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왕

 

 

[잠언 2026-30]

 

 

이미 우리는 잠언 20장 8-12절 말씀 중심으로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이란 제목 아래 한 4가지로 교훈을 받았습니다. 다시 그 교훈을 복습을 한다면 첫째로,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선과 악을 구별하여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합니다(8절). 둘째로, 심판 자리에 앉은 왕 앞에서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없습니다(9절). 셋째로, 심판 자리에 앉은 왕 앞에서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10절). 넷째로, 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모든 것을 들으시고 보고 계십니다(12절). 이 말씀 외에도 우리가 “왕”하면 이미 묵상한 잠언 16장 10-15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이란 제목 아래 받은 3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다시 그 교훈을 복습 한다면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왕은 하나님의 지혜로 바른 결정을 내립니다(10절). 둘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은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합니다(12절). 마지막 셋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은 충신의 충고를 잘 받습니다(13절). 또한 우리는 잠언 19장 12절과 20장 2절 말씀 중심으로 “왕”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이상적인 대통령”이란 제목 아래 한 2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2가지란 이상적인 대통령은 공의와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 잠언 20장 26-30절 말씀 중심으로 “지혜로운 왕”이란 제목 아래 지혜로운 왕은 누구인지 한 5 가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지혜로운 왕은 선인과 악인을 분별하여 분리한 후 악인을 벌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26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왕은 악인들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를 그들 위에 굴리느니라.” 여기서 “키질”한다는 말씀은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20장 8절에서 배운 것처럼 ‘곡식에서 쭉정이 등을 가려내려고 키질’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한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지혜로운 왕은 마치 알곡과 쭉정이를 키질하듯이 선인과 악인을 분리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타작하는 바퀴를 그들 위에 굴”린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타작하는 바퀴”는 '소가 끄는 탈곡기'를 말하며, 보통 3-4개의 바퀴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탈곡기는 돌아가면서 곡식을 눌러서 껍질을 벗겨내고 알곡이 드러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왕은 농부가 키질을 통해서 알곡과 껍질을 구별하듯이 의인과 악인을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그리고 마치 농부는 알곡과 껍질을 구별한 후에,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껍질은 바람에 날리거나 불에 태워 버리듯이 지혜로운 왕도 공정한 심리를 통해서 의인과 악인을 가려내고, 악인에게 적절한 형벌을 부과합니다(인터넷).

 

만일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선인과 악인을 분별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가 어찌될지 상상이 되십니까? 한 2주전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지금 한국 정부에 여기 저기 기관장들이 임명이 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일에 차질이 많이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왜 기관장들이 임명이 빨리 되고 있지 않나 들어보았더니 아마도 정부에서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기관장들을 임명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조사하다 보니 시간이 그리 걸린다고 합니다. 보통 기관장 공무원들은 한 1주일 걸리고 장관을 임명함에 있어서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저는 이 뉴스를 접한 후 박근혜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서 사람을 잘못 세워 문제가 된 인사들을 생각할 때 정부 입장에서는 공직자를 임명함에 있어서 철저하게 점검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만일 한국 정부가 장관이나 기관장들을 임명함에 있어서 제대로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러한 중요한 직책에 악한 사람들을 세워 놓는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되십니까? 여러분,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정부에게도 적용되어야 하는 원리지만 저는 이 원리가 교회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교회에서 당회가 일꾼들을 세워 임명함에 있어서 제대로 사람을 분별하지 못하고 함부로 사람을 잘못 세워놓으면 그 잘못한 결과의 파장이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리를 가정에서 우리 자녀 양육함에 있어서 적용을 한다면 지혜로운 부모는 자기 자녀의 친구들을 알고 잘 파악해서 좋은 친구들과 나쁜 친구들을 분별하여 분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만일 부모가 자기 자녀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좋은 친구들인지 나쁜 친구들인지도 분별 못하고 그러므로 분리하지도 못한다면 그 자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이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후(왕상 3:4)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사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절)고 말씀하셨을 때 솔로몬이 구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열왕기상 3장 9절을 보십시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구한 것은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였습니다(11절).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할 기도 제목이 아닙니까? 우리도 솔로몬 왕처럼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나라를 섬기는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사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주셔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선인과 악인을 분별하여 악인을 벌하는 지혜로운 대통령이 될 때 우리 나라에는 질서(order)와 공의(justice)가 바로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할 때 하나님께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실 때에 우리는 거룩하고 속된 것,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레 10:10).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속되고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separate) 할 수 있을 것입니다(느 13:3).

