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
[잠언 21장 5-8절]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들 중에 오스왈드 챔버스의 “죄의 철학”(The Philosophy of Sin)이란 책이 있습니다. 제가 그 책을 산 이유는 물론 책 제목도 주목을 끌었지만 그 보다 그 책을 쓴 저자가 오스왈드 챔버스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름 아닌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면서 기독교 고전 중에 고전이 된 “주님의 나의 최고봉”이란 책의 저자입니다. 그는 모든 죄의 공통적인 속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죄의 공통적인 속성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 그분이 정하신 목표가 아닌 자기가 세운 이기적인 목표를 이루려는 욕구는, 세상의 사조(한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의 흐름) 및 인류의 근본적인 죄의 공통적인 속성이다”(챔버스).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이 시대의 일반적인 사상의 흐름 및 인류의 근본적인 죄의 공통적인 속성이 하나님의 목표가 아닌 자기기 세운 이기적인 목표를 이루려는 욕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분명하고 확실한 사단의 역사 중 하나는 바로 ‘바꾸는 것’(exchange)입니다. 사단은 무엇을 바꿉니까? 하나님의 목표를 우리 사람들의 이기적인 목표로 바꿉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사단의 역사를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하면 성경 로마서 1장 23, 25, 26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23절). 사단은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으로 바꿉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25절). 사단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꿉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26절). 사단은 남녀의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게 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우리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잠언 21장 5-8절 말씀 중심으로 한 4가지 죄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1장 5절을 보십시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여러분은 조급한 자이십니까? 혹시 여러분은 조급함이 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언젠가 인터넷 페이스 북으로 알게 된 한 지체하고 “조급함”에 대해서 대화를 하게 된 적이 있었는데 제가 그 지체에게 디모데후서 3장 4절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그랬더니 그 말씀을 보고 그 지체가 자기는 여태껏 조급함이 죄인 줄 몰랐다고 말하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조급한 것이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 잠언 21장 5절에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조급하면 한 가지 일을 꾸준히 계속해서 못하기에 직장이나 사업함에 있어서도 형통할 수 없습니다(박윤선). 성경은 형통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 중 하나는 조급한 사람은 부지런히 일을 하기보다 자기의 명철을 의지하여 어떻게 하면 짧은 기간 안에 많은 소득을 얻을 수 있을까하여 조급하게 일을 하다보면 오히려 일을 그릇 칠 때가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19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여러분, 왜 성경은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간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생각엔 어쩌면 그 이유는 발이 급한 사람은 지식 없는 열정(“소원”)으로 조급하게 행동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사업함에 있어서 조급한 사람은 지식 없는 열정으로 조급하게 행동하기에 돈을 벌어 풍부해 지기보다 오히려 사업을 망하게 하여 궁핍해 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28장 2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무슨 뜻입니까?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 잠언 28장 22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재물을 얻기에만 급한 사람은 빈궁해 진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마음이 조급해 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마음이 조급해지면 우리는 속도위반을 할 위험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마음이 조급해 지면 하나님의 속도를 추월하여 우리 속도대로 일을 추진하므로 하나님의 일을 그르칠 위험이 많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하는 그리스도인 사업가가 마음이 조급하며 속히 부하고자 하면 그는 분명히 부지런히 계획을 세워 충성되이 일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짧은 시간에 더 많이 돈을 벌 수 있을까하여 꾀를 부리거나 요령을 필 것입니다. 그 때 참으로 심각하게 생각되는 문제는 그렇게 꾀를 부리고 요령을 부리면서 사업을 하는데도 처음엔 내 계획대로 사업이 잘 되어가는 것 같아 보이는 것입니다. 만일 사업이 잘 안되어 가면 우리는 그래도 한번쯤 우리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아, 내가 꾀를 부리고 요령을 펴서 사업이 안 되는 거구나’라고 한번쯤은 생각해 볼 텐데 사업이 잘 되어 가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해져서 역시 사업은 이렇게 꾀도 부리고 요령도 펴야 한다고 자기의 행동의 합리와 시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조급해 지는 것을 경계하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세는 바로 부지런함(잠 21:5)과 충성됨 또는 성실함(28:28)입니다. 그 이유는 조급함이 아니라 부지런함이 풍부함에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21:5). 그리고 “충성된 자는 복이 많”기 때문입니다(28:20).
