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잠언 27장 15-19절]
여러분, 요즘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떠합니까?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어디에 우선으로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까? 행함입니까 아니면 존재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행함보다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제가 주님과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보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저는 제가 행하는 일보다 제가 누구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존재”(being)가 “행함”(doing)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는 존재에서 행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잠언 27장 15-19절 말씀 중심으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지 한 3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겸손히 주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아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화목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7장 15절을 보십시오: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현대인의 성경) “다투기 좋아하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계속 떨어지는 빗방울 같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지붕에서 비가 새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만일 보신 적이 있으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했습니까?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비가 오는 날이면 저희 예배당 지붕에서 물이 한 방울 한 방울 계속 떨어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나중엔 저희 교회 히스패닉 사역 목사님이 지붕에 올라가서 방수 공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교회 리모델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오랫동안 지붕에서 물이 새서 교회 예배당 천장의 나무들일 썩어져서 조근만 그대로 방치해 두었으면 무너질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공사하는 분에게 듣고 얼마나 다행인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7장 15절을 보면 성경은 “다투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다투기 좋아하는 여자는 비 오는 날에 계속 떨어지는 빗방울 같다”고 번역을 했습니다. 비슷한 말씀이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19장 13절 하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계속해서 남편과 다투는 습성이 있는 아내는 연거퍼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그녀는 남편과 다툼이 시작되면 말을 끊지 않는다는 말입니다(박윤선). 그런 집안에는 평안할 날이 있겠습니까? 별로 없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가정에 자녀들은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엄마, 아빠가 계속해서 다투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마치 지붕에서 빗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씩 새는 것을 볼 때에 저렇게 계속해서 놓아두었다간 천장이 무너질 수 있겠구나 라는 불안한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엄마, 아빠가 저렇게 날마다 다투는 모습을 보는 자녀의 마음은 저러다가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하면 어떠한지 라고 생각하며 충분히 불안해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7장 15절에서도 성경은 “다투는 여자”를 말씀하고 있는데 현대인의 성경은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즉,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다투는 여자는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로서 가정에서 남편과 다투는 것이 습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 얼마나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여자입니까. 물론 가정에서 부부가 서로 다툴 때에 여자만 아니라 남자도 다투기를 좋아하는 다투는 습관이 있는 남편도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부부는 서로 다투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왜 습관이 될 수 있을까요? 야고보서 4장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부부가 서로 다투는 원인은 각자 안에 싸우는 정욕 때문이요, 습관적으로 다투는 원인은 그 싸우는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부부가 성령 충만하지 못하여 성령님의 열매 중 하나인 “절제”를 하지 못하기에 계속해서 다투는 것이요 습관적으로 다투는 것입니다. 절제하지 못하되 특히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시비를 그치지 않고(잠 15:18) 다투고자 분노 가운데 과격한 말을 합니다(1절). 그래서 성경 잠언 21장 9절을 보면 성경은 “다투는 여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19절에 가서는 “다투며 성내는 여인”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투는 원인이 분노는 참지 못하고 성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냐면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15:18). 그러나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칩니다(18절). 그래서 성경 잠언 21장 9절과 1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 …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현대인의 성경) “다투기 좋아하는 여자와 한집에 사는 것보다 차라리 옥상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 다투기 좋아하는 성미 고약한 여자와 함께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여러분,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이나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낫습니다. 큰 집에서 편안하게 부부가 함께 살면서 서로 다투는 것보다 불편하지만 움막이라도 서로 화목하게 사는게 더 낫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화목한 부부를 세우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는 화목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우리는 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감당하되 우리는 먼저 우리 가정에서 화목하게 하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화목하게 하는 사역을 감당하되 우리는 먼저 부부가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우리는 3 가지를 힘써야 합니다.
(1) 우리는 서로의 허물을 거듭 말하지 말고 서로 덮어줘야 합니다.
잠언 17장 9절을 보십시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의 허물을 더욱 더 잘 보게 하고 그 허물을 자꾸만 우리의 입술로 서로에게 말하게 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게 하므로 부부 관계를 이간질시키고 또한 다투게 만들고 있습니다. 또한 사단은 상대방이 우리에게 잘못한 것들을 우리 생각에 기록해 놓게 만들어서 그 잘못한 것들을 서로에게 말하게 만들되 거듭 말하게 만들므로 서로의 인간관계 속에서 다툼과 불화의 결과를 가지고 오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여 우리의 허물을 가리워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의 허물을 덮어줘야 합니다.
