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심령과 선물
[잠언 18장 14, 16절]
지난주일 우리는 시편 128편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중 하나는 바로 가정의 축복임을 배웠습니다. 여기서 가정의 축복이란 아내(배우자)와 자녀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아내와 자녀들을 축복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28편 3절에서 성경은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말씀했습니다. 자녀들은 우리 부모에게 하나님의 축복이요 우리 마음의 평화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어린 자녀들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을 때 우리가 기쁨을 누리면서 단란한 가정생활을 함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요 선물인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죄를 범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부모 마음에 근심이 됩니까. 특히 우리의 자녀가 부모를 욕되게 하는 자식(잠 29:15)이라면 우리 부모에게는 큰 근심이요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14절과 16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사람의 심령”(14절)과 “사람의 선물”(16절)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 말씀 중심으로 “사람의 심령과 선물”이란 제목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사람의 심령”에 대해서 생각해 보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14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지난 주 화요일 새벽기도회 때 우리는 마가복음 5장 25-34절 말씀 중심으로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에게 대해서 생각했었습니다. 성경에 기록에는 그녀가 “많은 의사”들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또한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지만 아무 효험이 없이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사실에 대해서도 우리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상상이 좀 되시지 않습니까? 만일 저와 여러분이 희귀한 병에 걸렸다면 그 병을 고쳐보려고 많은 의사들을 만나면서 많은 돈을 치료비로 사용하지 않겠습니까(물론 치료비가 있다면 말임). 그런데 만일 아무 효험도 없이 오히려 우리의 병이 더 나빠졌다면 우리의 심령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낙망과 절망하지 않겠습니까? 성경 잠언 12장 25절과 15장 13절 그리고 17장 22절을 보면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하게 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12:25),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15:13),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17:22).
여러분, 마음의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번뇌케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합니다. 왜 우리의 마음에 근심이 있습니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질병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혈루증으로 앓아온 그 여자처럼 하루, 이틀이 아니라 12년 동안이나 질병으로 고생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근심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심령은 충분히 낙심케 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그 여자처럼 우리의 질병을 고쳐보려고 많은 돈을 드려 많은 의사들을 만나 보았지만 아무 효험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질병이 더 나빠져서 우리가 많은 괴로움 가운데 있다면 우리의 심령은 충분히 부서지며 낙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는 우리의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우리 마음에 소망을 잃는 것입니다. 여러분,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잠언 18장 14절에서 “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심령이 상한다’는 말은 환란이나 질병이나 기타 난관 앞에서 낙심해서 무력해진 것을 가리킵니다(박윤선). 여러분, 만일 우리의 심령이 건강하면 우리는 우리의 병마와 싸워 능히 그 병을 이길 수 있지만 우리의 심령이 상하여 낙심하여 (병들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병마와 싸워 이길 수가 없습니다. 그 한 예가 바로 암이라는 질병에 걸렸을 때 암 진단 이후의 일반적 정서반응입니다.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보이는 정서적 반응은 크게 3단계로 나눠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1) 초기 반응 단계는 암을 진단받은 지 일주일 이내에 부정, 불신, 절망 등을 경험하는 시기이며 이때 일부 환자는 심한 불안 때문에 검사나 치료 방법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하는 수도 있다고 합니다. (2) 두 번째 단계는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시기다. 이 시기 환자들은 암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고 우울, 불안, 불면, 집중력 장애, 식욕부진 등이 1~2주 지속돼 일상생활을 유지하기조차 힘들어한다고 합니다. (3) 세 번째는 적응 단계로 진단 및 치료 과정을 받아들이고 환자마다 자신의 대처 방식을 찾아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단계라고 합니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 가운데 암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정신과적 문제는 이렇다고 합니다. 암 환자의 50~70%가 암과 관련해 겪는 어려움 때문에 불면, 불안, 우울 등이 생기는 적응장애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또 암 환자의 10~20%에서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을 동반하는데 이때는 기분 저하, 의욕 감소, 불면증과 더불어 식사를 못하거나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지는 등 다양한 신체증상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죽음에 대한 공포, 암 재발과 전이에 대한 불안,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앞으로 닥쳐올 변화와 고통에 대한 걱정 등이 많아지고 작은 신체적 변화에도 큰 병이 아닐까 지나치게 걱정하는 불안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드물게는 가족들이 환자 자신을 죽기를 바라는 게 아닐까, 치료진이 일부러 잘못된 치료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피해망상을 보이기도 한다고 합니다(인터넷).
