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나라의 시민은?

 

 

[잠언 2421-26]

 

 

얼마 전 미국 CNN 뉴스에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된 원인이 아마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문제 삼는 것으로서 오바마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공화당원들이 생각하기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예로 2010년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했다는 주장입니다. 즉, 오바마 대통령이 오바마 케어의 핵심조항을 행정명령을 통해 의도적으로 지연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중소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고 정규직 직원들을 해고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자,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월 임의로 행정명령을 발동해 근로자 50명 이상 100명 미만의 중소기업에는 해당 조항의 적용시기를 2016년으로 늦췄다고 합니다(인터넷).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이 반대한 최저임금 인상을 행정명령으로 도입했으며 오는 9월에도 행정명령을 통해 불법체류자에 대한 구제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합니다(인터넷). 그래서 지난 달 7월 30일, 미 하원은 본회의를 열어 찬성 225대 201로 오바마 대통령을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가결했습니다. 이러한 뉴스를 접할 때에 우리는 이 미국 시민으로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일 미국 시민이 아니라 한국 시민이면 지금 한국의 대통령을 생각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성경구절 중 하나는 아마 로마서 13장 1-2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현대인의 성경) “누구든지 정부 당국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력이 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권력을 거역하면 하나님이 세우신 권력을 거역하는 것이 되고 그런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만일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면 우리는 정권에 복종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모든 정권은 다 하나님께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말씀은 무조건적으로 정권에 복종하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부패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들을 제도화 하여 모든 시민들로 따르라고 명할 때 우리는 그러한 명령에는 굴복할 수 없습니다. 그 한 예로 동성의 결혼을 제도화하려는 시도를 들 수가 있습니다. 만일 동성의 결혼을 나라의 법으로 만들게 된다면 그 법에 과연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하나님의 법(말씀)에 어긋나는 나라 법인데 그 나라 법을 우리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정권에 복종하되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 안에서 나라 법을 우리는 거스르지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4장 21절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나라의 시민은 어떻게 행하는지 한 2 가지로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민은 자기의 대통령을 경외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4장 21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 성경은 하나님과 왕을 경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한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경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오늘 본문에서 잠언 기자가 말하고 있는 “왕”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이상적인 왕을 가리킵니다(잠 21:1)(박윤선). 그러므로 우리가 경외해야 하는 대통령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이상적인 대통령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상적인 대통령은 누구일까요? 여태까지 묵상한 말씀들을 뒤돌아 볼 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상적인 왕은 이렇습니다: (1) 먼저, 시편 101편 말씀 중심으로 묵상한 “이상적인 왕의 마음”은 세 가지입니다: (a) 이상적인 왕의 마음은 인자와 공의를 사모하는 마음이요, (b) 겸손한 마음, (c) 이상적인 왕의 마음은 사특한 마음(간사한 마음, 안과 밖이 다른 생활)을 멀리한다는 것입니다. (2) 그 다음에 묵상한 말씀은 시편 72편 중심으로 “이상적 왕”입니다. 2가지로 묵상했었습니다: (a) 이상적 왕은 주님의 판단력으로 판단한다는 것과 (b) 이상적 왕은 주님의 의로운 판단력으로 판단하므로 주님의 백성에게 만족을 준다는 것입니다. (3) 그 다음에 묵상한 말씀은 잠언 16장 10-15절 중심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한 3가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에 대해서 묵상했었습니다: (a)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은 하나님의 지혜로 바른 결정을 내리고, (b)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하며 (c) 그는 충신의 충고를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4) 그 다음에 묵상한 말씀은 잠언 19장 12절과 20장 2절 중심으로 “이상적인 대통령”이었습니다. 