(2) 우리는 부부의 화목을 위하여 다투기 시작하기 전에 시비를 그쳐야 합니다.
잠언 17장 14절을 보십시오: “다투는 시작은 둑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칠 것이니라.” 여러분, 가정 안에서 부부나 자녀들이 서로 다툴 때에 주로 무슨 일로 다툽니까? 큰 일 때문에 다툽니까 아니면 지극히 작은 일로 다툽니까? 부부는 지극히 사소한 일로도 다투곤 합니다. 그런데 주로 우리가 서로 다투고 싸울 때에 시비를 그쳐야 하는데 시비를 그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작은 일로 시작한 싸움이 점점 확대되어 더 큰 싸움이 되곤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툼이 시작하기 전에 시비를 그쳐야 합니다.
(3) 우리는 부부의 화목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희생하며(막9:5),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8:34) 겸손하며(9:34-37)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41절).
우리는 화목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바로 화목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과 이웃을 화목하게 하는 화목의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한 영혼, 영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바 된 그 영혼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서로 화목케 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 일컬음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마 5:9).
둘째로, 우리는 서로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Paul David Tripp이란 목사님은 그의 책 “What did you Expect?”에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No, what we are getting is something we desperately need, the uncomfortable grace of personal growth and change”(아닙니다, 우리가 얻는 것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개인의 성장과 변화의 불편한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성격이 다르고, 자라난 배경이 다르며, 생각하는 것 등 모든 면으로 다른 두 남,여가 한 가정을 이루어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는 ‘불편한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불편한 이유는 두 다른 남, 녀가 결혼하여 한 가정을 이룸에 있어서 함께 많이 부서지고 또한 많이 깎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부부가 서로 많이 깎이기 위해선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은 사람이 날카롭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잠 27:17,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기 위해선 두 철들이 잘 부딪혀야 합니다. 그와 같이 부부가 서로 날카롭게 하기 위해선 주님 안에서 잘 싸워야 합니다. 주님 안에서 잘 싸우는 부부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므로 서로의 차이를 옳고 틀렸다고 말하기보다 ‘우리는 그저 다를 뿐이야’라는 자세로 그 차이들을 오히려 서로의 변화와 성장의 계기로 삼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서로 보완하는 계기로 삼으므로 더욱더 부부가 함께 온전해져 갑니다.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통하여 오히려 주님 안에서 함께 성장해 나아갑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서로의 차이를 오히려 감사해 하며 존중합니다. 이것은 부부가 절실히 필요한 개인의 성정과 변화의 불편한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7장 17절을 보십시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처럼 사람은 사람이 날카롭게 한다”]. 여기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는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돕는 것을 비유한 말씀입니다(박윤선). 그렇게 우리는 서로 도우므로 상대방 형제, 자매로 하여금 발전하게 하여 빛나게 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박윤선). 여러분, 그러면 우리가 상대방 형제, 자매로 하여금 발전하게 하여 빛나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우리가 우리의 친구 형제, 자매를 날카롭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 4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우리가 우리의 친구를 날카롭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우리 친구에게 비춰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7장 19절을 보십시오: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현대인의 성경) “물이 사람의 얼굴을 비춰 주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비춰 준다”]. 시냇가 물에 우리의 얼굴을 들이대면 우리의 얼굴이 비취듯이 우리는 우리의 친구와의 만남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비춰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진정한 마음과 투명성을 가지고 우리 친구를 대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투명하고 정직하며 또한 진실되게 우리 친구에게 열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친구와 마음이 서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안게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친구와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게 하실 때 우리는 서로를 날카롭게 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우리의 친구를 날카롭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권고해야 합니다.
잠언 27장 9절을 보십시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현대인의 성경)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처럼 친구의 진실한 충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우리 친구에게 투명하게 비취게 하실 뿐만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친구를 권고케 하십니다. 권고케 하시되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적합한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친구를 권고케 하십니다. 여기서 적합한 때가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우리의 친구를 권고한다 할지라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우리 친구를 날카롭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27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아무리 축복이라도 아침에 큰 소리로 하면 어느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때에 따라 돕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사 그 분의 적합한 타이밍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 친구를 권고케 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우리 친구를 날카롭게 하십니다.
(3) 우리가 우리의 친구를 날카롭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칭찬해야 합니다.