둘째로, 우리는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1장 6절을 보십시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여러분 생각엔 거짓말 하지 않고 정직하게 사업을 하면 재물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분명히 오늘 본문 잠언 21장 6절은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요 “불려 다니는 안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거짓말로 재물을 모으려는 것은 결국 불려 다니는 안개처럼 있다가 금방 없어질 것이며 또한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덫이라는 의미입니다. 비록 처음에는 거짓말을 하면서 사업을 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결국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을 순식간의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23장 4-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상상이 되십니까? 스스로 재물이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는 장면이 상상이 되십니까? 얼마 전 인터넷 조선일보를 보니까 “김민종 차압, ‘투자-사기, 사인했는데 25년간 모은 돈 날려 …’ 고백”이란 제목의 기사가 있어 잠깐 읽어 보았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더군요: “돈이라는 게 있다가도 없더라. 벌어놓은 게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다 사라졌다”(인터넷). 성경 잠언 27장 2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저 재물은 영원히 있지 못하나니 면류관이 어찌 대대에 있으랴.” 재물은 영원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거짓말을 해서 모든 재물은 영원히 있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순식간의 없어질 것입니다. 또한 거짓말을 해서 번 재물은 결국 그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1:6).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거짓은 마귀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요 8:44)(박윤선). 다시 말하면, 성경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마귀에게서 난 자는 그의 아비인 마귀의 욕심대로 행하되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업하는 자가 재물을 모으고자 하는 욕심 속에서 방법을 가지지 않고 거짓말로 상대방을 속이면서까지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결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방법이 아니라 그것은 마귀의 방법이기에 결국에는 자신에게 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마귀는 인간들에게 화를 주려고만 위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여러분,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다(잠 10:2). 또한 성경은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3:11). 무슨 뜻입니까? 비정직하게 모은 재물이나 불의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은 무익하며 또한 줄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직하게 일을 하여 의로운 방법으로 사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도 주시사 재물을 얻게 하실 것입니다(신 8:18).
셋째로, 우리는 악인의 강포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1장 7절을 보십시오: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정의를 행하기 싫어함이니라.” 여러분, 어느 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악인의 강포를 본받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시편 73편을 보면 시편 기자 아삽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처음부터 악인의 강포를 본받으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경제 상황이 매우 안 좋아 질 때 우리는 악인의 형통을 충분히 부러워하여 질시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특히 사업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의 재정 상활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데 아니라 자기 주위에 불신자 사업가들은 부정직하게 그리고 불의한 방법으로 돈을 점점 더 많이 버는 모습을 본다면 그 부러워하는 마음과 질시하는 마음이 더 발전되어 결국에는 남의 돈을 불의한 방법으로 갈취하는 강도질까지도 가능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1장 7절 말씀을 원어 히브리어를 개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악인들의 강도 행위는 자기 자신들을 멸망시키나니, 그 이유는 그들이 공의 행하기를 거절하기 때문이니라”(박윤선).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생각나는 성경 말씀은 마태복음 21장 13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누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까? 바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입니다(21:12). 이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장사치들의 소굴, 즉 사람들을 갈취하는 사기꾼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들은 다름 아닌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재정적인 수입을 독식했습니다. 그 한 예로 성전을 운영하던 사두개파들은 짐승 시장의 판권을 자기 파 사람들(사두개판 사람들)에게 내준 후 그들을 통하여 성전 중심으로 엄청난 재물을 끌어 모았습니다(인터넷).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12절). 그리고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13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성전이 기도의 집이여 함에도 불구하고 혹시 예수님 당시의 성전처럼 강도의 소굴로 변질돼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우리 교회 지도자들이 교회를 통하여 엄청난 재물을 끌어 모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여러분, 우리는 부하려 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디모데전서 6장 9절을 보십시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우리가 부하려 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부하려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기 때문입니다(약 1:15). 오히려 우리는 정의 행하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주님 보시기에 옳은 일행하는 것을 즐거워해야 한다는 말입니다(잠 21:8).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칭함을 받은 의인들로서 정의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15절).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 시대처럼 악인들이 우리 의인들을 에워 쌓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지고 있습니다(합 1:4). 그러므로 지금은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4절).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더 정의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녀야 합니다(잠 8:20).
