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입니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잠언 20장 29절).
지난 주 수요일 오전, 한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좀 충격적인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 뉴스란 플로리다에 사는 한 50대 한국 사람이 80이 넘는 어머니를 전기도 나오지 않는 헛간에 가두고 약 2주 동안 밥과 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뉴스였습니다. 충격적 이였던 것은 경찰이 그 노모를 발견했을 당시에 지렁이와 구더기가 그 노모의 목과 얼굴에 있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뉴스에는 그 노모가 벌레를 먹고 살았던 것 같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경찰에 잡힌 그녀의 아들은 아무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당연하게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변명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집을 개조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하숙을 주기 위해서 자기 어머니를 사용하던 방에서 창고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뉴스를 접하면서 마음에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주일 설교 주제와 본문을 바꿔 “노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준비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왠지 이사야 3장 5절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는 듯 해 보입니다: “백성이 서로 학대하며 각기 이웃을 잔해하며 아이가 노인에게,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에게 교만할 것이며.” 아이들이 일어나 노인들을 학대하는 세상에 지금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노인 학대 방지하기”란 인터넷 사이트를 보니까 노인의 인구가 지난 37년간 약 3배 이상 증강하고 있어 2019년에는 노인인구가 약 736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적으로 약자인 노인에 대한 학대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것입니다(인터넷). 즉, 경제적인 이유로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지 않거나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노인 학대 유형을 살펴보면 정신적 학대가 전체 학대의 40%로 가장 많았고 그 외에도 방임, 신체, 경제, 유기 등의 사례와 성 학대를 호소하는 노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현황을 보니까 학대행위자 유형에 “아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전체 노인학대자 숫자인 3,019에서 1,544가 아들 이였습니다(그것에 비해 딸은 342였음)(인터넷). 이렇게 노인들이 학대 받는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구약 성경을 보면 “노인”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세 개의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인터넷): (1) 첫째 단어는 “자켄”(Zaken)란 단어로서 그 뜻은 ‘수염이 희다’입니다. 이 단어는 60세 노인을 칭하는 단어로서 이 말은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노인을 가리켜 쓰이는 것으로 년 수를 다한 사람, 나이 많은 장로나 아버지로 쓰인다고 합니다. (2) 둘째 단어는 “셉바르”(Seybah)라는 단어로서 그 뜻은 “흰 머리”란 뜻으로 70세 노인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백발이나 은발의 사람, 정말 늙다란 뜻이 있습니다. (3) 셋째 단어는 “야시스”(Yases)로서 80대 노인을 가리킵니다. “후들거린다”, “나이든”, “노쇠 한”을 의미하며 “야시스”는 나이 들어 존경할만한, 덕망이있는 이라는 뜻으로 노인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을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구약성경을 중심으로 한 히브리어에서는 주로 노인을 모발 및 수염이 희어지고 기력이 쇠퇴하여 지는 60-80대를 지칭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잠언 20장 29절 말씀 중심으로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입니다”란 제목 아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노인 어르신들과 또한 우리 젊은 자들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성경은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20장 29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지만 늙은 자에게는 젊은 자가 가지고 있는 그러한 힘이 이젠 없습니다. 더 이상 늙은 자는 젊은 자처럼 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백발입니다. 여러분은 백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2-3주전 미장원에 머리 짝으로 갔다고 머리 깍는 아주머니가 제 머리를 깎으면서 ‘새치가 많네요’라고 하시더군요. ㅎㅎ 여러분과 비교하면 별로 없지만 저는 작년보다 갑자기 하얀 머리카락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에 아는 한두 분 목사님들은 저보다 나이가 2-3살 젊은데도 머리카락이 다 백발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머리카락을 염색 하니까 백발에 대한 아름다움을 그리 중요시 하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잠언 16장 31절은 “백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란 무슨 뜻입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노인이란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노인들이 받을 백발의 면류관은 이 땅의 왕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받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영광이 백발에서 나타나며, 거기서 참다운 인생의 과정이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의 시기는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을 받는 시기이며, 참다운 기쁨을 누리는 때입니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노인의 시기는 고통이나 소외의 시기가 아닙니다(인터넷). 비록 성경에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면은 신체의 노쇠에서 오는 연약함과 우울한 모습이 있지만 긍정적인 면은 “장수와 축복과 지혜의 상징”으로 나타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인터넷).
