지 말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면서 술 취함은 심각한 죄로 규정하고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술 취함과 술 마심을 구분하여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취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포도주를 마신 것은 사실임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술 마심은 로마서 14장과 고린도전서 8장의 “아디아포라” 문제, 즉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문제에 해당된다고 말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 신학자의 결론은 술 담배가 몸에도 해롭고 가정에도 해롭다는 인식에 비추어 사랑과 건덕의 원리(근본적으로 신앙이 연약한 자들을 위해서 세워진 관용의 원리)를 적용하면 술을 마시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입니다(인터넷).

 

우리는 이미 잠언 20장 1절 말씀 중심으로 “술로 인하여 우리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내지 마십시다”란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었습니다. 성경 잠언 20장 1절을 보십시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포도주” 외에 “독주”(strong drink)는 보리나, 대추나 혹은 석류로 만든 술로써 마시는 사람들로 하여금 취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사 28:7).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제사장들(레10:9)과 나실인(민 6:1-3) 그리고 다른 사람들(사 5:11)도 마시는 것을 금하였습니다(Walvoord). 그 한 예로 이사야 28장 7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 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하나님의 종들인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포도주와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상을 잘못 풀어 재판할 때에 실수하는 모습이 여러분은 상상이 되십니까? 만일 주일 예배 때 목사님들이 술 취해서 설교를 한다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레위기 10장 9절에서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성경 잠언 20장 1절에서 포도주나 독주가 우리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2가지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2가지란 다름 아닌 포도주와 독주는 우리를 거만케 하며 또한 싸우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포도주와 독주가 우리에게 끼치는 악영향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lead astray)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되 포도주와 독주는 우리로 하여금 미련한 길로 이끕니다. 미련한 길로 이끌되 우리로 하여금 당장 분노를 나타내어(잠 12:16) 다툼을 일으키게 할 뿐만 아니라(20:3) 우리로 하여금 죄를 심상히 여기게 만듭니다(14:9). 결국 포도주와 독주란 우리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31장 4절을 보십시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현대인의 성경) “르무엘아, 왕은 포도주를 마셔도 안 되고 통치자는 독주를 찾아서도 안 된다”]. 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에게 이렇게 훈계를 한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31장 5절을 보십시오: “술을 마시다가 법을 잊어버리고 모든 곤고한 자들의 송사를 굽게 할까 두려우니라”[(현대인의 성경) “왕이 술을 마시게 되면 법을 잊어버리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짓밟기 쉽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가 자기 아들인 르무엘 왕에게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훈계한 이유는 왕이 술에 취하면 법을 잊어버려서 곤궁한 백성에게 억울한 재판을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5절, 박윤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왕이 술에 취하면 사고력과 판단력이 약해지고, 유죄 판결을 풀지 못하며 또는 마음을 왜곡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술 취함은 명확하고 꾸준한 마음과 예리한 판단이 필요한 통치자에게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맥아더). 그래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 르무엘 왕에게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4절)라고 말한 후 ”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6절). 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독주나 포도주는 죽게 된 자나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주라고 말했을까요? 오늘 본문 잠언 31장 7절을 보십시오: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그들은 그것을 마시고 그들의 가난과 고통을 잊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죽게 된 자나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독주와 포도주는 마치 우울증 치료제처럼 자신의 필요와 자신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Believer’s Bible 주석).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통이나 가난을 잊어버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말씀)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아무리 우리의 고통이나 가난이 극심하다가 우리는 술 취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성경 로마서 13장 13절에서 술 취함은 어두움의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 베드로전서 4장 3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술 취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요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사는 것이기에 우리는 술 취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술 취하지 말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누가복음 21장 34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술 취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이 둔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전도서 2장 3절에서 전도사 솔로몬 왕이 고백했던 것처럼 술 취함으로 괘락을 누려보려는 것은 어리석기에 우리는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 중에 있을 술에 취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 하여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잠 31:5).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차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르십니다(사54:6,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입니다(요 14:1). 그러므로 우리는 근심 중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근심의 짐을 다 맡겨야 합니다(벧전 5:7).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심된 마음을 위로해 주시사 우리의 영혼을 즐겁게 하실 것입니다(시 94:19).

