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대통령

 

 

 

[잠언 1912; 202]

 

 

여러분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연 이상적인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대통령”하면 생각나는 것은 2004년 3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의회에서 가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해 들었을 때 사무엘상 15장 23절 말씀 중심으로 묵상한 QT 제목입니다. 그 제목은 바로 “버림받은 왕”이였습니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그 때 타이밍이 좀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일부러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접하고 사무엘상 15장 23절에 나오는 하나님께 버린 받은 사울 왕에 대해서 묵상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말씀이 마음에 다가와 묵상하는 가운데 고 노 전 대통령의 일이 일어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시금 사무엘상 15장 23절 말씀 묵상한 것을 보면서 왜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는지 그 일곱 가지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불순종, 교만, 외식, 변명, 탐심, 우상숭배 그리고 사람을 두려워한 것. 그 때 저는 '버림받은 사울 왕'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고난과 위기 가운데 버림받았던 사울 왕이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세움을 받았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왕도 있었다는 사실을 통하여 위로를 받은 기억이 납니다. 한 나라의 왕이 버림을 받을 때에 온 백성에게 얼마나 충격이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 왕을 준비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습니까? 그 이유는 다윗은 사무엘상 15장 22절인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란 말씀처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가 유부녀인 밧세바를 범하고 그 간음죄를 덮으려고 그녀의 남편인 충성된 군인 우리아를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셨을 때 그는 즉각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 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왕’(대통령)을 세워주시길 간절히 기원”한다는 말로 그 QT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왕”에 대하여 묵상한 QT 파일을 보니까 2008년 6월에 시편 101편 말씀 중심으로 “이상적인 왕과 이상적인 그의 백성”이란 제목아래 말씀 묵상한 것이 있어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 때 TV 뉴스에서 미국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목사님 중 한 분인 James Dobson 목사님이 미국 대통령 후보였던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 상원의원에 대한 발언 중 그는 “confused theology”(혼동된 신학)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한 것을 다시금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편 말씀 중심으로 묵상한 그 시기는 한국에 그리스도인인 이명박 장로님이 대통령이 된지 얼마 안 되어 소고기 재협상이라는 구호아래 촛불 시위가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께서 시편 101편을 묵상케 하시면서 저로 하여금 이상적인 왕의 마음에 대해서 말씀 중심으로 생각케 하셨습니다. 한 세 가지로 묵상을 했었는데 첫째로, 이상적인 왕의 마음은 인자와 공의를 사모하는 마음이요, 둘째로는 겸손한 마음 그리고 셋째로는 이상적인 왕의 마음은 사특한 마음(간사한 마음, 안과 밖이 다른 생활)을 멀리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제가 마지막으로 “왕”에 대하여 묵상한 QT는 바로 작년 2012년 5월에 묵상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이 묵상은 잠언 16장 10-15절 말씀 중심으로 한 것으로 그 당시 한국일보 인터넷 기사에 “오바마는 최초의 게이대통령”이란 제목 아래 글이 있었습니다. 최초로 동성결혼을 지지한 오바마 대통령,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대통령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말씀 묵상이었습니다. 한 3가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에 대해서 묵상했었는데 첫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왕은 하나님의 지혜로 바른 결정을 내리고, 둘째는, 악을 행하는 것을 미워하며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그는 충신의 충고를 잘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왕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 오는 가운데 오늘은 본문 잠언 19장 12절과 20장 2절에도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이상적인 왕에서 대해서 말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두 구절 말씀 중심으로 “이상적인 대통령”이란 제목 아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이상적인 왕에 대해서 한 2가지로 묵상하면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이상적인 대통령은 공의로 나라를 통치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9장 12절 상반절과 20장 2절을 보십시오: “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19:12), “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왕의 노함(진노)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다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질 수가 있습니다. 그 첫째 질문은 ‘왜 왕은 진노하는가?’입니다. 왕이 진노하는 이유는 그가 폭군이기 때문이 아니라 의로운 왕으로서 자기가 다스리고 있는 나라의 죄악을 미워하여 노함을 의미합니다(박윤선). 잠언 16장 12절을 보십시오: “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그러므로 오늘 본문 잠언 19장 12절과 20장 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왕의 노함은 공의(righteousness)를 나타내는 진노입니다. 이 공의를 나타내는 왕의 진노를 묵상할 때 저는 왕 중의 왕이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진노가 생각났습니다. 특히 저는 요즘 동성결혼에 대한 미국 대법원의 심사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로마서 1장 18절부터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났다(18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1장 26-27절을 보십시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순리이건만 남자가 남자에게, 여자가 여자에게 음욕이 불 일듯 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 또는 보응인 것입니다. 둘째 질문은 ‘왕의 노함(진노)가 사자의 부르짖음 같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입니다. 여기서 ‘사자의 부르짖음 같다’는 말은 사자란 짐승이 거처하는 산중에 어디든지 들리는 것과 같이 통치자의 행정 능력은 그 나라의 악인들을 어디서든지 두렵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박윤선).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장 7절에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fear to whom fear)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을 복종하라”고 말했습니다(1절). 그 이유는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1절). 그리고 바울은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된다고 말했습니다(3절). 무슨 뜻입니까?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세를 가지고 공의를 행하므로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두려움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어느 면으로 생각해 보면 한 나라의 대통령은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입니다. 즉, 그는 공의로 한 나라를 통치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악행 하는 자는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는 포상해야 합니다(벧전 2:14). 우 리는 이러한 공의로운 왕을 존대해야 합니다(벧전 2:17).

