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바른 삶 (1)
[잠언 20장 13-18절 ]
몇 달 전 1구역 성경공부 때 디도서 2장 말씀을 읽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때 집사님 한 분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더한 것 같다’는 식으로 나누셨는데 나중에 성경공부를 마치고 식사를 한 후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말의 뜻을 좀 더 자세히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좀 더 그 말의 뜻을 이해할 때 저는 그 말의 동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할망정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나쁘게 행하는지 할 말을 잃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 볼 때 그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디도서 2장 1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른 교훈”(sound doctrine)을 잘 배우지 못해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바른 말”(sound in speech)을 하지 못하고 있고(8절) 더 나아가서 바른 삶(sound in life)을 살아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 잠언 20장 13-18절 말씀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이란 제목 아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바른 삶을 살아야 하는지 한 4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이 교훈들을 받아 힘써 지켜 행하므로 이 세상에서 참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바른 생활 방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13절을 보십시오: “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 이미 우리는 잠언을 묵상해 오면서 게으름과 부지런함에 대해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교훈 중 하나는 바로 잠언 6장 9-11절입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이 말씀을 오늘 본문 잠언 20장 13절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게으른 자는 잠자기를 좋아하고 잠자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에서 “네 눈을 뜨라”, 곧 ‘깨어 있으라’(stay awake)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을 해야 할 때 졸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잠언 6장 6-11절에서 이미 우리가 묵상했듯이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는(8절) 개미처럼 잠언 기자는 우리에게 일을 해야 할 때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고 깨어서 일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양식이 족하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어 있으라’고 여러 번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 5장 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그러면 우리가 깨어 정신을 차리고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골로새서 4장 2절을 보십시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성경에서 ‘깨어 있으라’는 단어와 많이 연관된 주제는 바로 기도입니다. 즉, 성경은 우리에게 깨어 있어서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우리가 깨어 있어서 계속해서 기도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1절을 보십시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성경에서 ‘깨어 있으라’는 단어와 또 다른 연관된 주제는 바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어느 날에 주님이 다시 오실지 우리는 모르기에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되 성경 누가복음 21장 36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장차 올 모든 일을 피하고 주님 안에서 설 수 있도록 우리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그리스도인의 바른 생활 방식이란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고 깨어서 부지런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새찬송가 330장 “어둔밤 쉬되리니”라는 찬양이 생각납니다: (1절)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 이슬 맺힐 때에 일찍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2절)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일할 때 일하면서 놀지 말아라/ 낮에는 수고하나 쉴 때도 오겠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3절)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지는 해 비낀 볕에 힘써 일하고/ 그 빛이 다하여서 어둡게 되어도/ 할 수만 있는 대로 힘써 일하라. 여러분, 이 가사처럼 저와 여러분에게 일할 수 없는 밤이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되 우리가 일할 수 없는 날이 “속히”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할 때 일하면서 놀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할 때에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바른 생활 방식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바른 말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8장 14절을 보십시오: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여러분, 여러분은 백화점이던 시장이던 물건을 사러가서 물건을 파는 사람(seller)하고 어떻게 흥정(bargain)하십니까?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2003년 12월에 미국에 다시 들어와서 장인 어르신과 함께 차를 사러 Buena Park 지역에 있는 차 딜러 몇 군데를 다닌 적이 있는데 저는 그 때 ‘아 차는 이렇게 사야 하는 것이구나’란 생각이 든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때 장인 어르신이 세일즈맨에게 가격을 물으신 후 비싸다는 인상을 받으신 것처럼 하시더니 ‘다른데 가보겠다’는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세일즈맨이 차 가격을 좀 내려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식으로 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때 지금 제가 타고 다니는 Honda 차를 산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도 몇 주 전 세차하러 갔다가 거기 일하는 사람이 제 차는 SUV래서 $15을 내야 한다고 하기에 제가 그 사람에게 나는 여기 지난번에 왔을 때에 $12.99 받았다고 확신 있게 말하니까 $13로 종이에 적더군요. 그래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한국 아주머니에게 그 종이를 주고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12.99을 내라고 하여 계산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14절에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물건을 사는 자(buyer)자가 물건을 파는 자(seller)와 협상(bargain)을 하는데 그 물건을 가격을 의도적으로 깎으려고 그 물건에 대하여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건을 사는 자는 가격을 내려서 자기가 사고자 하는 물건을 산 후 자기의 영리함(cleverness)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MacArthur).