여러분, 우리는 암이란 질병이던 어떠한 환난과 난관을 만난다 할지라도 낙심하면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마음에 평안함과 즐거움을 유지해야 합니다. 성경 잠언 15장 13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라고 말씀하고 있고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질병이 걸렸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의 즐거움이 있다면 우리는 그 병마와 싸우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우리는 병마와 싸워야 합니다. 미국에 유명한 죤 파이퍼 목사님이란 분이 암 수술 전에 쓴 책 “당신의 암을 허비하지 마십시오”를 보면 이러한 글 내용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암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디자인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암을 허비할 것입니다. … 고린도후서 1장 9절을 보면 하나님의 디자인이 명백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디자인 하신 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사랑을 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암을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 암은 이기는 것입니다. 암이란 죄의 대한 욕구를 말살하기 위해 디자인된 것입니다. ... 그저 암하고만 싸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암하고 함께 (나의 죄와) 싸울 생각을 하십시오. 암이란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눅 21:12-13)(Piper). 여러분, 성경 출애굽기 15장 26절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구하십시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치료하지 않으실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을 경험하므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과 경배를 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사람의 선물”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오늘 본문 잠언 18장 16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여기서 “사람의 선물”이란 “뇌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가 묵상한 잠언 17장 8절과 23절을 보면 성경은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8절), “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23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뇌물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므로(신 10:17, 대하 19:7), 하나님의 백성 역시 뇌물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기자는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한다(전 7:7)고 했습니다. 특히 재판관에게는 엄히 경계되었습니다(대하 19:7). 뇌물은 결과적으로 정의를 굽게 했기 때문입니다(삼상 8:3; 잠 17:23). 그래서 성경 잠언 15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오늘 본문 잠언 18장 16절에서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이 말하고 있는 “선물”이란 “뇌물”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선물을 말합니다. 창세기 32장 20-21절을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야곱이 약 20년 만에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 속에서 형 에서가 400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자기에게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6절) 심히 두렵고 답답한 가운데서(7절) 자기의 함께 한 무리들을 두 떼로 나누고(7절)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 후 (9-12절) 자기의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a gift) 준비했습니다(13절).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32장 20절을 보십시오: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야곱은 그 예물을 자기 형 에서에게 주므로 말미암아 형의 감정을 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 후 야곱은 형을 대면하면 형이 혹시 자기를 받아 주리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야곱의 이야기를 생각할 때 저는 잠언 21장 14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하고 품 안의 뇌물은 맹렬한 분을 그치게 하느니라.”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은밀한 선물은 노를 쉬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야곱은 노하는 형 에서에게 예물을 주므로 말미암아 약 20년 동안 자기를 향한 형 에서의 분노를 쉬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아무리 화가 나도 여러분에게 선물하는 그 사람에게 화를 낼 수가 있겠습니까?
잠언 기자 솔로몬 왕은 오늘 본문 잠언 18장 16절에서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선물은 우리로 하여금 존귀한 자 앞으로 인도한다는 말입니다. 그 한 예가 창세기 43장 11절에 나오는데 그 구절을 보면 야곱이 그의 열 명의 아들에게 가나안 땅의 아름다운 소산인 유향과 꿀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를 그릇에 담아가지고 애굽의 총리에게 예물을 드리라고 한 것입니다. 또한 사무엘상 25장 27절을 보면 나발의 아내인 지혜로운 아비가일이란 여인이 분노 가운데 나발에게 보복하려는 다윗을 만나 예물을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렇게 예물(선물)은 존귀한 자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물 중에 예물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예물 중에 예물은 바로 십자가에 받쳐진 유월절 어린 양이 되시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저와 여러분은 존귀하고 존귀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히 4:16). 다시 말하면, 예물 중에 예물이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엡 2:8). 그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된 것입니다(3:7).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이사야 38장 16절을 보면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그의 병이 나을 때에 이렇게 기록한 글이 있습니다(9절): “주여 사람이 사는 것이 이에 있고 내 심령의 생명도 온전히 거기에 있사오니 원하건대 나를 치료하시며 나를 살려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영혼을 사랑하사(17절) 이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병만 치유해주신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죄를 주님의 등 뒤에 던지셨습니다(17절).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를 구원해 주셨습니다(20절). 여러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우리 심령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믿음을 주시사 그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주님으로 영접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에게 영생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 놀라운 선물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사람의 심령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롬 1:16). 바라기는 이 최고의 선물인 영생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시므로 사람의 심령의 생명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저와 여러분의 복음 전파로 나타나길 기원합니다.