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친구

 

 

[잠언 1822, 24]

 

 

여러분, 여러분 생각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남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란 제목의 글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 산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의 만남 스승과의 만남 친구와의 만남 좋은 책과의 만남 많은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만남을 통해서 결정됩니다”(인터넷).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우리 인생에 제일 중요한 만남은 예수님과의 만남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모님과 스승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배우자와의 만남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저는 예수님 다음에 중요한 만남은 배우자와의 만남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부모님과 자녀들과의 만남이 중요하겠죠. 그러한 가운데 또 다른 중요한 만남은 친구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저는 좋은 친구와의 만남은 우리의 인생을 빚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22절과 24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아내”와 “친구”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두 구절 말씀 중심으로 “아내와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아 순종하길 원합니다.

 

첫째로, “아내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22절을 보십시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여러분 남편은 여러분의 아내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아내를 생각할 때 ‘내가 하나님께 복을 얻었구나’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설마 여러분은 ‘내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구나’라고 생각하시고 계신 것은 아니시죠? 하하. 저는 “아내”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가 이미 묵상한 잠언 5장 18-19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여기서 우리가 이미 받은 교훈은 우리는 우리의 아내를 복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우리는 우리의 아내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성경 잠언 5장 18절을 보십시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과연 우리 남편들은 우리의 아내를 어떻게 즐거워해야 합니까? 우리 남편들은 우리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잠언 5장 19절을 보십시오: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라는 말은 우리 남편들은 우리의 아내의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힌바 되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 아내의 미모보다 그녀의 미덕에 우리의 마음이 사로잡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다는 말씀 비유의 의미입니다(박윤선).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우물”과 우리의 “샘”(15절)인 우리의 아내의 사랑만을 즐기며 결코 그녀를 버리고 음녀의 집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의 아내로 말미암아 성적으로나 애정적으로나 만족할 만한 원기 회복(satisfying refreshment)을 얻을 때에 우리는 결코 음녀의 품을 그리워하며 음녀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을 것입니다(20절). 솔로몬 왕은 잠언 5장 16-1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겠으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로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그러나 지금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타인으로 더불어 나누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자기들의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가고 있습니까? 지금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지 못하며 아내를 즐거워하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그녀의 사랑을 연모하지 않고(19절) 오히려 음녀를 연모하며 다른 여인의 가슴을 안고 있습니다(20절). 이렇게 우리 남자들이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바람을 피우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죄악 된 선택의 결과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7-14절). 그 징계란 “존영 상실”(9절), “시간 상실”(9절), “재물 상실”(10절), “건강 상실”(11절), “양심상 고통을 당함”(12-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간음의 결과를 알고 음녀를 연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므로 아내를 즐거워해야 합니다.

(2) 우리가 우리의 아내를 복되게 하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의 아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복으로 여겨야 합니다(18:22).

 

