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가지 교훈
[잠언 23장 9-14절]
여러분 생각에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 신앙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근거를 디모데전서 6장 5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신앙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다툼이 그칠 날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실제로 지금 교회 안에서 다툼이 그칠 날이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신앙을 자기 개개인의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왜 신앙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을까?’입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의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5절). 그 결과 그들의 마음은 교만하여 변론과 언쟁(논쟁)을 좋아하며 투기와 분쟁(시기와 다툼)과 비방(모독하는 말)과 악한 생각(좋지 못한 의심)을 합니다(4절). 그러면 왜 그들의 마음이 부패해지고 진리를 상실했을까요? 그 원인은 그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3절).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부지런히 배워서 그 교훈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잠언 23장 9-14절 말씀 중심으로 잠언 기자가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교훈 4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이 4가지 교훈을 겸손히 잘 받아서 잘 지켜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 교훈은,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9절을 보십시오: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우리가 잠언을 쭉 묵상해 오면서 “미련한 자”에 대해서 많은 교훈을 받았습니다. 한 몇 가지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미련한 자는 조심 없이 말을 합니다(10:8). 특히 그는 분노 가운데 과격한 말을 함부로 하므로(15:1)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18:8). 그러면서도 미련한 자는 분노 가운데 자기 입으로 쏟아낸 말로 상대방의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분노하는 순간에는 자기만 생각하고 상대방이 상처 입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자의 입은 다툼을 일으킵니다(18:6). 그리고 그의 입은 매를 스스로 자청합니다. 즉, 미련한 자의 입은 자기 자신을 망하게 합니다(6-7절). 특히 미련한 자는 거짓말을 합니다(19:5). 미련한 사람은 지식이 없는 열심으로 성급하고 경솔하게 행합니다(2절). 그리고 미련한 사람은 일을 저질러 놓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3절). 미련한 자는 불의의 재물을 추구하며(10:2)또한 게으릅니다(4절). 미련한 자는 자기의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고 계속해서 미련하게 행합니다(14:24). 그 결과 미련한 자는 마음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10절). 또한 미련한 자는 닫힌 마음(closed mind)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입은 열려서(open mouth) 자기의 의사만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18:2).
오늘 본문 잠언 23장 9절에서 잠언 기자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미련한 자는 우리의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히브리어로 “미련한 자”란 말과 “어리석은 자”란 말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어리석은 자”란 말은 그 마음이 개방되어 어떤 교훈이든지 따라갈 위험성을 지닌 유치한 자를 가리키는 반면에 “미련한 자”란 말은 어둡고 악한 생각으로 강퍅하여지고 또 교만하여진 자를 뜻한다고 말했습니다(박윤선). 그래서 죄를 심상히 여기는 미련한 자는(14:9) 어느 누구의 책망도 듣기를 싫어합니다(1:25). 여러분, 죄로 마음이 강퍅하여진 교만한 자의 귀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당신이 지혜로운 말을 한다 하여도 그는 당신의 말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말을 업신여길 것입니다. 그가 당신의 말을 업신여기는 이유는 그의 마음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교만한 마음에서 당신을 낮추어(우습게) 볼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련한 자는 지혜를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장 22절을 보십시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그러므로 성경 잠언 9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우리는 미련하고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를 미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교훈은,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10절을 보십시오: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여기서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가 이미 잠언 22장 28절에서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는 말씀을 묵상했었습니다. 신명기 19장 14절을 보면 성경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조상(선조)이 세운 엣 지계석, 즉 조상이 정한 우리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말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남의 소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박윤선). 그 이유는 남의 소유를 침해하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신 27:17). 박윤선 박사님은 이 말씀을 좀 더 넓게 해석하여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왜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국가들의 영토를 분배하셨기 때문입니다(32:8, 17:26).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영토를 침략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남의 소유를 존중히 함을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소유를 존중히 하되 특히 오늘 본문 잠언 23장 10절 하반절을 보면 성경은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고아들의 소유를 존중하여 그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로서(시 68:5) 고아들을 사랑하시사 그들의 지계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뿐만 아니라 과부의 지계도 정하셨습니다(잠 15:25).