 

그런데 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을 생각하면 과연 성경적인 관점에서 그가 우리 시민들에게 존대를 받을 만한 대통령인가 의문이 듭니다. 왠지 그는 James Dobson 목사님의 말처럼 혼동된 신학을 가진 대통령 같고 그의 신앙은(만일 신앙이 있다면) 과연 성경적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성경은 왕은 공의로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이 나라의 대통령이 그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볼 때 저는 개인적으로 “예, 그렇습니다”라고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한 예로 저는 우리나라 대통령과 정부가 동성 결혼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합법화 하려는 모습을 볼 때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 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이사야 32장 17절을 보면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이 나라에 평화와 평안과 안전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나아가다간 우리 자녀와 후손들의 시대에는 너무나 여러모로 불안전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잠언 14장 34절을 보면 성경은 “공의는 나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공의로 이 나라를 잘 다스려 “나라를 영화롭게”해야 할 텐데 오히려 이 나라, 이 민족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게 만들므로 우리 시민을 욕되게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실제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의 아버지인 다윗 왕은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였습니다(왕상 3:6).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다윗 왕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사 그의 아들 솔로몬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사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려고 솔로몬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습니다(대하 9:8). 바라기는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다윗 왕처럼 그리고 솔로몬 왕처럼 정의와 공의로 우리나라를 다스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견고하게 하여주시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이상적인 대통령은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립니다.

 

오늘 본문 19장 1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여러분,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왕의 은택(favor)가 누가 받습니까? 왕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사람이 받을 것 같습니까 아니면 순종하는 사람이 받을 것 같습니까? 당연히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이 왕의 은택을 받지 않겠습니까? 지금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잠언 19장 12절에서 왕의 두 가지 반응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두 가지 반응이란 첫째로, 왕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이 왕은 매우 (진)노한다는 것과 둘째로, 그러나 왕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왕은 은총(호의, 친절)을 베풀어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은 이미 잠언 14장 3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왕에게 은총을 입고 욕을 끼치는 신하는 그의 진노를 당하느니라.” 누가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입니까? 잠언 16장 13절을 보면 슬기롭게 행하는 신하는 충신들이요 충신들은 “의로운 입술”이 있어 왕에게 정직을 말합니다. 왕은 이러한 신하들을 기뻐한다(delights)고 솔로몬 왕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욕을 끼치는 신하, 특히 잠언 16장12절 말씀에 근거에서 생각해 볼 때 악을 행하는 간사한 신하들은 왕의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원리는 왕이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우리와의 관계에서도 적용이 됩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시편 5편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되 방패로 함 같이 은혜를 그를 호위하십니다.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동서남북, 사방을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의 사인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상상이 되십니까? 비록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는 사방을 보아도 문제와 어려움들만이 있겠지만 주님께 순종하는 자에게는 사방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합니다. 그 은혜를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잠언 19장 12절 하반절에서 풀 위의 이슬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풀 위의 이슬과 같은 왕의 은택은 무엇입니까? “풀”은 일반 백성을 비유하는 말로서 매우 약하고 이름도 없는 것 같고 그 풀 위의 이슬과 같은 왕의 은택이란 말은 왕은 위엄으로 백성들에게 임하지 않고 이슬 같이 고요하고 부드러운 체휼의 사랑으로 임한다는 말입니다(박윤선). 다시 말하면, 이상적인 왕은 그의 백성의 봉사를 받기만 위주하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며 또 존중히 대한다는 말입니다(박윤선). 물론 이것은 백성들이 왕의 명령에 순종할 때를 말합니다. 만일 백성들이 왕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악을 행할시 에는 공의로운 왕은 악을 미워하므로 진노가운데 그들을 징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들이 살아갈 때에는 이상적인 왕은 그 백성들을 사랑으로 섬기면 그들을 존중히 대합니다. 그 결과 그 나라 백성은 대중적인 혜택을 누립니다(16:15).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러한 질문들을 던져 보았습니다: ‘과연 이 나라의 대통령은 시민들로 하여금 혜택을 누리게 하고 있는 것인가?’, ‘만일 누리게 하고 있다면 어떠한 혜택을 누리게 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이것이 이 나라의 시민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존중하는 것인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지금 전 국민에게 의료 혜택을 누리게 하려고 건강 보험을 다 들게 하는 것과 소수의 국민들인 동성연애자들의 동성 결혼 합법화를 시키려고 하므로 그들로 하여금 혜택을 누리게 하려는 모습을 볼 때 과연 이것인 진정으로 국민을 고요하고 부드러운 체휼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존중히 대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제가 건강보험에 대하여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성결혼 지지 및 합법화 하려는 이 나라의 대통령과 정부를 볼 때에 이것은 국민을 사랑하여 혜택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요 진리에서 벗어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사랑은 의미가 없는 사랑입니다(Meaningless love).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상적인 왕에 대해서 두 가지로 묵상했습니다. 즉, 이상적인 왕은 공의와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의 대통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대통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이상적인 대통령인가?’ 여러분, 이 시간 우리나라 대통령을 위하여 하나님께 함께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