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 (1)

 

 

[잠언 2315-23]

 

 

이번 한국의 여객선(세월호) 침몰로 인하여 사망한 학생들 중에 고 정차웅(17잘)이란 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검도 3단의 유단자로 체육학도 꿈을 키웠던 정 군은 사고 당시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 쪼기를 친구에게 벗어주는 등 다른 학생들을 구하려다가 생일을 하루 앞두고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장례식 때 최고등급 수의 가격은 400만원이 웃돌았는데 정군의 유족은 최하등급인 41만 6천 원짜리 수의를 정군의 마지막 길에 입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정군의 유족이 국민의 세금으로 아들 장례를 치르는데 어떻게 비싼 것을 쓸 수 있느냐 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장례용품 담당자에 의하면 "정 군의 유족이 장례식을 간소하게 치르자 옆 빈소의 정 군 친구 유족도 같은 장례용품을 주문하며 정 군 유족의 뜻에 동참했다"고 합니다(인터넷). 저는 처음 이 기사를 접했을 때 그 학생의 부모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그 부모님들은 아들이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주 수요기도회 때 우리가 묵상한 잠언 23장 9-14절 말씀 중 13-14절 중심으로 우리는 네 번째 교훈인 “아이를 훈계하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우리가 우리 자녀를 훈계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우리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13:24). 성경은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자녀의 삶 속에 얽힌 미련한 것을 쫓아내기 위해서(22:15), 우리 자녀에게 지혜를 주기 위해서(29:15), 우리 자녀를 죽음에서 건져(23:14) 생명 길로 행하게 하기 위해서(10:17)라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오늘 본문과 관련이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우리 자녀를 징계할 때 그들이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29:17)라는 것을 우리는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15-16절을 보면 잠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이 말씀을 우리 부모와 우리 자녀 관계에 적용해 본다면 만일 우리 자녀의 마음이 지혜롭고 우리 자녀의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옳은 말을 하면) 우리 부모의 마음이 기쁘고 정말 유쾌하고 즐거워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는 누구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자녀는 바로 마음이 지혜로운 자녀입니다. 그리고 입술도 옳은 말을 하는 자녀입니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는 지혜로운 부모에게 받은 진리의 교훈을 듣고 그 교훈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녀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요한이서 1장 4절을 보십시오: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요한삼서 1장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리를 전하는 자의 유일한 기쁨은 사람들이 그 진리를 받아 그대로 사는 데 있다”(인터넷). 이 기쁨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저는 오늘 본문 잠언 23장 15-23절 말씀 중심으로 부모의 마음을 정말 기쁘게 하는 자녀는 무슨 진리를 받아 그대로 사는지 다섯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먼저 이 진리를 받아 그 진리대로 살아가므로 우리 자녀에게 본을 보이므로 우리 자녀도 그 진리대로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 가정에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첫째 진리는,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17절을 보십시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제가 개인적으로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별로 듣기 안 좋아하는 말이 한두 개 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도 채팅이나 사람들이 리플 달 때 그 두 마디를 쓰는 것을 종종 보는데 그 두 마디는 바로 “덕분에”라는 말과 ‘부럽습니다’라는 말입니다. 물론 말할 때 ‘당신 때문에’란 말보다 ‘당신 덕분에’란 말이 듣기는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왠지 사람들이 ‘덕분에’란 말을 할 때 그냥 인사치레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 같아 저는 그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부럽습니다’라는 말을 저한테 할 때 저는 ‘왜 부러워할까, 부러워 할 필요가 없는데 …’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며 감사하며 만족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도 들곤 합니다. 언젠가 그룹 채팅을 하는데 한 지체가 다른 지체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부러워하면 지는 거예요.’

