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 (2)

 

 

[잠언 2324-35]

 

 

우리는 지난 주 수요기도회까지 “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란 제목으로 잠언 23장 15-23절을 묵상했었습니다. 제가 그리 제목을 정한 이유는 바로 15-16절 말씀 때문입니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현대인의 성경) “내 아들아, 네가 지혜로우면 내 마음이 기쁠 것이며 네가 옳은 말을 하면 내가 정말 즐거워할 것이다”]. 이 말씀을 보면 잠언 기자는 만일 우리 자녀의 마음이 지혜롭고 우리 자녀의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옳은 말을 하면) 우리 부모의 마음이 기쁘고 정말 유쾌하고 즐거워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는 누구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자녀는 바로 마음이 지혜로운 자녀입니다. 그리고 입술도 옳은 말을 하는 자녀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는 지혜로운 부모에게 받은 진리의 교훈을 듣고 그 교훈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녀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5절을 보면 성경은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성경은 다시금 우리에게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신 것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부모님을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우리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가 있습니까? 저는 그 대답을 오늘 본문 24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우리가 우리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지혜로운 자식”이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선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의로운 삶을 살되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지혜롭게 살아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어떻게 살아드리는 것이 의인으로써 지혜롭게 살아드리는 것인가요? 26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로서 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살아드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마음을 드리며(받치며) 또한 주님의 길을 쳐다보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받쳐 그 분이 보이시는 길을 쳐다보고 걸어가야 하는데 그 주님의 길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성경은 한 두 길을 (아예) 쳐다보지도 말고 마음도 주지 말고 걸어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두 길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우리가 쳐다보지 말고 마음도 주지 말고 걸어가지 말아야 할 길은 음녀의 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7절을 보십시오: “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우리가 잠언을 지금까지 묵상해 오면서 잠언 기자가 음녀에 대해서 몇 번이고 경고하고 우리를 권면하였습니다. 그 중에 잠언 2장 16절을 보십시오: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잠언 기자는 지혜가 우리를 음녀들로부터 보호해 주며 건져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음녀들이란 말로써 사람을 호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6절). 잠언 5장 3-4절을 보면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의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나중은 쑥 같이 쓰고 두 날 가진 칼 같이 날카”롭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유혹입니까? 저와 여러분의 생명과 신앙을 앗아 갈 수 있는 무서운 유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잠언 7장 6절부터 나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지혜가 없는 한 어리석은 젊은이가 깊은 밤에 음녀의 골목으로 들어가 음녀의 집 쪽으로 가고 있는데 기생이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 젊은이를 붙잡고 그에게 입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내 침상에는 요와 애굽의 무늬 있는 이불을 폈고 몰약과 침향과 계피를 뿌렸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날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14-20절). 이 음탕한 여인은 그 젊은이를 여러 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 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그 젊은이는 곧 그녀를 따랐습니다. 성경은 그가 마치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2절). 이러한 음녀의 유혹을 어떻게 요셉처럼 뿌리치고 이길 수 있습니까? 잠언 7장 1-5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만이 말로 우리를 호리는 음녀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지혜만이 우리를 그녀들로부터 지켜주고 보호해 주며 건져줄 수 있습니다. 또한 음녀들은 정조가 없습니다. 잠언 2장 17절을 보십시오: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음녀는 자기의 결혼 파트너인 남편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맺은 결혼 언약(창 2:24)을 파괴한 자들입니다. 한 마디로, 음녀는 정조가 없습니다. 음녀는 이 남자 저 남자와 잠 자리를 같이하는 자신의 순결을 헌신짝처럼 버린 자입니다. 이러한 음녀의 집은 잠언 2장 18절에 보면 성경은 그녀는 “사망으로, 그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만일 저와 여러분이 음녀를 따라간다면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잠 2: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면 어떻게 지혜가 우리를 음녀에게로부터 보호해 주며 건져줍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음녀의 길에 참여하지 않게 만들므로 우리를 보호해주며 건져줍니다(12절).