 

마지막 셋째로, 어머니는 그녀의 아들에게 너는 불쌍한 자들을 돌보라고 훈계했습니다.

 

지난 번 한국 뉴스에서 사법행정사무를 관장하는 대한민국 대법원의 소속기관인 법원행청처가 상고법원 입법을 놓고 청와대와 재판 거래(협상)를 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한 뉴스를 기억하십니까? 그 때 최모 부장판사란 사람이 이러한 지적을 했다고 한 인터넷 기사에 나와 있어 나눕니다: “그는 법원행정처 문건으로 드러난 '재판 거래'와 관련해서도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정치적 거래나 흥정 대상으로 삼아 주권자인 국민의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와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사법부 스스로 존재 근거를 붕괴시키는 참담한 결과를 냈다"고 지적했다”(인터넷). 저는 그 때 그 뉴스를 보면서 만일 재판 거래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대법원장이 개입한 대법원에서 재판 거래가 있을 수 있을까 의아해 했었습니다. 그러면 한국 시민들은 누가 대법원을 신뢰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만일 한 나라의 최고 법원에서 재판 거래가 있었다면 그 재판 거래로 인하여 피해를 본 시민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그 피해를 본 시민들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힘입는 권력 앞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우리 한 나라의 시민들이 재판부에 원하는 것은 공정한 재판이지 불공정한 재판을 원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구약 성경 아모스에 보면 아모스 선지자 시대 때에도 재판장들이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들을 천대하며 압박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한 자들이 억울함을 당했습니다(암 5:12). 결국 뇌물을 받으면 치우쳐(대하 19:7) 재판을 굽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잠 17:23). 성경 사무엘상 8장을 보면 이스라엘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나아와 다른 나라들 같이 자기들에게도 왕을 세워 자기들을 다스려 달라고 요청하는 모습이 나옵니다(4-5절). 그 이유는 늙은 사무엘을 대신하여 그의 두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를 이스라엘 사사로 세웠는데(1-2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아버지 사무엘의 행위를 본받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즉,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늙어 백발이 되기까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일 해오면서 뇌물을 받은 적도 없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무엘에게 ‘(당신은) 단 한 번도 뇌물을 받은 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였는데(12:1-4, 현대인의 성경) 그의 두 아들인 요엘과 아비야는 자기들이 아버지인 사무엘과 달리 “돈을 탐하여 뇌물을 받고 재판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하지 않았”기에(8:3, 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다른 나라들과 같이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해 달라고 구한 것입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신약 성경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상관들이 바울과 실라를 “옷을 찢어 벗기로 매로 치라”하여 많이 친 후에 그들을 옥에 가뒀습니다(22-23절). 그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비시민권자들에 비하여 아주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 재판을 받게 되어있었는데 바울과 실라는 로마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로마법대로 타당한 재판 절차를 받지도 못하고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가 없이 많이 매를 맞고 옥에 가둔바 된 것입니다(유상섭). 이렇게 구약 시대 때부터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 때나 신약 시대 때나 지금이나 불공정한 재판으로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명기 24장 17절에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외국인과 고아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과부의 옷을 담보물로 잡아서는 안 됩니다”(현대인의 성경). 또한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1장 27절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고아와 과부들을 돌봐 주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이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오늘 본문 잠언 31장 8-9절을 보십시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 너는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여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할지니라”[(현대인의 성경) “너는 자기 스스로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해 주고 불행한 사람들의 진리를 옹호해 주며 입을 열어 공정한 재판을 하고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 주어라”].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 르무엘 왕이 포도주와 독주를 마셔서 술에 취하여 법을 잊어버려서 곤궁한 백성에게 억울한 재판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5절). 오히려 그녀는 르무엘 왕이 곤궁한 백성, 특히 가난하여 힘이 없고 고통당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하길 원했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하되 그녀는 르무엘 왕이 그들을 대변해주고 그들의 진리를 웅호해 주며 그들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 주길 원했습니다. 한 마디로,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이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길 원했다는 것입니다.