한 2가지로 묵상했었습니다: (a) 이상적인 대통령은 공의로 나라를 통치한다는 것과 (b) 이상적인 대통령은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잠언 21장 1절 말씀을 생각할 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이상적인 왕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왕으로서 하나님께 인도하심 받는 왕입니다. 그런 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인도하실 때에 그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왕입니다. (6) 이 말씀들 외에도 한군데 더 보고 싶은 성경구절은 바로 신명기 17장 19-20절입니다: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이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 중에서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있는 날이 장구하리라.” 여기서 하나님 보시기에 이상적인 왕은 한 3가지입니다: (a) 하나님의 율법(말씀)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b) 하나님의 율법의 모든 말과 규례를 지켜 행하므로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며, (c) 또한 그의 마음이 그의 형제들 위에 교만하지 않는 왕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4장 21절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한 나라의 시민으로 경외해야 할 왕은 바로 공의를 세우는 왕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4장 23-26절을 보십시오: “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악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여기서 잠언 기자는 공의를 세우는 왕은 어떻게 행하지 않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 공의를 세우는 왕이 행하지 않는 것은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던지 또는 악인에게 “네가 옳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23절).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지혜로운 왕 솔로몬이 창기 두 여자를 재판할 때 한 여인 보다 다른 여인의 낯을 더 보아 주던지 또는 가짜 어머니에게 ‘너가 진짜 어머니이니 살아있는 아기를 네가 가지고 가라’고 판결을 내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 왕을 두려워했겠습니까?(왕상 3:28) 만일 솔로몬 왕이 그렇게 잘못 재판을 했더라면 오늘 본문 잠언 24장 24절 말씀처럼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주를 받았을 것이요 또한 그들에게 미움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심리하며 올바르게 판결하였습니다. 그는 산 아이의 진짜 어머니를 가짜 어머니와 분별하여 그 진짜 어머니에게 산 아이를 주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왕상 3:26-27).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 왕이 심리하며 판결함을 듣고 솔로몬 왕을 두려워했습니다(28절). 그 이유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보았기 때문입니다(28절). 성경 신명기 1장 17절을 보면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너희는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차별 없이 듣고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않는 왕은 재판할 때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지 않습니다(잠 17:15).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15절). 성경 잠언 18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또한 성경 잠언 28장 2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 무슨 뜻입니까? 공의로운 왕은 재판할 때에 사람의 낯을 보아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악인을 두둔하지 않고 의인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공의로운 왕이 행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24장 25절을 보면 공의를 세우는 왕은 악인을 견책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악인을 과감하게 책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만일 왕이 재판할 때 낯을 보아주면 반드시 그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욥 13:10). 특히 하나님께서는 재판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던지 빼면서 불공평하게 재판하는 왕을 책망하십니다(잠 30:6). 하나님께서 그리하시는 이유는 자신이 공의로우셔서 일 뿐만 아니라 그 왕을 사랑하시기에 책망하시는 것입니다(계 3:19).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책망하실 뿐만 아니라(시 39:11) 또한 악인을 책망하십니다(유 1:9). 그러므로 공의로운 왕은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처럼 악인을 책망해야 합니다. 책망하되 과감하게 책망해야 합니다. 그리하므로 그는 공의를 나타내므로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또한 공의를 세우는 왕은 “적당한 말로 대답”을 합니다(잠 24:26). 즉, 그는 “정직한 대답”(현대인의 성경)을 합니다. 즉, 공의를 세우는 왕은 재판 석에서 정당한 판결을 내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리는 정당한 판결은 공의에 입맞춤과 같이 그것을 만족시킨다는 것입니다(박윤선). 그러므로 공의를 세우는 왕은 기쁨을 얻을 것이며 또한 좋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오늘 본문 잠언 24장 25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악인을 공정히 벌하는 통치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박윤선).

