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잠언 22장 17-29절]
얼마 전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을 집으로 모셔다 드린 후 저는 그 다음 날 월요일 함께 예배를 드린 후 Tuscon 공항으로 나왔습니다. 나올 때 거기 계신 분들에게 폐 끼치기가 싫어서 아내에게 부탁하여 예약한 shuttle bus를 타고 나왔습니다. 말이 shuttle bus이지 조그마한 차를 몰고 한 70대 넘으신 수염이 긴 아저씨가 와서 저를 공항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한 1시 15분 정도 운전 거리를 그 분하고 대화하면서 왔는데 유아 세례로 받았다는 분이 성경에 대해서 자꾸만 이상한 얘기를 하기에 쭉 들어보았더니 그 분의 결론은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이 여러 번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이 자기가 믿는 것은 “I AM”이라고 하면서 자기는 심지어 최면 상태와 같은 무아지경에서 화성도 몇 초 안에 갔다 올 수 있지만 매우 위험하다는 식으로 말하기까지 하여습니다. 제가 하도 어이가 없었지만 계속해서 들으면서 성경에 근거해서 이런 저런 질문도 해 보다가 결론적으로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을 말했습니다: Jesus sai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제가 이 경험을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아내 말로는 지금 법적으로 연방 판사들은 더 이상 보이 스카우트에 연계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아마 그 이유는 동성애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제 아내 말대로 앞으로는 판사들이 교회에도 연계될 수 없을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이 급진적으로 이상하게 변질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저는 생각나는 말씀은 누가복음 16장 8절입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기 때문이다.” 여러분, 우리가 이 예수님의 말씀의 현실을 이 세상 살아가면서 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더욱더 지혜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의 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구하되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약 1:5) 오직 믿음으로(6절)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17절을 보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란 제목 아래 한 3가지로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들어야 할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은 지혜 있는 자가 가르치는 것으로서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sayings of counsel and knowledge)이요 또한 “진리의 확실한 말씀”(true and reliable words)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20-21절을 보십시오: “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 성경은 우리가 들어야 할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은 믿을 만한 진리의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는 충고(counsel, advice)의 말씀입니다(Swanson). 그러면 왜 우리는 이 지혜 있는 자의 진리의 충고를 들어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화답하게 하려 함입니다(21절). 여러분, 누군가가 우리에게 우리 신앙에 관하여 질문을 할 때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저와 여러분에게 와서 우리 안에 있는 천국에 대한 소망에 관하여 물어볼 때 우리는 성경 말씀으로 대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16절을 보십시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이 베드로전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나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이 우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과연 저와 여러분은 그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우리는 성경 말씀을 읽고, 듣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누구라도 우리의 신앙에 관하여 질문을 할 때 대답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합니다. 준비하되 우리는 오늘 본문 잠언 2장 20-2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믿을 만한 진리의 말씀이요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는 충고의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믿을 만한 진리의 확실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한 5가지로 오늘 본문 잠언 22장 22-29절에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약하고 곤고한 자를 탈취하지 말며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22절을 보십시오: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우리가 지난 번 묵상한바 지혜로운 부자는 궁핍한 사람들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19:17) 그들을 구제한다(28:27)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부자는 가난한 자들을 주관함에 있어서(22:7) 자기의 교만함을 드러내며 자신을 자랑하는 가운데(대하 25:19) 그들에게 완악한 말로 무례히 행하며(시 31:18) 조롱하며(119:51) 심지어 압박(압제)한다(10:2)고 배웠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22절에서 지혜 있는 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교훈은 약한 자를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그는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고 말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구걸하는 가난한 자들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성문에 앉아서 구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성문이란 민사상의 문제나 법적 사안을 다루는 곳이었는데(참고: 31:23) 그곳에서 곤고한 자들이 공의와 긍휼을 간절히 구하기 때문입니다(MacArthur). 그런데 그 성문 앞에서 악한 사람들(예를 들어 악한 부자들은) 그 가난하고 곤고한 사람들을 압제하며 그들의 것을 탈취했습니다. 그래서 지혜 있는 자는 오늘 본문 잠언 22장 22절에서 그리하지 말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성경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4절을 보면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는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도왔습니다(행 20:35). 여러분, 우리는 힘이 없고 연약한 자들을 도와줘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그들을 압제하며 그들의 것을 탈취하면 아니 됩니다.
(2)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24절을 보십시오: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우리가 이미 분노하는 것에 대하여 잠언을 묵상해 오면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받은 교훈 중 몇 가지는 이렇습니다: “미련한 자는 당장 분노를 나타”낸다(12:16),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한다(14:17),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킨다(15:18),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19:11)요 “크게 명철”한 것이다(14:29), “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다(19:19), 등등. 오늘 본문 잠언 22장 24절에서도 지혜 있는 자는 우리에게 “노를 품는 자” 또는 “울분한 자”와 사귀지 말며 동행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잠언 22장 25절을 보십시오: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 이니라.” 그 이유는 만일 우리가 노를 품는 자와 울분한 자와 사귀고 함께 동행을 하면 우리도 그의 행위를 본받으므로 결국에는 올무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잠언 22장 5절과 14절에서 배웠듯이 패역한 자의 길이나 음녀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 즉 깊은 함정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길을 멀리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 말은 우리에게 본이 되지 않는 노를 품는 자, 울분 하는 자를 가까이 하지 말고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노를 품는 자, 울분한 자와 사귀어 동행하다 보면 우리 또한 다툼을 일으키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29:22).