혹시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으신지요?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여러 다양한 종류들의 물건들을 구입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물건을 사는 자로서 우리의 입장에선 우리가 사고 싶은 물건이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가격도 저렴해야 하지만 물건을 파는 사람들 입장에선 수입을 많이 원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물건을 사는 자와 파는 가가 서로 흥정을 해야 하는데 이미 정해진 가격에서는 사는 자가 파는 자나 어떻게 해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로 인터넷으로 사는 물건들은 그런 것 같음(경매하는 사이트 외에는). 그러나 그 외에 물건의 가격을 조절할 수 있는 경우에는 물건을 사는 자나 파는 자가 협상을 해야 하는데 싸게 사고 싶어 하는 사람과 수입을 올려야 하는 파는 사람과의 협상에서는 서로 주고받는 말들이 순수하고 정직하기가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특히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 입장에서는 정직하게 말을 했다가는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기에 과장된 말도 해야 하고 어쩌면 거짓말까지 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 세일즈맨들은 바른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물건을 사는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들을 속여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20장 10절 하반절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고 속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17절을 보십시오: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무슨 말입니까? 처음에는 속이고 취한 음식물이 맛이 좋은 듯하지만 나중에 결과는 마치 입에 모래를 먹는 것처럼 매우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말입니다(Walvoord). 달리 말한다면, 처음에 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나중에는 자신에게 화가 된다는 말입니다(박윤선). 여러분,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9장 17절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도둑질한 물이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맛이 있다 하는도다.” 남을 속이고 취한 음식물이나 도둑질한 물이나 몰래 먹는 떡, 이 모든 것들은 처음에는 맛이 좋지만 나중에는 그 부정직한 행함에 결과(consequence)는 결코 맛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나중에 우리의 잘못된(죄악 된) 선택의 결과를 어느 정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고 다른 사람을 속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바른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바른 말을 하고 진실을 말하되 우리의 입술은 “지혜로운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15절을 보십시오: “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 우리의 입술이 지혜로운 입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 지식을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 지식을 말해야 하며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해야 합니다. 말하되 우리는 지혜로운 말을 해야 하며 또한 적합한 때에 접합한 말을 해야 합니다(Walvoord).
셋째로, 우리는 바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16절을 보십시오: “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여러분, 만일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보증을 서 달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특히 만일 그 사랑하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돈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보증을 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정중하게 거절하시겠습니까? 이미 우리는 잠언 6장 1-5절에서 이웃을 위하여 보증이나 담보를 서는 것에 대하여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 교훈의 요점은 만일 우리가 우리 이웃을 위하여 담보 또는 보증하였다가(1절) 우리가 그 이웃의 손에 빠졌을(2-3절), 즉 우리가 그 이웃의 채무 이행 책임을 떠맡게 되었을 때 우리에게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Deliver yourself)는 것입니다(5절). 여기서 잠언 기사 솔로몬 왕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인데 그 어리석은 행동이란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빚을 진 상태를 알면서도 채무 불이행(defaults)하는 그 사람을 위하여 우리 자신 스스로 그 빚을 갚는 책임을 약속하는 것, 즉 보증을 서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보증을 서는 것 그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성경이 경고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이웃이 경제적으로 곤란할 때 그 이웃을 위하여 보증인이 되어주는 것도 그리스도의 이웃 사랑의 실천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솔로몬 왕이 경고하고 있는 어리석은 행동은 만일 보증을 선 것이 사고가 생길 때에 실제로 책임질 것을 각오하지 못한 보증인이나 혹은 남에게 속아서 보증인이 된 사람 또는 책임을 이행할 경제적 실력이 없는 보증인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잠언 20장 16절에서 또 다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사람들의 보증 행위에 있을 수 있는 실수를 경고하고 있습니다(박윤선). 그 실수란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외인)을 위하여 보증을 서므로 그 외인에게 아무 것도 돌려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그러면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위하여 보증을 서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가리켜 박윤선 박사님은 “경제적 험”이라고 말했습니다(박윤선). 이 얼마나 큰 경제적 모험입니까? 경제적으로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을 하여 돈을 빌려 주는 행위이던 보증을 서는 것이든 이러한 행위는 돈을 빌려줬던지 보증을 서 준 사람에게 큰 경제적 손실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물론 사채업자들처럼 빚을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돈을 빌려주므로 모든 방도를 사용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돈을 갚게 하되 이자도 엄청 많이 붙여서 돈을 받아낼 때에는 그것은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경 잠언에는 여러 번이나 모험적 보증 행위를 경고하고 있습니다(6:1-5, 11:15, 17:18, 22:26-27). 박윤선 박사님의 말입니다: “사람들이(특별히 신자들이) 경제적 모험을 하면 실패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지나친 경제 모험이 일종의 불신앙이기 때문이다. 그런 모험은 내일 일을 인간의 힘으로 주장할 듯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무시함이다(약 4:13-17)”(박윤선). 여러분, “지나친 경제 모험이 일종의 불신앙”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동의가 되십니까?
