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언 2415-16).

 

 

이번 주 뉴스를 통하여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환자인 미국인 의료 선교사 켄트 브랜틀리(33살)가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병원으로 앰뷸런스를 타고 도착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앰뷸런스에서 내린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브랜틀리 의사였습니다. 저는 그가 그렇게 자기 발로 걸어서 병원 쪽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좀 놀랬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뿌듯하고 기뻤습니다. 지난 달 7월 31일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경을 헤매던 그가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작별 전화까지 했었다고 하는데 이렇게 자기 발로 걸어서 병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감사했습니다. 그가 2013년 라이베리아로 의료선교를 떠나기 석달 전 “힘든 날이 오면 저는 다시 하나님의 소명을 마음에 되새길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지난 해 7월 미국 인디애나 주 사우스 이스턴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한 말이 음성 파일로 페이스 북에 최근 공개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그는 ‘어린 아들과 딸, 아내(사진)와 함께 라이베리아로 의료선교를 떠난다’며 ‘2년 동안 그곳에 살면서 20년 동안 폭력과 파괴에 시달린 사람들을 섬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에서 사역하겠다고 결심한 이유에 대해 브랜틀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고 합니다. 교인들에게 사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디모데후서 1장 7절을 인용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인터넷).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라이베리아로 의료선교를 떠나 죽음의 바이러스라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경을 헤매던 브랜틀리 의사가 이렇게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 대학병원에 앰뷸런스를 타고 도착하여 걸어서 병원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가 다시 일어나 그가 소명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소명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계속해서 충실히 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를 계속해서 엿보며 틈만 보이면 우리를 넘어트리고 우리의 집을 헐려고 하는 자가 있습니다(잠 24:15). 그는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자요(마 16:23)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넘어지게 하는 자입니다. 어떻게 사단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까? 바로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사도 베드로처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23절). 사도 베드로는 그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을 때(21절)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절)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의 일을 생각한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향변하여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건만 사도 베드로는 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취약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에볼라 바이러스와 같은 치명적인 영적 바이러스로 우리의 취약점을 계속해서 공격하고 감염시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계속해서 유혹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사람의 일을 행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는데서 돌이켜 세상의 넓은 길을 걷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사람의 뜻을 생각케 하여 주님의 뜻을 버리고 내 뜻대로 살게 만들려고 계속해서 유혹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취약점인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 식구들을 치명적인 영적 바이러스로 감염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더 우선시하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치명적인 영적 바이러스에 우리와 우리 식구들이 감염이 되면 우리는 소명에 이끌림을 받기보다 자기 연민에 빠져 육정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보다 우리 가족 식구들을 더 먼저 생각하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희생해서라도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추구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됩니다. 이렇게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교회도 엿보아 어떻게 해서든 우리 모두를 넘어지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 여기저기서 여러 교훈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지만 저는 오늘 본문 잠언 24장 16절 말씀에만 근거해서 한 2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첫째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사단의 역사로 말미암아 넘어지되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일곱 번, 아니 무수히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넘어지므로 말미암아 실망도 되고 죄책감으로 인하여 괴로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 그러나 둘째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은 오뚝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오뚝이를 치며 넘어졌다가도 다시금 금방 일어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사탄과 악인들이 우리를 쳐서 넘어지게 한다 할지라도 다시금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오뚝이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그 원인은 오뚝이는 아래 부분이 가장 무거우므로 우연히 윗부분이 아래로 기울어지더라도 중력의 영향 때문에 가장 무거운 부분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는 속성이 있어서 결국 언제나 똑바로 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게중심이 아래에 위치해야만 안전하고, 외부의 영향에 순간적으로 휘청거릴지라도 다시 중심을 잡고 서게 된다는 점입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들로 하여금 다시 일어서게 하고 다시 중심을 잡고 서게 해주는 “무게중심”은 바로 반석이신 주님이라고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수 없이 넘어진다 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되 수 없이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넘어진 엘리야를 다시 일으켜 주신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주시사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완수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낙심한 영혼을 다시금 소성시키시므로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 능력의 오른손을 우리에게 내밀어 주시사 우리의 손을 붙잡아 다시금 일으켜 주시길 기원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제가 잊지 못하는 복음성가 중에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저는 이 찬양을 서현교회 이종미 자매를 통하여 배웠습니다. 화상으로 비록 육신의 몸은 "미라처럼" 붕대로 온 몸이 감겨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녀를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싸워 승리한 종미 자매의 간증을 들었을 때 저는 그 싸움에서 승리케 하신 주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