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잠언 198, 16]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십니까? 시애틀 영광교회를 섬기시는 김병규 목사님이란 분이 쓴 칼럼 제목이 흥미로워서 좀 읽어 보았습니다. 그 제목은 바로 “자기 사랑이 사랑의 기초가 됩니다”였습니다(인터넷). 그 칼럼에서 김 목사님은 건강한 자기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 소극적 차원의 자기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고 덮어줄 줄 아는 것입니다. “자기가 용서받고 용납 받는 경험을 많이 받아봐야 다른 사람도 많이 덮어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죄의 은혜와 복음적 사랑을 느껴봐야 합니다.” (2) 적극적 차원의 자기 사랑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장점을 기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스스로 알고 기뻐할 줄 알며 은사에 대해 행복감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은 물론 사랑의 기초는 자기 사랑이라기보다 하나님 사랑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김병규 목사님이란 분이 자기 사랑의 기초라고 말한 것도 좀 공감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먼저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진심으로 용서할 때에 우리가 우리 이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말도 동의합니다. 특히 저는 “자신의 장점을 기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한다”는 말이 마음에 좀 다가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제가 제 자신의 장점을 잘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본다고 해도 기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저는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게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잘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9장 8절과 16절을 보면 성경은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자와 자기 영혼을 지키는 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두 구절 말씀 중심으로 “자기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라는 제목 아래 한 2 가지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9장 8절을 보십시오: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여러분, 여러분은 자신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만일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신다면 혹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좀 이기적이란 생각이 드시는지요? 저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한두 가지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성경 디모데후서 3장 2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 즉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시듯이 나 또한 나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기적인 사랑으로 사랑해서는 아니 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되 오늘 본문 잠언 19장 8절에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요한삼서 1장 2절의 간구가 응답 받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러면 우리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므로 우리의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잠언 19장 8절에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므로 우리의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선 우리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 “지혜”란 무엇입니까?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얻어서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주는 축복은 무엇입니까? 잠언 19장 2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족하게 지내게 하며 재앙을 당하지 않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축복을 우리가 지혜를 얻어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께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혜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2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지혜를 얻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시편 1편 2절을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그래서 우리는 몇 년 동안 매주 수요기도회 때마다 성경 66권 중 지혜서(the book of wisdom)로 불리는 전도서를 이미 묵상했고 지금은 잠언을 묵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지혜서인 전도서와 잠언을 묵상하는 이유는 물론 지혜를 얻기 위해서 이지만 우리가 지혜를 얻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훈계(discipline)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잠언 19장 20절을 보십시오: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분명히 성경은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으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우리가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을 때 필경은 지혜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훈계 받기를 싫어하면 이것은 우리 자신의 영혼을 경히 여기는 행동입니다. 잠언 15장 32절을 보십시오: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만일 우리가 우리 영혼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는 훈계 받기를 좋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혜를 얻기 위해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훈계 받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혜서를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훈계를 받을 때에 우리는 지혜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지혜서를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우리는 지혜가 얼마나 부족하지, 내 자신이 얼마나 미련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혜를 얻기 위해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5-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혜의 부족함을 철저히 깨달아 갈 때에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오직 믿음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후히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둘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9장 16절을 보십시오: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여기서 성경은 자기의 영혼을 지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데 영혼을 지킨다는 무슨 뜻입니까? 이 질문을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영혼”이란 단어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원어 히브리어로 “영혼”이란 “마음”(heart)으로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 잠언 19장 8절에 나오는 “지혜”라는 단어는 원어 히브리어로 “마음”이란 뜻입니다(Swanson). 즉, 성경은 ‘마음을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8절 하반절에 가서 성경은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상반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마음”이란 “명철”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지혜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8절). 그런 후 오늘 본문 잠언 19장 16절에 와서 성경은 자기 영혼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혼을 지킨다는 말씀은 마음을 지킨다고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잘 지키고 계십니까? 지금 많은 사람들이 건강이 최고라고 생각하므로 건강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건강이 최고라고 생각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주님의 청지기로서 주님이 주신 몸 건강을 잘 관리하므로 건강을 잘 지켜 나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몸 건강 지키는 것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더 힘써야 할 것은 바로 마음(영혼) 건강 지키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 잠언 4장 23절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특히 우리는 우리 마음에 주님을 향한 불신이 들지 않도록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 이유는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를 미혹하고 유혹하여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떨어지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여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잘 지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딛 1:15). 우리는 우리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지지 않도록(롬 1:24)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더럽게 하는 우리 마음에서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막 7:21-22)이 나오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잠언 19장 16절을 보면 성경은 한 2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우리가 우리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잠언 19장 16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 여기서 “계명”이란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3장 23절을 보십시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즉, 우리가 우리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 지켜야 할 계명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6장 29절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The work of God is this: to believe in the one he has sent)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고 명하셨습니다. 이 두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우리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9장 16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이 말씀의 뜻은 사람이 자기의 행위를 조심하지 않으면 멸망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19절 상반절의 말씀과 반대로 행하는 자의 멸망을 경고함입니다(박윤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인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에 힘을 써야 하는데 이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당한다는 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인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그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영생이 없으므로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으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지난 주 화요일에 저희 교회 집사님 한분이 자신의 페이스 북에 나누신 한 박지성 축구 선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 한 마디에 대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인터넷). 그 글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박지성 선수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말 한 마디는 바로 히딩크 감독이 그에게 한 말로서 통역자가 이렇게 박지성 씨에게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박지성 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 박지성 선수는 그 말 한 마디를 듣고 가슴이 두근거렸으면 힘이 솟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말 한 마디가 자기의 심중을 꿰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박지성 선수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히딩크 감독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이름 꽤나 알려진 유명 스타가 되었다거나 부모님께 45평짜리 아파트를 사드릴 만큼 넉넉한 형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전보다 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나"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감독님이 던진 채 1분도 안 되는 그 말 한마디는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저는 이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한국 축구 국가 대표 선수를 지냈던 박지성 선수가 예전보다 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나가 되었다는 말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히딩크 전 국가 대표 감독의 한 마디에 이렇게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는가 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듯이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므로 우리 자신의 영혼(마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영혼을 지켜 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