 

음녀는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떠나 구부러진 악한 길을 걷기를 원하여 끊임없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유혹은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볼 때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스럽게 할 만하게 탐스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영의 눈으로 음녀들의 길을 보게 합니다. 그 결과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음녀의 길이 멸망의 길임을 알고 우리로 하여금 그들의 길에 참여하지 않게 할뿐만 아니라 아예 그들과 함께(동행)하지도 않게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7절에서 잠언 기자는 “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구덩이와 좁은 함정에 빠지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미 잠언 기자는 22장 14절에서 “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녀는 깊은 함정을 파 놓고 오늘 본문 잠언 23장 28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그녀는 참으로 강도 같이 매복해 있다가(23:28) 어리석은 자 중에 지혜 없는 한 사람(“젊은이”)를 보고(7:7) 그를 유혹한다는 말입니다. 유혹하되 그 음녀는 한 사람만 유혹하여 깊은 함정에 빠트리게 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합니다(23:28). 무슨 말이니까?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특히 많은 유부남들을 유혹하여 그들로 하여금 외도하게(unfaithful)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에게도 불충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까지 불충하게 만듭니다. 지금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소위 말하는 “꽃뱀”에 들어보시지 않았습니까? 성관계를 미끼로 유혹하면서 남자들에게 다가와 나중에 이를 구실 삼아 돈을 우려내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잠언 7장 21절을 보면 성경은 음녀는 “고운 말로 유혹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그녀에게 넘어가게 되면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된다(23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23절). 성경은 그녀의 집은 “스올의 길”이요 “사망의 방”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7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음녀의 길을 쳐다보지 말고 마음도 주지 말고 걸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잠언 7장 1-4절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계명을 간직하라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이것을 네 손가락에 매며 이것을 네 마음 판에 새기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내 친족이라 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계명)을 지켜 행하므로 우리 마음에 그 말씀을 간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 판에 새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결과가 무엇입니까? 잠언 7정 5절을 보십시오: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서 음녀에게, 말로 호리는 이방 여인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 성경 잠언 7장 24-25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아들들아 내 말을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현대인의 성경) “내 아들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깊게 들어라. 너희는 그런 여자에게 마음을 쏟지 말고 그 길에 미혹되지 말아라”]. 우리가 음녀의 길을 아예 쳐다보지 말고 마음도 주지 말고 걸어가지 말길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에 주의해야 하며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5:7). 그리할 때 우리는 그 길에 미혹되지 않을 것입니다. 잠언 5장 8절을 보십시오: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적 유혹이란 것은 매력을 가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누구든지 피함으로만 이기게 된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라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라 생각합니다.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던 요셉(창 39:6)을 보디발의 아내가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되(7절)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어도(10절)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동침하기를 거절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10절). 그러나 하루는 보디발의 집에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만 있게 되었을 때(11절) 그녀가 요셉의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말했을 때 요셉은 자기 옷을 그녀의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갔습니다(12절). 그러므로 요셉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는 되었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은 요셉처럼 성적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범죄하며 마음의 감옥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적 죄악의 사슬에 매여 성적 노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요셉과 달리 여인의 유혹에 넘어간 사람을 뽑으라고 하면 다윗 외에 삼손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딤나에서 블레셋 딸 중 한 여자를 보고 아내로 삼았을 뿐만 아니라(삿 14) 가사에 가서는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고(16:1) 또한 그는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 하는 여인을 사랑하므로(4절) 그녀의 꾐에 넘어가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 결국 나중엔 블레셋 사람들과 같이 죽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우리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것들을 멀리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가까이 하면서 성적 유혹을 이기려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래 전 들은 이야기는 창녀 사역을 하는 어느 목사님이 결국에는 죄를 범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후 제가 아는 어느 한 여 선교사님은 선교지에서 창녀 사역에 관심을 가지고 하신다는 말을 직접 들은 기억도 납니다. 참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엄청난 도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2절에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Flee the evil desires of youth)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고린도전서 6장 18절에서 “음행을 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음행과 정욕을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창기의 집 문에도 아예 가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음녀를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은 가까이 하되 창기의 말을 멀리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므로 음녀를 멀리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쳐다보지 말고 마음도 주지 말고 걸어가지 말아야 할 길은 술에 잠긴 자의 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30절을 보십시오: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우리가 잠언을 지금까지 묵상해 오면서 잠언 기자가 술에 대해서 몇 번이고 경고하고 우리를 권면했습니다. 그 말씀들 중에 지난번에 묵상한 잠언 23장 20-21절 중심으로 “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는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연락을 즐기는 생활을 하는 자들 또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우리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잠언 23장 21절에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현대인의 성경) “술주정꾼과 대식가는 가난하게 되고 잠자기를 좋아하면 누더기를 걸치게 된다”]. 성경은 술 취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그 이유는 술 취하는 자들은 가난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술 취하는 자들디 가난해 지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술 취하는 자들은 방탕생활을 하면서(엡5:18) 자기가 가진 소유를 낭비할 뿐만(참고: 눅 15) 아니라 게을러서 잠자기를 좋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잠 23:21). 또한 잠언 20장 1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이 말씀의 히브리어를 개역하면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싸우게 하는 것이라 …”입니다. 여기서 포도주와 독주가 우리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두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포도주와 독주는 우리를 거만케 하며 또한 싸우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엔 술이 사람을 거만하게 한다고 보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술 취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잘난 체하면서 남을 업신여기는 모습을 보신 적 있습니까? 저는 이 질문을 생각할 때 에스더 1장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이 베푼 잔치가 생각났습니다. 그가 왕위에 있은 지 제 삼년에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3절) 자그마치 180일 동안에 아하수에로 왕은 자기의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험의 혁혁함을 나타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4절). 결국 아하수에로 왕은 180일 동안이나 잔치를 베풀면서 참석한 그의 모든 지방관과 신하들, 장수와 각 지방의 귀족들과 지방관들(3절) 앞에서 자기의 영광을 자랑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왕궁 후원에서 또 7일 동안 잔치를 베풀었는데(5절) 그 때에는 잔치에 참석한 자들로 하여금 금잔으로 마시게 하였는데 어주가 한이 없이 풍부하였고 (7절) 마시는 것도 법도가 있어 사람들로 억지로 하지 않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하게 하였습니다(8절). 그러다가 제 칠일에 아하수에로 왕이 주흥이 일어나서 자기 내시 일곱 사람에게 명령하여 왕후 와스디를 자기에게 나아오게 하여 그녀의 아리따움을 뭇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려다가(10-11절) 왕후가 왕명을 따르지 아니하니까 왕의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 듯하여(12절) 결국에는 왕후를 폐했습니다. 결국 아하수에로 왕은 술잔치 베풀어 자기의 아리따운 아내까지 자랑하려다가 아내가 말 안 들으니까 진노하여 아내와 이혼한 것 아닙니까? 이렇게 사람이 술 취하게 되면 사단에게 마음을 빼앗겨(호 4:11) 자신의 교만함과 거만함을 들어내면서 자기 자신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노함도 들어냅니다(참고: 사16:6). 그러기에 술좌석에서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기까지 하는 것입니다(잠 20:1). 그래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잠언 22장 10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실제로 술좌석에서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나 싸움이 그칩니다. 잠언 20장 1절에서 포도주와 독주가 우리에게 끼치는 악영향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lead astray)는 것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되 포도주와 독주는 우리로 하여금 미련한 길로 이끕니다. 미련한 길로 이끌되 우리로 하여금 당장 분노를 나타내어(12:16) 다툼을 일으키게 할 뿐만 아니라(20:3) 우리로 하여금 죄를 심상히 여기게 만듭니다(14:9). 결국 포도주와 독주란 우리 자신의 미련함을 나타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9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왜 우리가 술 취하지 말아야 하냐면 그 이유는 술 취하는 자들에게 “재앙”, “근심”, “분쟁”, “원망”,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것입니까?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술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일단 술을 어느 정도 좋아하게 되면 그것을 끊기 어렵다는 것입니다(31-35절). 그 이유를 박윤선 박사님은 한 4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박윤선):