그러나 구약 성경을 보다보면 특히 이사야 선지자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 중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고아들을 사랑하지 않고 괴롭힌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하면 이사야 1장 23절이나 10장 2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네 고관들은 패역하여 도둑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예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지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하지 아니하는도다”(1:23);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10:2).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뇌물을 사랑하는 재판장이 고아를 신원하지도 아니할 뿐만 아니라 불공평하게 판결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또한 고아의 권리를 박탈할 뿐만 아니라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고아의 밭이 얼마나 된다고 그것까지 약탈합니까? 시편 94편 6절을 보면 성경은 심지어 과부와 고아들을 죽이기까지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오늘 본문 잠언 23장 11절 말씀입니다: “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여기서 “구속자”란 영어로 “Defender”(방어해주는 자)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즉, 구속자란 자기 스스로 방어할 수 없는 사람의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책임이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Walvoord). 그러면 여기서 잠언 기자가 말하고 있는 “구속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바로 고아들의 구속자이십니다. 시편 68편 5절을 보면 성경은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고아들을 위하여 정의를 행하십니다(신 10:18). 외로운 고아들이 주님을 의지할 때에 주님께서는 고아들을 도우십니다(시 10:14). 그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거나(렘 7:6, 22:3) 해하지 말고 (출 22:22, 슥 7:10) 오히려 그들을 도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신 14:29, 24:19-21, 26:12).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 보시기에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입니다(약 1:27).
셋째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12절을 보십시오: “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여기서 “훈계”나 “지식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지금 잠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착심하며 또한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착심 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마음을 붙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였기에 그 말씀을 평생에 가까이 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그들은 성경책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습니다(신 17:19). 그리고 그들은 그 성경 말씀의 모든 말과 계명을 지켜 행하는데 헌신합니다(19절).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그들의 마음이 그의 형제 위에 교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합니다(20절). 이렇게 우리는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에 붙여서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되 우리는 순종하려는 자세로 그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 이유를 시편 116편 1-2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계시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특히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그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것을 볼 때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므로 우리 또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떻게 합니까?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십시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로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 교훈은, 아이를 훈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13절을 보십시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 오늘 본문 잠언 23장 13절에서 성경은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요즘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녀들을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요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사랑한답시고 불순종하는 자녀를 징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부모가 우리 자녀를 사랑하는 것일까요? 잠언 13장 24절을 보십시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성경은 진정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성실하게 자식을 징계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징계는 매를 드는 것을 말합니다. 왜 성경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불순종하는 자녀를 매나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훈계(징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잠언 22장 15절을 보십시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우리가 우리 자녀를 징계해야 하는 이유는 자녀의 삶 속에 얽힌 미련한 것을 멀리 쫓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언 29장 15절을 보십시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행하게 버려 둔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우리가 우리 자녀를 징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 자녀에게 지혜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잠언 29장 17절을 보십시오: “네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우리가 우리 자녀를 징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할 때 그들이 우리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3장 14절에서는 우리가 우리 자녀를 징계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 우리가 부모로서 우리 자녀들을 사랑기에 그를 징계해야 하는 이유는 징계해서라도 우리 자녀를 죽음에서 건지기 위해서입니다(Walvoord). 또한 우리 자녀를 생명 길로 행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10:17).
성경 히브리서 12장 6-8절을 보면 하나님 아버지의 징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아들로 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불순종하면서 죄를 회개하지 않을 때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징계하시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10절). 여기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서란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0절).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징계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11절).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5절).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 중심으로 4가지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4가지 교훈이란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라는 것,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그리고 아이를 훈계하라는 것입니다. 이 교훈대로 실천에 옮기는데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