여러분, 저는 지혜의 책 잠언을 묵상해 오면서 제 삶을 비춰볼 때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함을 좀 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서론에서 잠시 나눴지만 교회 1구역 성경공부 후 한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과연 우리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눴습니다. 저는 그 집사님에게 제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신 점 몇 가지를 나눴는데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당신을 신뢰하겠습니다’라고 헌신을 하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우리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전적으로 신뢰하고 모든 것을 맡기고 가족 식구처럼 사랑한다고 했는데 그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으면 우리 마음에 큰 상처와 상실 속에서 ‘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말이 충분히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나눈 것은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그 이웃에게 내 마음의 모든 진실을 다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투명하게 제 삶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성경 사사기 16장에 나오는 삼손 이야기를 읽다가 들릴라 라는 여인이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는지를 내게 말”하라고 날마다 삼손을 재촉하여 조르니까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까지 이르러(15-16절) 결국에는 “삼손이 진심을 드러”냈다(So he told her everything)는 말씀(17절)에 좀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받은 교훈을 그 집사님과 나누면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모든 진심을 다 털어놓을 필요가 없다는 제 생각을 나눴습니다.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절제할 필요가 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절제 가운데에서는 “아니오”해야 할 때 정중히 그러나 단호하게 “아니오”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아니오”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보증을 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그 빚을 갚을 경제적 능력이 있으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보증을 설 각오를 하고 보증을 선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도 빚을 갚을 경제적 능령도 없으면서 사랑한답시고 여기저기서 빛을 져서 돈을 빌려주고 보증을 서 준다는 것은 결코 이웃을 지혜롭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제적 모험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불신앙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박윤선 박사님의 말을 우리는 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은 우리가 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보증을 서기보다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참고: 신 15:1-15; 19:17) 또는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것(참고: 레 25:35-38; 28:8)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사랑을 해야 합니다. 바른 사랑이란 주님 안에서 사랑이요 진리 안에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떠난 사랑은 결코 바른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 잠언 20장 16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는 타인(외인)을 위하여 보증을 서는 것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웃을 위하여 보증서는 것에 실수를 한다면 그 결과를 우리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 보증서는 것을 지혜롭게 잘 판단하여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 넷째로, 우리는 바른 경영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0장 18절을 보십시오: “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 여러분, 미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을 한 월마트(Wall Mart)를 아시죠? 그런데 그 월마트가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을 배경으로 세계 곳곳에 진출했는데(한국에는 1998년) 왜 한국 시장에서는 큰 참패를 당하였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그 이유는 낮은 가격만을 앞세우다 보니 한국 소비자들의 성향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소비자들은 대형 할인점의 대표적인 형태인 창고형 매장 형태를 굉장히 싫어하고, 대형 할인점이라도 백화점과 같은 형태로 제품이 진열되어 있기를 원하는데 월마트는 이런 고객들의 성향을 완전히 무시한 것입니다. 그 결과 월마트는 이마트와 같은 한국인의 성향을 잘 알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완전히 패배하였고 급기야 이마트에 한국에서의 사업을 전부 매각하고 철수하였다고 합니다(인터넷). 이 결과와 오늘 본문 잠언 20장 18절을 연관해서 생각해 볼 때에 경영함에 있어서는 “의논함”(advice)과 “지략”(guidance)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출애굽기 18장 17절 부터 나오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사위인 모세에게 준 자문(충고)입니다. 그 자문한 말씀의 배경은 모세가 백성을 재판하느라 앉아 있고 백성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었습니다(13절). 그것을 보고 장인 이드로는 그들 모두가 필경 기력이 세하고 또한 모세가 홀로 이 중한 짐을 혼자 할 수 없는 알고(18절) 모세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하며 불의한 이익을 미워하는 자들을 살펴서 백성 위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및 십부장을 세워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케 한 것입니다(22절). 모세는 자기 장인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말대로 하여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택하여 그들의 백성의 우두머리인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어려운 일은 모세 자신에게 가져오게 했습니다(24-26절). 이렇게 경영함에 있어서는 의논함(자문이나 혹은 충고)이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오늘 본문 잠언 20장 18절 외에도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15장 22절에서도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말했습니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잠언 11장 14절에서는 “지략이 많으면 평안을 누리느니라”(but many advisers make victory sure)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지략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어느 경제학 교수가 이야기하기를 성경은 어떠한 경제학 교과서보다 경제에 대해서 더 강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경제와 경영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구절이 무려 1만 5천 6백번이나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탁월한 경제학 교과서요, 경영 교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성경적 경제와 경영의 모델로 토라 경제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 경제의 특징은 소유와 경영의 분리입니다. 성경은 소유와 경영을 처음부터 분리합니다. 그렇다면 소유주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경영자는 누구입니까? 경영을 위임받은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물질을 위임받아 경영을 하는 것입니다”(인터넷).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세 가지 측면 중에 하나인 ‘성경적인 재물관’입니다(‘성경적인 생활관’, ‘성경적인 직업관’). 즉, 성경적인 재물관이란 물질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시고 나는 관리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경제가 일반 경제와 다른 점은 일반 경제가 ‘버는 것’을 주로 공부하는데 반하여 성경은 ‘바르게 쓰는 것’을 먼저 가르친다는 것입니다”(인터넷). 여러분, 잠언 16장 1절과 3절을 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무엇을 우리에게 교훈해 주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경영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경영하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4장 24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산다는 것은 우리는 바른 생활 방식, 바른 말, 바른 사랑 그리고 바른 경영을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신실하게 잘 감당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