(3) 남의 빛에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26절을 보십시오: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이미 우리는 잠언 6장 1-5절에서 이웃을 위하여 보증이나 담보를 서는 것에 대하여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교훈의 요점은 만일 우리가 우리 이웃을 위하여 담보 또는 보증하였다가(1절) 우리가 그 이웃의 손에 빠졌을(2-3절), 즉 우리가 그 이웃의 채무 이행 책임을 떠맡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Deliver yourself)는 것입니다(5절). 여기서 솔로몬 왕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인데 그 어리석은 행동이란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빚을 진 상태를 알면서도 채무 불이행(defaults)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우리 자신 스스로 그 빚을 갚는 책임을 약속하는 것, 즉 보증을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 없는 자가 그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7:18).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경제적 실력 없이 남의 빚에 보증이 된다는 것도 그 빚진 자의 마음에 헛된 위로를 주는 것뿐이며, 또한 자기 자신에게도 파산을 가져오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 있는 자가 오늘 본문 잠언 22장 26절의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남의 빛에 보증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4) 선조가 세운 옛 지계 석을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28절을 보십시오: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성경 신명기 19장 14절을 보면 비슷한 말씀이 나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여기서 조상(선조)이 세운 엣 지계 석, 즉 조상이 정한 우리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는 말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남의 소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박윤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명기 27장 17절을 보십시오: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그 이유는 남의 소유를 침해하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오늘 본문 잠언 22장 28절 말씀을 좀 더 넓게 해석하여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습니다(박윤선). 즉, 하나님께서 국가들의 영토를 분배하였은즉(신 17:26, 32:8)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의 영토를 침략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남의 소유를 존중히 함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박윤선). 이 원칙을 생각할 때 지혜 있는 자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교훈은 우리는 우리 마음의 경계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과 더불어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5) 능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29절을 보십시오: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능숙한 사람”이란 부지런하고 숙련된(diligent and skilled)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사람은 신속히 일 처리를 잘 하여서 심지어 왕 앞에서 그를 섬기지 결코 천한 자를 섬기지 않는다고 지혜 있는 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능숙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일에 능숙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주님의 일을 신속히 잘 처리하는 능숙한 사람들로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어떻게 들어야 합니까?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1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 제가 담임 목사로 승리장로교회를 섬기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주일 오후 성경공부 시간에 제이 아담스 교수님의 “설교는 이렇게 들어야 합니다”라는 책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 때 그 책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한 이유는 목사님들이 설교를 준비하듯이 성도님들은 설교 들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설교 들을 준비 중 하나는 바로 성도님들의 귀를 훈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책 중심으로 교제를 만들어서 성경공부를 인도했었던 것입니다. 특히 제가 우리들의 귀를 훈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디모데후서 4장 3-4절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제 개인적으로 이미 이러한 “때”가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어떠한 때입니까? 바로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때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간지러운 자기 귀를 긁어주는 허탄한 이야기들과 같은 거짓말에 귀를 기울이는 때가 이미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 랬기에 그 때 아담스 교수님의 “설교는 이렇게 들어야 합니다”란 책을 제가 먼저 읽고 성경공부 교제로 만들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성경 공부한 것입니다. 다시금 그 책에서 도전 받은 점을 뒤돌아 볼 때 이렇게 제 개인 홈페이지 올린 글이 있어 여러분과 나눕니다: “간절한 기대감이다. 태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성경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행17:11)라고 말한다. 기대감이 있어야 잘 들리게 된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는 한가지에만 신경을 쓰라. ‘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말씀은 무엇인가?’ 어린아이다움이 있어야 한다. 순수한 마음, 열린 마음이 있어야 들리게 된다. 성경을 살필 때에도 진리를 발견하려는 간절함 때문에 성경을 살펴야 한다. 편견 가지고 가면 아무 것도 못 얻는다. 흠이 있나 없나 하는 꼬투리 잡는 듣기는 병든 귀이다. 히브리서 5장 11절을 보면,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의 듣는 것이 둔하므로 해석하기 어려우니라’고 말씀한다. 듣는 것이 둔한 귀가 있다는 말이다. 설교 듣기는 ‘트집 잡기’가 아니라 ‘진리 찾기’이다.” 혹시 저와 여러분은 병든 귀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흠이 있나 없나 하는 꼬투리 잡고자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여러분 생각에도 듣는 것이 둔한 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얼마 전 대학교 때 함께 룸메이트 했던 형제들과 그들의 가족 식구들과 함께 만나 식사하고 기도시간을 가졌었는데 그 때 대화를 하면서 한 형제가 자기 초등학생 아들에 대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아마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부모를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지 그 형제가 말하기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칠 때에 그 형제의 아들이 아마 듣지를 않고 책만 읽는다고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았나 봅니다. 