 

둘째로, 지혜로운 왕은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27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얼마 전 한국에 사는 어느 목사님이 제 facebook 메시지에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 목사의 일중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경 쓰고 관심 가져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그 질문을 받고 그 목사님에게 이렇게 답변을 썼습니다: “… 저는 목사로서 저의 일중에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경 쓰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을 살펴보는 것'인 것 같습니다. 영적인 거울인 하나님의 말씀에 제 자신을 비춰보는 것을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목사님께서 이렇게 답변하셨습니다: “… 그러니까 목사님의 말씀은 누구에게 설교하기 전에 한 사람의 신자로써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고 먼저 한사람의 진실한 교인으로 ,사람으로 서시고자 애쓰신다는 그런 말씀인 것 같읍니다 ….” 제가 그 목사님에게 목사로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신경 쓰고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을 살펴보는 것’인 것 같다고 쓴 이유 중 하나는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교회 성도님들에게 바로 신앙생활 하십시오 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좀 달리 말한다면, 제가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제 자신을 부지런히 살펴보는 것을 중요시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27절 상반절을 보면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사람의 영혼”은 사람의 양심(the conscience of man)을 가리킵니다(MacArthur). 지금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의 양심이 하나님의 등불이라는 것입니다. 이 “등불”이란 말씀이 잠언에 두 군데 더 나옵니다: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13:9),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24:20). 무슨 뜻입니까? 악인의 등불은 분명히 꺼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난다고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는 것을 보면 지혜로운 왕은 의인으로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므로 악을 행하는 악인의 어두움을 들춰내되 그 악인의 깊은 속까지도 살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왕은 공의로 그 악인들을 벌하므로 악인의 등불을 끕니다.

 

성경 시편 7편 9절을 보면 의로우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9절에서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을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말했습니다(행 24:16).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고 공회에서 대제사장 아니니아와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등 앞에서 말하였습니다(23:1).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장 1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실제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은 어떠합니까? 과연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과연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행을 하고 있습니까? 만일 지금 우리가 그리하고 있다면 마태복음 5장 16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빛이 사람들 앞에 비취므로 말미암아 그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말처럼 우리의 선행을 보고 우리를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고 있을 것입니다(벧전 3:16). 그러나 만일 지금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고 있다면(고후 8:7)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상은 어떠할까요? 그러면 지금 우리는 우리를 욕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고 있지 못할 것입니다(벧전 3:16). 그리고 지금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들의 욕이니 비방에 할 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양심이 굳어지고 마비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만일 길거리에 모든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이 되지 않아서 빨간 불이 들어와야 할 때 녹색 불이 들어오고, 녹색 불이 들어와야 할 때 빨간 불이 들어오면 교통이 어찌 되겠습니까? 아마도 대 혼란이 올 것입니다. 차 사고도 많이 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기도 할 것이며 심지어 교통 사로고 죽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한 나라의 지도자인 대통령의 양심이 마비되었다면 그 나라는 어찌 되겠습니까? 악인들이 득실거리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어떠합니까? 한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의 양심이 굳어졌다면 그 교회는 어찌 되겠습니까? 여러분, 지혜로운 왕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힘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한 나라를 잘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빛이 환하게 비췰 것이며 악인의 등불은 꺼질 것입니다.

 

셋째로, 지혜로운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28절을 보십시오: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제가 전도사 때 2세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 중에 하나는 타주에 몇몇 학생들을 데리고 가서 교회 본당 강대상 앞에서 동그랗게 앉아 (혹은 무릎 끓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기억입니다. 그 후에 나중에 함께 기도했던 한 학생의 아버지인가 어머님께서 자기의 자녀가 자기에게 한 말을 저에게 해주셨는데 그 말 전체를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때 배운 점은 ‘학생들이 제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안하고 있는지 다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제가 교역자로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물론 그들에게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일부러 보이려고 행동하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제가 학생들에게 본이 되려면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더욱더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부족하나마 노력을 하였습니다. 여러분, 한 나라의 시민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그 시민들은 자기들의 대통령이 자기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고 있습니다. 만일 대통령이 자기들을 사랑한다고 말로만 한다면 시민들은 자기들을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경하면서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만일 대통령이 선거하면서 시민들을 위해서 이것저것을 약속을 했으면서 만일 대통령이 되어서 그 약속한 말들을 지켜 나아가지 않으면 시민들은 그 대통령을 결코 존경하며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만큼 지도자에게는 사랑과 진실성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28절을 보면 성경은 지혜로운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보호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지혜로운 왕은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왕위도 견고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왕은 사랑과 진리로 자기의 왕위를 지키며 또한 견고케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혜로운 왕은 백성들을 사랑하며 백성들에게 약속한 바를 신실하게 지켜 행한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왕이 백성들을 사랑하면 백성들에게 한 약속을 지켜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사랑과 진실성이 있는 왕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요 또한 자기의 왕위를 견고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과 진실성이 있는 지혜로운 왕은 결국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시 40:11). 즉, 그는 주님께서 맡기신 한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주님의 인자와 진리를 백성들에게 나타낼 뿐만 아니라 그 주님의 인자와 진리로 주님께서 자기를 항상 보호해 주시길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지혜로운 왕은 기도와 실천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자기의 보좌를 견고케 한다는 말입니다.