 

(1) 술에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술에는 뱀의 독과 같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면서 그 모양은 유혹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23장 31-32절을 보십시오: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술에 취하면 독사뱀에게 물린 것 같이 될 것이라는 말은 그만큼 술 취함의 결과가 우리에게 치명적이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아예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술에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술에 위하면 음란한 마음을 품고 또 허황해지기 때문입니다.

 

잠언 23장 33절을 보십시오: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여기서 “괴이한 것”이란 말은 창기를 가리킵니다. 무슨 말입니까? 술에 취하면 창기가 보인다는 말은 음란한 마음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부러진 말”(괴상한 소리)을 한다는 말은 취한 자가 허황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3) 술에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위험한 것을 느낄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잠언 23장 34-35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 술에 취하면 자기가 위험해 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술 취하고도 운전하여 사고를 내므로 생명을 잃던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잃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4) 술에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술에 인박혀 그것을 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23장 35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 술을 엄청 마시고 그 다음 날 술에 깨고 나서 다시금 술을 찾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술에 인박혀서가 아닙니까?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정말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선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의로운 삶을 살되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지혜롭게 살아드려야 합니다 . 우리는 오늘 본문 잠언 23장 24-35절에서 어떻게 살아드리는 것이 의인으로써 지혜롭게 살아드리는 것인지 배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마음을 받쳐서 주님의 길을 쳐다보고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의 길을 쳐다보고 걸어감에 있어서 오늘 성경 말씀은 두 길을 아예 쳐다보지도 말고 마음도 주지 말고 걸어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두 길은 음녀의 길과 술에 잠긴 자의 길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두 길을 쳐다보지 말고 오직 주님의 길에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므로 하나님 아버지를 정말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