오늘 본문 잠언 23장 17절에서 성경은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진리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만일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에는 이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 노력하며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데 자꾸만 고통스러운 일만 생기는데 예수님을 믿지도 않는 자가 잘 먹고 잘 사며 물질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을 볼 때에 그 사람이 부럽지 않겠습니까? 의인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죄인은 계속해서 형통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그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고통 중에 있는 의인이 형통하는 죄인을 보고 부러워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시편 73편 아삽의 시가 기억납니다. 시편 기자 아삽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교만한 자를 질투하였습니다(3절). 여기서 악인의 형통함이란 “그들은 일평생 아무런 고통도 없이 건강하게 지내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병으로 고생하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4-5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언제나 편안한 생활을 하고 그들의 재산은 날로 늘어만” 갑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들은 교만하고 그들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릅니다(6-7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남을 조롱하며 악한 말을 하고 거만을 피우며 은근히 남을 위협합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심지어 그들은 입으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들의 악한 영향을 그대로 받는 백성이 많습니다(10절). 이 모습을 보는 의인 아삽은 악인과 달리 “종일 괴로움을 당하며 아침마다 벌을 받”고 있었습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니 아삽의 입장에서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있었을 때 충분히 그 악인을 부러워 할 만하였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그는 악인을 부러워했는가 하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고 죄를 짓지 않은 것이 허사구나”라고 말할 정도까지였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오늘 본문 잠언 23장 17절에서 성경은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 대답을 오늘 본문 18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물론 이 말씀은 왜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이지만 저는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우리가 우리 마음으로 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면 그 이유는 죄인에게는 장래가 없고 희망(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소망이 없는 죄인의 장래, 즉 악인들의 종말을 시편 기자 아삽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깨달았습니다(시 73:17). 그들의 종말은 무엇입니까? 시편 73편 18-20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시편 기자 다윗은 시편 37편 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이것이 바로 악인의 종말(최후)입니다.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할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입니다. 그들의 종말은 파멸이요 멸망이요 전멸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으로 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23:17하).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정녕히 장래와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18절). 여기서 “장래”란 말은 “종말”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자의 종말은 내세를 가리킵니다(박윤선). 즉,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내세의 소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내세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시편 73편 24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영광으로 영접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14장 32절 하반절은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잠 14:32). 바라기는 이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십시다. 그들에게는 장래와 소망이 없습니다.

 

둘째 진리는, 듣고 지혜를 얻어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19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여러분, 우리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 한 예로 오늘 본문 17절 상반절을 보면 성경은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 마음으로 하여금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까? 오늘 본문 19절 상반절을 보면 우리는 “듣고 지혜를 얻”어야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 17절과 연관해서 묵상하면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하면 우리가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얻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미련하면 우리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할 것입니다(1:7). 여기서 우리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우리는 악을 행한다는 말입니다(8:13).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코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으로 하여금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게 만들도록 내버려 둘 것입니다(23:17).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우리는 우리 마음의 죄악 된 본능대로 죄를 지면서 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의 죄악 된 본능은 무엇입니까? 성경에 여러 군데에서 우리 마음의 죄악 된 본능을 찾아 볼 수 있겠지만 한 3구절만 읽겠습니다: (1)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 15:19), (2)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 5:19-21), (3)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여기서 우리의 죄악 된 본능 중에 하나가 돈을 사랑하는 것인데 디모데전서 6장 10절을 보면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온갖 악의 뿌리가 됩니다. 이것을 가지려고 열망하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고통을 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예수님 당시 누가 돈을 사랑한 줄 아십니까?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눅 6:14). 예수님께서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듣고 비웃었습니다(14절). 이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매우 종교적인 사람이(지도자)라 할지라도 그가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자기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으면 그는 바리새인처럼 겉으로는 매우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돈을 사랑하므로 탐욕 속에서 죄를 범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지혜를 얻어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제일 먼저 부지런히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잠언 4장 10-11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들으라 내 말을 받으라 그리하면 네 생명의 해가 길리라 내가 지혜로운 길을 네게 가르쳤으며 정직한 길로 너를 인도하였은즉.”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지혜로운 길과 정직한(옳은) 길을 가르쳐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가르침을 겸손히 듣고 배우며 또한 받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혜를 얻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멀리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잠언 4장 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고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둘 때 우리 마음이 바른 마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바른 마음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 듣고 받은 말씀을 지킬 때에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바른 길로 행할 수가 있습니다.

