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워하지 말라!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잠언 2317).

 

 

‘과연 나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부러워하고 있는가?’란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져 봅니다. 대형 교회 목회하고 계시는 목사님들이 부러운가 아니면 교인 숫자가 많은 교회를 부러워하고 있는가? ‘혹시 나는 어느 교회 모 목사님과 또한 그의 교회와 비교하고 있지는 않는가?’라는 질문도 던져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원인 중에 비교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누구를 혹은 무엇을 부러워하십니까? 우리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부함을 부러워할 수가 있고, 그 풍부함을 누리는 부자들을 부러워할 수가 있으며 또한 우리가 없는 것을 가진 이들과 그들의 환경을 충분히 부러워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자기는 없는데 자기 친구들이 무엇인가 있으면 충분히 부러워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있어서 참 이해하기가 쉽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은 예수님 믿는 의인은 고통을 당하는데 악인은 형통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인의 형통을 보게 될 때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충분히 의문을 품게 되며 어떻게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면 저희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형통하도록 내어버려 두시는지 안타가운 마음으로 질문을 던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성경은 분명한 대답이 있습니다. 즉,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왜 성경은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죄인들, 행악 자들의 장래가 없고 그들의 등불은 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24:20).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행악자의 득의함을 인하여 부러워하지도 말고 분도 품지 말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19절). 죄인들과 행악 자들의 결국은 멸망이기에(시 73:17-20) 우리는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잠 23:17). 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듣고 지혜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혜가 우리의 마음을 정로로 인도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19절). 그러므로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주님이 걸어가신 정로의 길을 우리는 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악인의 형통 부러워하지 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