그러므로 늙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장수의 축복을 누리면서 백발의 의미인 평생 하나님을 섬기므로 이젠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것을 기억하고 이젠 영원하신 하나님께 받을 영광스러운 상급을 기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백발의 노인들은 노인이 다시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영광스러운 주님을 만나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소망을 가지고 남은 주어진 삶을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사야 65장 20절을 보십시오: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어린이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하겠고 백세가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이리라.” 그리고 우리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공경하고 존경해야 합니다. 레위기 19장 32절을 보십시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백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리고 그 지혜로운 젊은이들은 백발의 노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어르신들을 존경합니다.
둘째로, 성경은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잠언 17장 6절을 보십시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이요 아비는 자식의 영화니라.” 여기에 나오는 '손자'(베네 바님)는 원래 "아들들의 아들들"이란 말입니다. 여기에서 이 말은 넓은 의미로 '후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한 '노인'으로 번역된 말(제케님)도 원래는 "노인들"로 번역되어야 하며, 이 말은 "조상들"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손들은 노인들(조상들)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미련한 자손은 부모와 조상에게 해와 고통을 안겨주지만, 지혜로운 자손은 가문을 영광스럽게 하고, 부모에게 기쁨을 안겨줍니다(인터넷). 그 한 예로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우리는 들 수가 있습니다. 룻기 4장 14-15절을 보면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여 이새의 아버지인 오벳을 낳았을 때 여인들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에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그 여인들은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이 사랑하는 룻이 보아스와 결혼해서 낳은 오벳이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이며 그녀의 노년에 봉양자라고 말한 것을 보면 손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면류관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오벳에게 있어서 그의 손주인 다윗을 생각할 때 손자 다윗은 노인 오벳의 면류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 러므로 노인이 해야 할 일은 주님의 힘(능력)을 후대에 전해야 합니다. 시편 71편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편 기자는 그의 후대에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힘과 능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 주의 의 곧 주의 의만 진술하”길 원했습니다(16절). 그의 혀는 종일토록 주님의 의를 말씀하였습니다(24절). 그 이유는 어릴 때부터 날아가 늙어 백수가 될 때까지 소망 되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베풀어 주신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때문입니다(15절). 시편 기자는 주님의 측량할 수 없는 구원의 은총을 후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늙은이는 신앙의 유산을 자녀, 후손들에게 물려줍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늙어 백수가 되기까지 소망되신 주님을 의지하므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녀, 후손들에게 진술하며 전합니다. 그는 자신의 평생에 행한 일을 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그의 평생에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간증합니다. 그러한 여러분 어르신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지혜의 상징인 늙은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가르침을 잘 듣고 그 가르침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신명기 32장 7절을 보십시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우리 젊은 사람들은 지혜로우신 노인들에게 묻고 또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옛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옛날의 산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는 지혜로운 노인들에게 충고를 들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왕처럼 그 부친 솔로몬 왕의 생전에 충성했던 노인들의 충고를 받지 않고 자기와 함께 자라난 소년들과 의논하여(12:8) 나라를 잘못 인도하고 결국 쇠퇴하게 만드는 그러한 어리석은 죄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결코 늙은 자들을 버리(떠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품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 시편71편 9절을 보십시오: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언젠가 저는 시편 71편 9절 중심으로 “아름다운 늙은이”란 제목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아름다운 늙은이를 한 세 가지로 묵상했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아름다운 늙은이는 소망되신 주님을 의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71편 5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 아름다운 늙은이는 시편 기자처럼 어릴 때부터 주님께 교훈을 받으면서 자라났을 뿐만 아니라(17절) 그는 어릴 때부터 나이가 늙어 백수가 될 때까지 항상 소망되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그는 “많고 심한 고난”(20절)을 당할 때에 더욱더 소망되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렇게 평생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늙은이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지 않으시고 자기를 떠나지 않으시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는 주님을 의지하므로 소망합니다. 과연 늙은 자들이 주님을 의지하므로 소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천국에 올라가 영광스러운 하나님 아버지의 품 안에 앉기는 것입니다. 이사야 46장 4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백발이 되기까지 우리를 품어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업어주시고 품어주시며 또한 구원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아름다운 늙은이들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시 71:14). 그들은 세월 지나갈수록 주님을 더욱 더욱 찬송할 뿐만 아니라(14절) 숨질 때 되도록 그들은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희 교회 60대에서 80대가 넘으신 어르신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교회 어르신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장수의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평생 하나님을 섬기므로 이젠 머리카락이 하얗게 된 것을 기억하고 이젠 영원하신 하나님께 받을 영광스러운 상급을 기대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은 소망되신 주님을 의지하므로 여러분이 평생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자녀, 후손들에게 진술하며 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의 평생에 행한 일을 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평생에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여러분의 자녀, 후손들에게 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평생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사람들로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시고 또한 떠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업으시고 그 사랑의 품에 앉으실 줄 믿고 소망 중에 즐거워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