잠언 27장 2절을 보십시오: “타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말며 외인으로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술로는 말찌니라”[(현대인의 성경) “너는 다른 사람이 너를 칭찬하게 할망정 네 입으로는 너를 칭찬하지 말아라”]. 우리는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우리 친구와 대화를 할 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권고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친구를 칭찬해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가능케 하십니다.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안을 열어주셔서 우리 친구 안에 장점을 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친구의 장점을 칭찬하게 하십니다. 칭찬케 하시므로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친구를 격려하시고 위로하시며 힘 있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친구를 칭찬해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칭찬에 인색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친구를 칭찬하므로 우리 친구를 날카롭게 해야 합니다.
(3) 우리가 우리의 친구를 날카롭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면책해야 합니다.
잠언 27장 5-6절을 보십시오: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현대인의 성경) “맞대 놓고 책망하는 것이 숨은 사랑보다 낫다. 친구는 상처를 주어도 신실한 우정의 표현이지만 원수는 입을 맞춰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면책보다 숨은 사랑을 하는 것이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숨은 사랑보다 면책이 낫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원수의 거짓된 입맞춤보다는 충성에서 말미암은 친구의 통책이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친구의 통책”이란 영어 성경 NASB를 보면 “the wounds of a friend”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즉, 친구의 통책이란 친구가 주는 상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친구가 우리에게 주는 상처가 원수의 거짓된 자주 입맞춤보다 낫습니까? 그 이유는 원수는 우리를 미워하기에 거짓된 입맞춤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무너트리고자 하는 반면에 친구는 우리는 사랑하기에 진실 된 면책으로 우리를 세우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친구가 우리를 사랑하므로 면책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의 사랑의 면책으로 오는 마음의 상처가 우리에게 유익하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유익한 상처까지 우리는 우리 친구에게 사랑의 면책으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친구를 날카롭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우리는 우리 친구를 날카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는 우리 친구를 날카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 하나님께서 보게 하시는 친구의 장점들을 보고 진심으로 우리 친구를 칭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친구를 면책해야 합니다. 우리 형제, 자매 친구를 날카롭게 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는 지키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제일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아마 우리 모두가 지키고 싶은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 식구들일 것입니다. 특히 부모로서 자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우리 부모들의 본능일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신앙의 부모로서 우리 자녀들의 신앙을 지키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속화되기 쉬운 너무나 유혹과 미혹이 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부모로서 우리 자녀들의 신앙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야고보서 1장 2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 것이니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순수한 신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고아와 과부들을 돌봐 주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이것입니다”]. 이러한 순수한 신앙을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에게도 물려주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간절한 소망이요 기도 제목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 잠언 27장 18절을 보십시오: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에게 시중드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현대인의 성경) “무화과나무를 보살피는 사람은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잘 보살피는 사람은 영화를 누린다”]. 여기서 “시중드는 자”란 “지킨다”는 뜻으로서 “자기 주인을 원수가 해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파숫군의 직무를 가리”킵니다(박윤선). 그래서 18절 상반절에서 성경은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박윤선 박사님의 주석에 의하면 “무화과는 매우 고상한 열매”이며 “무화과나무로 하여금 열매를 잘 맺도록 하려면 주의 깊이 그 나무를 돌보아야 된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 무화과나무는 땅을 잘 갈아주어야 열매를 맺고, 묵은 무화과나무는 잘 가꾸어 주어야 그것이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박윤선). 이렇게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무화과나무로 하여금 매우 고상한 열매를 잘 맺도록 땅을 잘 갈아주고, 잘 가꾸어 주고, 잘 돌봐주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자들로서 그들의 삶 속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잘 도와주고, 잘 돌봐주며, 잘 지켜줘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되지 않도록 파숫군이 되어”야 합니다(박윤선). 저는 이번에 교회적으로 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이 무지한 가운데서 제가 묵상하고 선포했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그 말씀과 불일치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제가 범한 죄를 용서를 구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사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어느 누구보다 아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에스겔 36장 21-2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 …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을 때 우리 하나님은 그 더럽혀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시사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는 마음으로 그 이름에 먹칠하지 않도록 그 거룩한 이름을 지키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 시편 121편 3-8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십니다(3절).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계십니다(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시고 우리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고 계십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지켜야 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우리 마음을 지켜주시길 기도해야 합니다(잠 4:23).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고 아끼는 우리 가족 식구들과 교회 식구들의 신앙과 삶을 지켜주시길 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행함보다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행하느냐보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누구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간절한 기도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잠언 27장 15-19절 말씀 중심으로 우리는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았습니다: (1) 우리는 화목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5절). (2) 우리는 서로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7절). (3) 우리는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8절).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사람들이 되어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나타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