넷째로, 우리는 구부러진 길로 걷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1장 8절을 보십시오: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저는 개인적으로 구부러진 길 하면 생각나는 길은 세계에서 가장 꼬불꼬불한 길인 샌프란시스코 롬버드 스트리트(Lombard Street)가 생각납니다. 이 길은 400 meter 정도의 길에 5 meter 간격으로 8번의 헤어핀 코스(hairpin course)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저도 그 길을 한번 천천히 운전해서 내려온 기억이 납니다. 차 속도를 낼 수 없는 것이 너무나 길이 꼬불꼬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샌프란시스코에는 이 꼬불꼬불한 길 외에도 일직선으로 내려가는 언덕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 경사가 져서 운전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이렇게 두 종류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직선으로 된 길이 있는가 하면 또한 우리의 인생길에는 꼬불꼬불한 구부러진 길도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길을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한다면 우리는 올바른 길(정도)과 삐뚤어진 길, 즉 구부러진 길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 올바른 길, 즉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단은 우리가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를 유혹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구부러진 길을 걷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그리하기 위해서 먼저 하는 것은 우리 마음을 구부러지게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조차도 구부러진 마음으로 구부러진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어그러진 세상’입니다(빌 2:15). 하나님께서 명하신 바르고 곧은길로 가지 않고 구부러진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구부러진 길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절대 진리를 부인(거부)하고 거짓을 진리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음도 삐뚤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삐뚤어져 있기에 말과 행동 다 삐뚤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1장 8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원어 히브리어로 개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죄를 걸머진 사람의 행위는 구부러지고 또 이상스러우나 깨끗한 자의 행위는 솔직하니라”(박윤선). 물론 여기서 “죄를 걸머진 사람”이란 거듭나지 않는 자연 인간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거듭나지 않은 자연 인간은 어두움에 속하였기 때문에 거짓됩니다(렘 17:9). 그러므로 그는 자기 행위를 감추려는 노력을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구부러진” 행동입니다(박윤선). 이렇게 구부러진 길로 걸어가면서 구부러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성경 잠언에 나오는데 그 사람은 바로 “음녀”입니다. 잠언 5장 6절을 보십시오: “생명의 길을 생각하지 못하며 자기 길이 비뚤어져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현대인의 성경). 음녀는 자기 길이 비뚤어져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녀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절). 성경 이사야 59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정의가 없는 굽은 길로 걸어가면 평강을 알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굽은 길은 평강의 길이 아니다 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잠언 10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우리가 바른 길로 행하면 평안하겠지만 굽은 길로 행하면 평안을 얻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바른 길로 행해야 합니다(잠 10:9). 우리는 곧은길로 행해야 합니다(21:8). 우리는 깨끗한 자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 깨끗한 자의 길을 걸어간다는 말은 우리가 솔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죄를 크게 범하는 자처럼 죄악 된 행위를 감추려고 노력하기보다 바른 길로 행하는 깨끗한 자들로서 자기가 잘못한 것도 솔직하게 자복하며 나아가야 합니다(박윤선). 그리할 때 우리 마음에는 평안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미 생각한 모든 죄의 공통적인 속성, 즉 하나님의 사랑을 떠나 그분이 정하신 목표가 아닌 자기가 세운 이기적인 목표를 이루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조급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을 것이며 또한 악인의 강포를 본받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구부러진 길로 걸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1장 5-8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계명은 조급하지 말며,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지 말고, 악인의 강포를 본받지 말며 그리고 구부러진 길로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부지런히 일하며 또한 정직하게 재물을 모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른 길, 곧은길로 행하고 솔직하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