 

성경 베드로전서 2장 13-14, 1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종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그가 악행 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보낸 총독에게 하라 …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 성경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존대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을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존대해야 합니다. 이것을 오늘 본문 잠언 24장 21절 말씀의 관점으로 적용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경외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경외하고 존대해야 할 우리나라 대통령은 아무 대통령이 아닙니다. 바로 공의를 행하는 대통령입니다. 성경은 만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는 자라면 우리는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의를 행하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경외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둘째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민은 반역자들과 사귀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4장 2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경외하라고 말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21절) 반역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왕권을 빼앗는 반역자들과 합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반역자들이나 그 반역자들과 합치는 자들은 속히 재앙이 임하여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22절). 이 말씀을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그 한 예로 시리아라는 나라를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시리아 대통령은 바샤르 알아사드란 사람입니다. 미국 신문 워싱턴 포스트의 주간지 “퍼레이드”에 의하면 바샤르는 세계 최악의 독재자 순위에 12위에 선정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가 통치하는 시리아는 반 이스라엘 정책의 일환으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노골적으로 지원해, 서방 국가들에게 테러 지원국으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인터넷). 지금 시리아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내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정부군과 반정부군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의 시민들은 그 나라의 대통령인 바샤르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를 독재자로 여기고 싫어하는 시민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 그 시민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 크리스천들은 오늘 본문 잠언 24장 21절의 말씀을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까? 과연 그들은 그 대통령을 경외하고 존대해야 하는 것인가요? 아니잖습니까.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상적인 대통령도 아니요 공의를 행하는 대통령도 아닐진대 과연 그들이 그 대통령을 경외하고 존대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자기들의 대통령이 독재자요 악한 통치라라고 해서 시리아에 살고 있는 시민들 중 크리스천들이 반정부군에 합류해서 정부군과 싸워 대통령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도 되는 것일까요?

 

박윤선 박사님은 이 주제에 관하여 한 3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1) 옳지 않은 정부에 대한 신자의 신앙 양심 문제입니다. 오늘 잠언 24장 21절에서 악한 통치자, 혹은 불의한 정부에 대한 개인적 반역을 금하였으나 그런 정부에 대한 국민의 무제한 순종을 명령함은 아닙니다. 아무리 정부의 명령일지라도, 그것이 불의한 요구(예컨대 신앙을 유린하는 명령 같은 것)라면 신자로서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신자들은 국가 관련에 있어서 신본주의로 행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국민 생활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목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불의한 정치에 대한 기독신자의 태도입니다. 개인 자격으로써 군왕(비록 폭군이라도)을 폭력으로 제거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위층 공무원들이나 혹은 부속 관원들로서 군왕의 방종을 막아 국민을 보호하며, 필요하면 그들이 그런 악정의 원천을 제거시킬 책임을 가졌습니다. (3) 정부의 과오를 막기 위한 기독교회의 할 일입니다. 기독교회는 직접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있는 것은 아니니만큼 국가를 위한 책임 이행을 할 때에는 간접적으로 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 교회는 국민과 공무원들의 양심에 영향을 줌으로써 국가에 간접적 감화를 끼칠 수 있습니다. 공무원들과 국민들의 양심이 기독교 정신대로 될수록 국가는 종교와 도덕에 있어서 더욱 하나님의 법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간접적 감화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H. Meeter): (a)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에 이루어집니다. 즉, 교회가 복음을 전할 때에 인간 생활 전부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들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 말씀의 교훈에는 물론 정치 생활의 원리도 포함합니다. (b) 기독자들은, 교육 기관에서 국민 생활에 관계되는 성경의 원리들을 해명하여야 됩니다. (c) 기독교는 신문이나 모든 선전 기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일반인의 환심을 얻으며, 또 그들을 감화시키도록 힘써야 됩니다.

 

성경 구약을 읽다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반역하는 족속”(겔 12:2)라고 말씀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신 9:7, 31:27, 사 30:9, 겔 2:3, 5, 7, 8; 3:9, 12:25; 26; 24:3, 12:9). 신명기 9장 24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여 왔느니라.” 또한 모세는 죽기 전에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31:27).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 중의 왕이신 주님을 항상 거역하였습니다. 항상 거역하되 그들은 심지어 왕이신 하나님을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했습니다(삼상 8:7). 그래서 사무엘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5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무엘의 말 듣기를 거절하고 “우리도 왕이 있어야 하리니 우리도 다른 나라들 같이 되어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19-20절). 그들의 요구를 들은 사무엘은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7절). 이렇게 하나님께 반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호14:4).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을 고치시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반역을 고쳐주시고 우리를 기쁘시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께 반역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역자들과도 사귀지도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나라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오늘 본문 잠언 24장 21-26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배웠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민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시민들로서 우리들의 대통령을 경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들은 반역자들과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바라기는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