 

셋째 진리는,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0절을 보십시오: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제가 2011년 11월 즘에 주일 예배 때 설교한 말씀 중 “사귀지 마십시오”란 제목 아래 고린도전서 5장 9-13절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 내용은 바로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하거나 모욕하거나(욕설을 일삼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나 하는 사람과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귀지 말라’는 헬라어 원의 문자적 의미는 ‘섞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성경은 음행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라 우상 숭배자나 욕설을 일삼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과 친밀하게 또는 가깝게 어울리지 말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도 바울이 가깝게 어울리지 말라고 말한 대상인 ‘음행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우상숭배자, 욕설을 일삼는 자, 술 취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는 불신자를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 지금 바울은 죄를(11절) 회개치 않고 지속적으로 범하고 있으므로 온 교회에 그 죄의 악한 영향을 끼치는 형제나 자매를 판단하고(12절) 그들과 가까이 어울리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아예 교제를 끊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그러한 교인들과 사귀지 말고 관계를 끊되 그 악한 사람을 아예 교회에서 내어 좇으라(13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영적 교제뿐만 아니라 식탁 교제까지도 끊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3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주님의 교회의 순결성을 계속해서 지켜 나아가기 위해서 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0절을 보면 잠언 기자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바로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바로 연락을 즐기는 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이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는 자들입니다. 왜 성경은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잠언 20장 1절에 기록돼 있습니다: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 왜 우리는 술을 즐겨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술은 거만하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떠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거만하게 하며 떠들게 하는 술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술을 즐겨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잠언 23장 29-30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왜 우리가 술 취하지 말아야 하냐면 그 이유는 술 취하는 자들에게 “재앙”, “근심”, “분쟁”, “원망”,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우리가 술 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마음이 구부러진 말을 할 것”(33절)이며 또한 “감각이 없”어지고 술에 인박혀서 못 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35절). 오늘 본문 잠언 23장 21절에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왜 성경은 술 취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면 그 이유는 술 취하는 자들은 가난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술 취하는 자들디 가난해 지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술 취하는 자들은 방탕생활을 하면서(엡5:18) 자기가 가진 소유를 낭비할 뿐만(참고: 눅 15) 아니라 게을러서 잠자기를 좋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잠 23:21). 그래서 성경은 ‘술 취하지 말라’고 거듭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엡 5:18, 롬 13:13, 고전 5:11, 6:10).

 

그러면 “고기를 탐하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입니까? 바로 음식을 탐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기를 탐하는 자들은 탐식하는 자들입니다. “탐식”이 무엇입니까? 탐식은 음식에 대한 무질서한 섭취로 생각하는 일을 둔하게 만들고, 이성의 통제를 약화 시키며 인간이 품위를 하락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술 취하는 것이나 고기(음식)를 탐하는 것이나 과도하게 섭취하므로 결국에는 사람을 나른하게 만들므로(drowsiness) 졸리게 만들어서 결국에는 가난하게 만듭니다(Walvoord). 그러므로 성경은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 잠언 23장 19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듣고 지혜를 얻어 우리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방탕의 길로 걷지 말고 바른 길로 걸어야 합니다.

 