 

넷째로, 지혜로운 왕은 힘과 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29절을 보십시오: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우리가 젊은이를 생각하면 그에게는 힘이 있다는 것은 다 압니다. 그러면 우리가 늙은 자를 생각할 때는 그에게 무엇이 있다고 생각됩니까? 바로 많은 경험을 통한 지혜입니다. 바로 지혜로운 왕은 이 두 가지를 다 겸비한 사람입니다. 즉, 지혜로운 왕은 힘도 있지만 많은 경험을 통한 지혜가 있습니다. 저는 지혜로운 왕이 가지고 있는 “힘”과 “지혜”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신명기 17장 15-20절에 나와 있는 왕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18-19절). 왕은 병마를 많이 둬서는 아니 되고(16절) 또한 아내를 많이 둬서는 아니 된다(17절)고 성경은 말씀하면서 율법 책을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제 나름대로 내리는 결론은 왕은 병마를 많이 둬서 국력을 강화하며 또한 아내를 많이 둬서 정력을 강화하기보다 말씀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왕은 평생에 율법 책을 자기 옆에 두고 읽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왜 왕은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워야 합니까? 그 이유는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울 때에 악을 미워하며 악을 멀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4장 16절을 보십시오: “지혜로운 자는 두려워하여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바로 지혜의 근본입니다. 지혜로운 왕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바로 그는 지혜의 힘이 있다는 말입니다. 잠언 24장 5절을 보십시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지혜로운 왕은 젊은이처럼 힘도 있고 늙은이처럼 경험을 통한 지혜도 있는데 그는 곧 말씀의 힘이요 지혜의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째로, 지혜로운 왕은 징계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30절을 보십시오: “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 여러분, 우리 한국말에 ‘매를 맞아야 정신차린다’라는 말 다 아실 것입니다. 그 말은 그 만큼 우리 사람들을 매를 맞기 전에는 정신을 못차린다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10장 13절 하반절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지혜 없는 자의 등을 위하여 채찍이 있으니라.” 또한 잠언 19장 29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 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 된 것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지혜 없는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채찍이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미련한 자는 매를 맞아야 정신을 좀 차립니다. 그 만큼 매가 미련한 자식에게는 효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 잠언 22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부모가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자녀의 마음에 얽힌 미련함을 멀리 쫓아내고자 그 사랑하는 자녀를 징계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마음에 얽힌 미련함을 쫓아내고자 징계를 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4-1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징계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아들 또는 딸로 여기고 계시기에 우리를 징계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희망이 있”기에(잠19:18)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3장 12절을 보십시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잠언 13장 24절을 보십시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징계하신다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유익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통하여 우리는 연단하시사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시편 89편 32절을 보십시오: “내가 회초리로 그들의 죄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그들의 죄악을 벌하리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스리시고 벌하시고자 회초리와 채찍으로 징계하십니다. 왜 회초리와 채찍입니까? 그 이유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기 때문입니다(잠 29:15).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죄악을 자백하며 회개하므로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그 결과 심지어 우리는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합니다(23:14).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지혜로운 왕도 자기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자기 백성을 징계합니다. 징계하되 그는 자기 백성의 죄악을 없애고자 매를 들어 상하게 때립니다. 그가 그리하는 이유는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20:30). 선인과 악인을 구별하고 분리하여 악인을 공의로 징계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나라의 시민을 보호하며 나라의 질서를 세웁니다. 만일 징계를 받는 자가 지혜로운 자면 징계를 받으므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죄에서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징계를 받는 자가 미련한 자라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1) 징계를 받으므로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던지[(잠 19:25) “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아니면 (2) 징계를 받고서도 계속해서 죄를 범하던지[(17:10) “한 마디 말로 총명한 자에게 충고하는 것이 매 백 대로 미련한 자를 때리는 것보다 더욱 깊이 박히느니라”].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지혜로운 왕에 대해서 한 5가지로 묵상했습니다. 지혜로운 왕은 선인과 악인을 분별하여 분리한 후 악인을 벌하며, 하나님 앞에서 양심적으로 나라를 다스리며,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며, 힘과 지혜가 있으며 그리고 징계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지혜를 주시길 기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