 

성경 잠언 14장 21, 31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십시오: “자기 이웃을 멸시하는 사람은 죄를 짓는 자이며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복 있는 자이다. …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사람은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이며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이다.” 성경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은 복 있는 자요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을 존경(공경)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이 이러한 하나님을 존경하는 자요 복 있는 자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들 르무엘 왕에게 말 못하는 자들[벙어리들(개역한글)], 고독한 자들, 곤고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어 공의로 재판하며 그들을 신원해 주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녀는 르무엘 왕에게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야 할까요? 제 대학교 룸메이트 중 한 형제는 지금 변호서로 일하면서 또한 Justice Ventrures International(공의가 여러 나라로 위험을 무릅쓰고 가다)이란 곳에서 자원하며 봉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에도 그 형제는 여름에 직장에 휴가를 내고 그 그룹에 소속된 사람들과 함께 인도에 가서 섬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형제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도에 가서 하는 일은 그곳에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는데 변호하고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단체의 비전은 이렇습니다: “Our vision is to see unjust communities transformed into communities ordered according to God’s standard of love where human rights and dignity are respected by all”(우리의 비전은 부당한 커뮤니티가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에 따라 질서가 잡힌 지역사회로 변화되어 모든 사람이 인권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봉사자들과 그 단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은 인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신매매와 극단적인 불의의 다른 형태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들에게 자유과 공의와 회복을 가져다주고자 지역 조직들과 및 세계 이해 당사자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그 단체에서 받은 이 메일을 보니까 뉴스레터가 왔는데 그 뉴스레터 제목이 “Four Girls Rescued from Domestic Slavery”(네 명의 소녀가 국내 노예로부터 구출 됨)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제 대학 후배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돕고자 섬기고 있는 것이고 우리 모두 각자가 나름대로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가난하고 힘이 없는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며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가난하여 힘이 없고 고통당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하길 원했습니다. 공정한 재판을 하되 그녀는 르무엘 왕이 그들을 대변해주고 그들의 진리를 웅호해 주며 그들의 억울한 문제를 해결해 주길 원했습니다. 이러한 왕에 대해 시편 기자는 시편 72편 4, 12-14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 그들의 피가 그의 눈앞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로다.” 이러한 왕이 나라를 다스린다면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소망이 있지 않겠습니까? 자기들의 억울함과 압박과 강포를 알아주고, 자기들을 불쌍히 여겨 그것으로부터 건져(구원)주는 사람이 자기들의 왕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소망과 위로와 힘이 되겠습니까? 르무엘 왕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이 그러한 왕이 되길 원했습니다. 이렇게 자기의 아들이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길 원한 것을 볼 때 우리 또한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데 헌신을 해야 합니다. 헌신하되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불쌍한 마음이 드는 주위 사람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며 도와주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아동 문학가이자 목사님이신 최효섭이란 분이 쓴 글 중에 “어머니, 아 그 위해한 이름”이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그 글 내용 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아이들아, 너희 마음에 가장 뚜렷한 자국을 남긴 것이 어머니이다. 서양속담에 ‘악마가 인간으로부터 빼앗는 마지막 자국이 어머니의 자국이다’라는 말이 있다. 책이나 너희들의 영웅으로부터 받은 영향도 악마는 쉽게 빼앗을 수 있지만 어머니의 자국은 너무나 깊기 때문에 악마도 빼앗을 수 없다는 뜻이다”(인터넷). 그 정도로 자녀에게 있어선 어머님의 영향이 매우 크고 또한 평생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31장 1-9절은 르무엘이란 왕의 어머니가 아들 르무엘 왕에게 준 3가지 교훈입니다. 그 3가지 교훈이란 첫째로, ‘너는 정력을 여자들에게 소모하지 말라’(3절), 둘째로, ‘너는 술에 취하지 말라’(4절)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너는 불쌍한 자들을 돌보라’(8-9절)입니다. 우리는 성적 타락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합니다(롬 13:14). 우리는 다 지나갈 정욕을 행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돼야 합니다(요일 2:17). 우리는 이제부터 남은 생애를 우리의 정욕(인간적인 욕망)을 위해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벧전 4:2). 또한 우리는 고통 중에 있을 술에 취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에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 하여 그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잠 31:5).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데 헌신을 해야 합니다. 헌신하되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불쌍한 마음이 드는 주위 사람을 주님의 사랑으로 돌보며 도와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