넷째 진리는, 아버지에게 청종(순종)하고 어머니를 경히(업신) 여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2절을 보십시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여러분은 부모로서 여러분의 자녀를 생각할 때 기쁘고 즐거우십니까? 여러분은 언제 자녀로 인하여 기쁘고 즐거우십니까? 자녀가 여러분의 말에 순종할 때 기쁘고 즐겁지 않으십니까?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말에 불순종하면 기분이 어떠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심지어 여러분을 경히 여기면 마음이 어떠할 것 같습니까? 특히 어머님들,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의 말을 무시하고 심지어 여러분을 멸시하면 마음이 어떠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잠언 23장 15-16절을 보면 부모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하는 자녀는 마음이 지혜로운 자녀요 입술이 정직을 말(옳은 말)을 하는 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로운 자녀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습니다(19, 22절). 그 부모님의 말씀이 책망이라 할지라도 그는 겸손히 듣습니다(25:12). 그리고 그는 더욱더 지혜를 얻어 자기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23:19). 결코 그는 자기 자신을 방탕의 길로 향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20절). 그리고 지혜로운 자녀는 자기 부모님이 늙었다고 해서 그들을 업신여기지 않습니다(22절). 그러나 부모님이 늙었다고 업신여기는 자녀는 지혜가 없는 자입니다(11:12). 즉, 그는 미련한 자입니다. 그리고 지혜 없는 자녀가 부모님을 멸시하는 이유는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3:13).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히 성경 에베소서 6장 1절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미련한 자녀는 그 말씀을 무시하고 멸시하기에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습니다. 지혜 없는 미련한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만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말도 업신여겨서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23:9).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14:21).

 

우리가 이미 묵상한 성경 잠언 17장 25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므로 부모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미련한 자녀는 그의 부모에게 근심이여 고통입니다. 그는 부모님을 조롱하며 부모님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입니다(30:17). 그래서 그는 부모의 훈계와 법도를 떠나(참고: 1:8, 6:20) 부모에게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릅니다(수치를 줍니다)(19:26). 그러나 지혜로운 자녀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며 즐겁게 합니다(10:1, 15:20). 그는 부모님의 말씀을 청종합니다. 그 이유는 그는 부모님을 존경하며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명하셨습니다(엡 6:1-2).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우리에게 복이 임할 것입니다(신 28:2). 그리고 우리는 우리 부모님을 기쁘고 즐겁게 할 것입니다.

 

다섯째 진리는, 진리와 지혜와 훈계와 명철을 사고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3절을 보십시오: “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보통 사업하는 사람의 심리는 물건을 싸게 사서 더 비싸게 파는 것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사업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물건을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두 가지 심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하나는, 웬만하며 돈을 들내고 물건을 사려는 것(값싸게 물건을 사려는 것)과 또 하나는, 진정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어떠한 투자를 해서라고 구하려는 심리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23절에서 성경은 진리와 지혜와 훈계와 명철을 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그리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는 진리와 지혜와 훈계와 명철의 값어치가 그 만큼 귀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4장 7절을 보십시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지고 명철을 얻을지니라.” 무슨 뜻입니까? 지혜가 제일이니 어떠한(모든) 값을 치러서라도 지혜를 얻으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에 적용한다면 왜 성경은 진리와 지혜와 훈계와 명철을 살되 팔지 말라고 했는가 하면 진리와 지혜와 훈계와 명철이 제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진리를 우리가 사고 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는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선물로 값없이 주셨습니다. 이사야 55장 1절을 보십시오: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성경은 “돈 없는 자도 오라 .. 돈 없이, 값없이” 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돈을 내지 않고라도 진리를 우리 소유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실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 값을 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진리를 거저 받은 것입니다(박윤선). 이렇게 거저 받은 진리를 우리는 값지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잠언 말씀처럼 우리는 지혜를 제일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그 진리와 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깨닫고 지혜를 더욱더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참고: 약 1:5).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 진리의 말씀을 듣고 더욱더 순종하여 지혜를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정말 기쁘게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지혜로운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잠23:15-16).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로운 자녀들은 하나님의 아버지께 받는 다섯 가지 진리의 교훈을 듣고 그 교훈대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그 다섯 가지 진리란 (1)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입니다(17절), (2) 듣고 지혜를 얻어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하라는 것입니다(19절), (3) 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 더불어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20절), (4) 아버지에게 청종하고 어머니를 경히(업신)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22절) 그리고 (5) 진리와 지혜와 훈계와 명철을 사고팔지 말라는 것입니다(23절). 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정말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