그런데 그 형제가 하는 말이 왜 자기 아들이 선생님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책을 읽는지 그 이유가 저에게 참 흥미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그 아이가 귀로 잘 배우는 청강생이 아니기 때문(not a good auditory learner)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그 형제가 하는 말이 자기도 귀로 잘 배우는 청강생이 아니다 라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형제에게 그럼 목사님의 설교를 어떻게 듣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볼 때 그 형제가 귀로 잘 배우는 청강생이 아닐지라도 보는 것으로 잘 배우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때 그 형제하고 대화한 후 생각이 든 것은 귀로 잘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교를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물론 성경공부에게도 적용되는 질문이지만 적어도 성경공부 시간에는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방법도 시도해 볼 수가 있고 또한 성경공부에 관한 자료들을 보여주므로 성공공부를 인도해 볼 수가 있겠지만 설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스크린에다가 성경구절을 보여주던지 또한 설교 요약, 심지어 어떤 분들은 설교에 관한 동영상도 보여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1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귀를 기울여”라는 말은 원어 히브리어의 의미에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귀를 기울여 들으라[listen obediently(Harris)]는 뜻이 내포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실 때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로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 때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세로 듣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레미야 17장 2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그 목을 곧게 하여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해 봐야할 것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는 자세로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느냐 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우리 마음에 순종하려는 자세가 없다면 우리는 분명히 우리는 교만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목을 곧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돌리고 세상에서 불순종하면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 때에 지혜 있는 자가 사랑으로 책망을 해도 듣지도 않을 것입니다. 성경 잠언 4장 20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또한 잠언 5장 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내 지혜에 주의하며 내 명철에 네 귀를 기울여서.” 여러분,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참 지혜가 되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씀(지혜)에 주의하여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둬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1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apply your heart to what I teach). 지혜 있는 자가 가르쳐 주는 지식을 우리가 귀 기울여 듣고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 마음을 그 말씀에 전념해야 합니다. 여기서 지혜 있는 자의 말씀에 전념해야 한다는 말은 우리는 우리 마음을 그 말씀에 두데 헌신의 자세로 둬서 그 말씀에 몰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해야 합니까? 어떻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 정신을 다 기울여 열중해야 합니까? 저는 그 대답을 잠언 24장 32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I applied my heart to what I observed and learned a lesson from what I saw).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한다는 말은 한 3가지로 요약을 할 수 있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관찰해야 합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춰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3) 우리는 그 말씀을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통하여 받은 교훈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교훈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야 그 말씀이 우리 심비에 적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시 119:56).
그러면 성경은 왜 우리가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한 2가지로 이유입니다:
(1)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 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보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Keeping His words in our hearts).
오늘 본문 잠언 22장 18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너는 이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자주 인용하는 것이 좋다(현대인의 성경)](for it is pleasing when you keep them in your heart and have all of them ready on your lips).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 정신을 다 기우려 열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할 때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보존(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간직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인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용하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인용하는 것이 좋다(아름답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8절). 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잘 간직하여 그 말씀을 자주 인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듣고 배우고 외우고 아는 말씀을 자주 인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보존해야 합니까? 왜 그것이 좋은 것입니까? 전도서 7장 12절을 보십시오: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돈보다 지식(지혜)이 더 중요한 것은 그 지혜가 우리의 생명을 보존할 것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보전(간직)해야 합니다.
(2) 그 이유는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Trusting the Lord in our hearts).
오늘 본문 잠언 22장 19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So that your trust may be in the LORD, I teach you today, even you)[내가 오늘 이것을 너에게 가르치는 것은 네가 여호와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온 정신을 다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에 열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할 때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서 더욱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고 그 말씀에 우리 마음에 두지 않았을 때에는 우리가 하나님보다 사람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배우고 묵상하며 몰두하면 할수록 우리는 시편 118편 8절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그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하여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면 둘수록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보호를 받습니다(32:10).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께 힘을 얻고 구원을 얻습니다(사 30:1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고 그 말씀에 몰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시편 119편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께 죄를 범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우리는 주님께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둬야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들어야 할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은 믿을 만한 진리의 말씀으로서 우리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는 충고의 말씀입니다. 그 지혜와 지식을 주는 충고의 말씀은 약하고 곤고한 자를 탈취하지 말며 압제하지 말라는 것,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라는 것, 남의 빛에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 선조가 세운 옛 지계 석을 옮기지 말라는 것, 그리고 능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혜 있는 자의 진리의 충고를 들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화답하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귀를 기울여 듣데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 마음을 그 말씀에 전념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을 그 말씀에 두데 헌신의 자세로 둬서 그 말씀에 몰두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