물론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아무 아내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아내”는 “어진 여인”(an excellent wife)(12:4), “슬기로운 아내”(prudent wife)(19:14) 또는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A wife of noble character)(31:10)입니다. 잠언 31장 10절을 보십시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이러한 현숙한 여인, 슬기로운 아내는 하나님께 로서 말미암는다고 성경 잠언 19장 14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질고 슬기로우며 현숙한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하나님께 은총을 받은 자라고 오늘 본문 잠언 18장 22절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아내를 배우자로 둔 남편은 복 받은 자입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어질고 슬기롭고 현숙한 아내는 그에게 복덩이(매우 귀중한 사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남편들이 자기들의 아내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려주신 복으로 여기고 있지 않고 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 중 하나는 그 여인이 현숙하고 슬기롭고 어진 여인이 아니라 “욕을 끼치는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12장 4절을 보십시오: “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누가 “욕을 끼치는 여인”입니까? 바로 남편과 다투기를 잘 하는 여자를 말합니다(박윤선). 이 다투기를 잘 하는 여인에 대해서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21:9), “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21:19; 25:24). 아마 우리 남자들 중 이렇게 변명하고 싶은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현숙한 여인을 주시지 않으시고 다투며 성내(성깔 있)는 여인을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그런 아내를 복덩이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참 그럴싸한 변명 같지 않습니까? 만일 그러한 말을 제가 듣는 다면 저는 그 형제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다투며 성내는 여인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런 여인을 선택했으니 책임감을 가지고 그 여인을 현숙한 여인으로 양육하십시오.’ 너무나 많은 경우 우리 남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질고 슬기롭고 현숙한 여인을 거부하고 우리가 보기에 예쁘고 매력을 느끼는 그러나 나중에는 다투며 성내는 여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선택을 했다면 우리는 책임감을 가지고 우리의 아내를 현숙한 여인으로 양육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지금 너무 많은 우리 남자들이 자기가 선택하여 결혼한 아내에게 참 무책임한 말과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아내에게 저주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또한 행동으로도 아내로 하여금 자기가 저주 덩어리라고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금 많은 아내들이 자기들의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여인의 인생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아내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덩이로 여겨야 합니다. 아내는 하나님이 우리 남편들에게 주신 복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내를 즐거워하며 그 아내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친구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24절을 보십시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친구들이 많다고 자부심을 느끼고 심지어 자랑까지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한번은 한인 타운 한 카페에서 인가 약 40여명의 친구들이 모여서 있었던 적을 자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만큼 나는 친구들이 많다고 자부심을 갖고 자랑까지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 때 왜 제가 그리 많은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그 때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은 친구들 중 매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한 네 명 정도 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금 저에게는 10분이 1 정도의 친구들만 남은 셈입니다. 하하. 오늘 본문 잠언 18장 24절에서 지혜로운 왕 솔로몬은 2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1)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는 것은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된다는 것입니다.

 

왜 많은 친구를 얻는 자를 해를 당합니까? 저는 그 이유는 잠언 14장 20절과 잠언 19장 4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14:20),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19:4). 성경은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잠언 18장 24절을 보면 많은 친구들을 얻는 자가 해를 당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바로 그 많은 친구들이 재물을 보고 찾아온 친구들이기 때문입니다(박윤선).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돈을 보고 여러분에게 찾아와 친구가 된 사람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은 여러분에게 돈이 없으면 여러분을 떠날 사람입니다. 그 이유는 그는 여러분에게 돈을 보고 친구가 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좀 경험해 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마약을 할 때 친구들이 서로 나눠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즉, 마약을 하는 어떤 친구들은 돈이 많은 친구에게 달라붙어서 저 같이 돈이 없었던 자들하고 나눠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결국 솔로몬 왕은 재물을 보고 찾아온 친구들을 많이 얻는 것은 해를 당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솔로몬 왕은 얼마나 큰 부자였습니까? 그에게 다가온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의 재물을 보고 친구가 되려고 했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겠습니까? 왠지 솔로몬 왕은 자기의 경험을 생각하면서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된다고 말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친구가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떠한 친구가 있느냐 라 생각합니다.

 

(2) 솔로몬 왕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8:24).

 

무슨 말입니까? 한 마디로,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도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가 있습니까? 잠언 27장 10절을 보십시오: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성경은 환난 날에 먼 형제보다 가까운 이웃, 즉 우리의 친구나 우리 아비의 친구의 집에 들어가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가까운 이웃(친구)가 먼 형제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먼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는 어떠한 친구입니까?

 

(a) 나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친구입니다.

 

잠언 27장 17절을 보십시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이는 신자들의 서로 돕는 것을 비유한 말씀입니다(박윤선). 여러분,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는 서로 도와주는 친구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친구의 발전을 도모하므로 그 친구가 빛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b) 마음을 즐겁게 하는 충성된 권고를 하는 친구입니다.

잠언 27장 9절을 보십시오: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여기서 친구의 충성된 권고란 “영혼의 권고”란 뜻으로서 사랑으로 간절하게 친구를 권면하는 것을 가리킵니다(박윤선). 그 간절한 권면에는 친구를 향한 아픈 책망도 포함됩니다. 잠언 27장 6절을 보십시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여러분,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는 우리의 영혼을 사랑하기에 마음을 즐겁게 하는 충성된 권고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책망도 하는 친구입니다.

 

(c)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친구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친구로 여기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형제보다 더 친밀한 친구의 사랑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친구, 이러한 친구는 형제보다 더 친밀한 사랑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하나님께 은총을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배우자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친구의 축복도 주십니다. 주시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형제보다 친밀한 친구를 만나게도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