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모하는 사람

 

 

[잠언 196, 22]

 

 

여러분은 어떤 사람을 좋아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습니까? 어느 한 인터넷 웹사이트를 보니까 “진정한 친구란” 제목아래 마음에 다가오는 글이 있어 여러분과 나눕니다: “친구란 당신이 그리움 속을 헤맬 때에 문득 그리워지는 얼굴이며 당신이 살아있을 때에 곁에 있어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울고 있을 때 그 눈물을 닦아줄 수 있고 당신의 환한 미소에 응답할 사람이며 당신이 어디에 있건 당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친구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주려하는 사랑의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의 아픔, 당신의 슬픔을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이 좌절해 있을 때 당신에게 따뜻한 느낌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당신이 홀로 길을 걷고 싶을 때 당신의 그 마음을 아껴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친구란 당신이 외로울 때 전화를 걸고 싶은 사람이며 짤막한 사연을 보내고픈 사람입니다. 친구란 당신의 모든 것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뜻하지 않은 이별을 할 때도 당신의 행복만을 빌어줄 사람이 바로 친구입니다”(인터넷).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혹시 없으시면 이러한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과연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우리가 사모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오늘 본문 잠언 19장 22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 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저는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우리가 사모하는 사람”이란 제목 아래 한 2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사모하는 사람은 너그러운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9장 6절을 보십시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여러분, 요즘처럼 경제가 안 좋아서 다들 힘들어 할 때 너그러운 마음으로 여러분을 너그럽게 대해주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물질주의에 젖어있어서 어떤 행동이든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에 더욱더 여러분을 너그럽게 대해주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 오히려 자기가 손해를 좀 보면서까지 여러분에게 너그럽게 대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여러분 마음과 기분이 어떠시겠습니까? 제가 개인적으로 다니는 식당 중에 El Pollo Loco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교회 근처에도 하나 있지만 저희 집 근처에도 또 하나가 있어서 이 두 군데를 주로 가서 제가 좋아하는 Tostada salad라는 것을 주문해서 먹습니다. 한번은 저희 집 동네 근처에 있는 El Pollo Loco 식당에 가서 Tostada salad를 주문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까 lettuce를 너무 조금 넣었기에 제가 다시 일하는 사람에게 좀 더 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나서 또 한 번은 저희 교회 근처에 같은 식당을 가서 동일한 음식을 주문하는데 제 얼굴을 보더니 제 이름을 확인하면서 음식을 만들어 저에게 주었는데 얼마나 풍성하게 가득 채워서 줬는지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인심이 후한 사람이 좋지 인색한 사람이 좋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오늘 본문 잠언 19장 6절에서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는 너그러운 사람은 인심이 후한 사람으로서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그는 남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 알아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기에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구제하며 사랑의 손길로 섬깁니다. 섬기되 너그러운 사람은 오늘 본문 잠언 19장 6절 하반절에서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듯이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입니다(who gives gifts). 그러므로 너그러운 사람은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줄 뿐만 아니라(22:9) 종일토록 은혜를 베풉니다(시 37:26). 이렇게 구제를 좋아하는 너그러운 사람은 남을 윤택하게 합니다(잠 11:25). 여러분 같으면 여러분을 구제해 주고, 여러분에게 선물을 주며, 여러분에게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어 주는 너그러운 사람에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너그러운 자에게 은혜를 구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6절). 그리고 성경은 많은 사람들이 그 너그러운 자와 친구가 되길 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6절). 여러분에게 이러한 너그러운 친구가 있습니까?

 

잠언 18장 16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사람의 선물은 우리로 하여금 존귀한 자 앞으로 인도한다는 이 말씀을 다시금 묵상할 때 저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같은 죄인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신 예수님을 주셨다는 이 사실, 그 결과 우리는 존귀하신 하나님의 은혜 보좌 앞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히 4:16).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너그럽게 대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복을 받을 것이요(잠 22:9)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자손들도 복을 받을 것입니다(시 37:2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풍족케 하실 것이며 또한 윤택케 하실 것입니다(잠 11:25).

 

마지막 둘째로, 우리가 사모하는 사람은 인자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9장 22절을 보십시오: “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여러분, 여러분이 사람에게 사모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 본문 잠언 19장 22절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인자함”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원어 히브리어로 개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소원이 그의 친절이니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박윤선). 이 말씀의 뜻은 “사람이 선(인자)을 행할 소원이 마음속에 간절하다면, 그런 소원을 가진 가난한 자가 마음 없이 선을 행한다는 부자보다 낫다는 것입니다(박윤선). 여기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가난한 것과 부한 것이 중요하기보다 마음속에 인자를 행할 소원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고 있기 때문입니다(삼상 16:7). 그리고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기에(시 51:6) 우리 마음에 인자함을 행할 소원이 있는가 없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실제로 여러분 같으면 거짓말 하는 부자가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진실 된 가난한 자가 더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특히 부자는 겉으로 많은 이들을 구제한다고 하지만 마음으로는 인자함이 없는데 가난한 자는 인자한 마음으로 소수의 이웃들을 구제한다면 여러분이 보시기에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주님께서 세우신 멕시코 교회에 성도님들이나 그 교회를 섬기는 우리 승리장로교회 선교팀 분들이나 순수한 마음으로 멕시코 사람들을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히스패닉 사역을 섬기시고 계시는 고메즈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멕시코에 많은 교회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영혼들을 섬기고 있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교회 오는 사람들에게 돈이나 물질들을 요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멕시코 교회는 교회에 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식사 제공 및 이런 저런 것들을 주고 있기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오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여기 승리장로교회에서 한 집사님 부부가 매일 can food(통조림 식품)를 모아가지고 교회로 가지고 오시는 것들을 우리 선교 팀이 멕시코 교회에 가지고 가서 오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 이것도 참 귀한 사역이라 전 생각합니다. 우리 멕시코 교회 한 자매는 그 can food를 가지고 이웃들에게 나누면서 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귀한 사역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 선을 행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그들에게 인자를 행하고 싶어 하는 마음(소원)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 이웃들에게 사랑을 베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지금도 베풀어 주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솔로몬 왕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왕기상 3장 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솔로몬 왕은 기브온 제단에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고(4절)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절)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큰 은혜를 아는 자는 이웃에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인자함을 경험하는 자는 그 하나님의 인자함을 베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인자하심이 나의 생명보다 나은 것을 아는 하나님의 사람은(시 63:3) 그 인자하심을 이웃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모해야 할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인자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함을 더욱더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자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모해야 할 진정한 친구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모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아 7:10). 어느 정도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모하시냐 하면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사모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인자함을 베풀어 주시길 기뻐하시며 우리를 너그럽게 대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시 73:25). 그리고 바라기는 새찬송가 88장 1절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찬양 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 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 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도다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